전통시장을 살리는 건 쿠폰이 아니라 태도다
전통시장까지 일부러 발걸음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쓰려면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전통시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시원한 대형마트 대신 땀이 맺히는 시장 골목을 택한 건, 어쩌면 나름의 응원이었다.
생각보다 차가 많아 공영주차장 4층에 겨우 차를 세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타올 가게. 도톰한 핸드타올 네 장을 고르고 주차권을 받을 수 있느냐 물었더니, 주인장은 대답이 없다. 잠시 나를 보더니 건너편 상점(역시 본인 소유인 듯하다)으로 가서 주차권을 가져와 뚱한 얼굴로 내민다.
기껏 만 원어치 사고 주차권을 달라 해서 기분이 상한 걸까. 말 한마디면 될 일을, 사람 마음이 먼저 상한다.
시장 안쪽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 대학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다. 한 달 용돈 3만 원으로 차비와 점심을 해결하던 때, 김밥과 잡채는 우리의 만찬이었다. 몽고간장이 진하게 밴 당면을 궁중팬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채소와 함께 익혀주던 그 잡채. 값은 소박했지만 맛은 푸짐했다.
그러나 골목은 예전 같지 않았다. 셋 중 둘은 문을 닫았고, 한 집만 겨우 장사를 하는 듯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가능’이라는 문구가 붙은 가게로 들어가 잡채밥을 주문했다. 좌식 상에 앉으니 기둥에 매달린 선풍기가 더운 공기를 밀어낸다. 잠시 후 나온 잡채밥 위에는 계란프라이 한 장이 얹혀 있었다. 반가웠다. 맛도 예전 그대로였다. 세월이 흘러도 지켜지는 맛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가격은 6,000원. 손님도 많지 않은데 만 원은 채워주고 싶어 비빔국수를 포장해 달라 했더니 “다 퍼져서 안 된다”고 한다. 이상하다. 다른 집은 포장해도 멀쩡하던데.
그럼 김밥 1인분을 포장해 달라 했다. 만 원은 채워야지 싶어서였다.
하지만 김밥은 뒤에 온 다른 손님에게 건네졌고, 나는 다시 싸는 걸 멀뚱히 서서 기다려야 했다. 순서가 바뀐 듯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카드 금액을 맞추려고 주문한 김밥이 괜히 서글퍼졌다.
시장길을 걷다 속옷 가게에 들렀다. 여름이면 모시 런닝을 입으시는 친정아버지가 떠올라 조끼 런닝 하나와 반소매 두 장을 고른다. 안사장은 반소매가 19,000원이라 했는데, 바깥사장이 들어오며 17,000원이라 바로잡고 양말 하나를 덤으로 넣어주라 한다.
2,000원을 덜 내고 양말까지 받았는데도 마음이 마냥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장사하는 모습이 짠해, 들고 있던 김밥을 건넸다. 안사장은 가게 밖까지 나와 사이즈를 다시 확인해 준다. 그 진심이 무엇이었든, 적어도 애쓰는 기색은 느껴졌다.
생활한복 가게에서는 어머님 드릴 블라우스를 고르려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구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인장은 끝까지 친절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 한마디가 참 따뜻했다. 시장의 희망은 이런 곳에 있구나 싶었다.
주차장 4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주차비는 1,400원. 1시간권 두 장을 내밀었더니 한 장만 가능하다며 400원을 현금으로 내란다. 또 한 번 마음이 턱 걸린다.
나는 전통시장이 사라지는 게 속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받은 지원금을 ‘제대로’ 쓰고 싶었다. 일부러 시장을 찾았고, 땀을 흘리며 걸었다. 하지만 불친절, 순서 무시, 가격 혼선, 애매한 규정 앞에서 마음은 여러 번 작아졌다.
전통시장 살리자고 외치는 말은 많다. 그러나 돈 안 되는 손님에게 퉁명스럽고, 작은 이익에 마음을 얹는다면 승산은 없다. 시장이 살아남으려면 가격보다 먼저 신뢰가, 할인보다 먼저 환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시장을 포기하지 못한다.
진주 토박이로 살아온 내게 전통시장은 어린 시절의 보물창고이자 추억의 골목이다. 그 시장을 터전 삼아 평생을 일해온 상인들이 환한 얼굴로 맞이하고, 시민들은 건강한 먹거리와 기억을 품고 다시 찾아오는 곳.
도심과 시장이 함께 불을 밝히는 저녁 풍경을 보고 싶다.
텅 빈 셔터 대신 사람들 웃음소리가 채우는 시장통을.
언젠가는,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