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로 속의 까마귀였다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개학을 했지요. 교복 자율화가 됐다지만 대다수의 학교는 여전히 교복을 입는지라 하교하는 모습만 봐도 학생들은 금방 표가 나요.
딸아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남편이 교복 다림질을 많이 해줬어요. '군대 시절 솜씨 발휘하면 다 죽었다'고 하더니 역시 예사롭지 않은 다림질로 교복 소매 날을 세우고 깃은 두 번 세 번 다려서 힘을 빡 주고 말이죠. 남편의 논리는 딱 하나예요. 구겨진 교복 입은 여고생은 이미지 깨지지 않느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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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미지 깨지는 여학생이 바로 저였습니다. 교복을 다려 입은 기억이 없거든요.
학창 시절 제 교복은 언제나 물려 입은 것이었습니다. 사촌 언니가 3년 내내 입어서 어깨가 허옇게 바랜 교복은 아무리 봐도 단아한 여고생의 이미지완 거리가 멀었죠. 치마는 참... 지금 생각해도 슬픈데요, 하도 입어서 엉덩이 부분이 빤질빤질해져서 멀리서 봐도 나달나달 닳았다는 게 한눈에 보였습니다.
그런 교복 안에 입는 셔츠는 흰색이 아니라 색이 변해버린 누우런 빛깔이라서 아무리 다려도 태깔이 나지 않았어요.
여학생이 그렇게 구겨진 교복을 입고 다니느냐고 엄마가 퉁을 준 적도 많았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저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부럽고 새 교복 사이에서 너무나도 초라해질 헌 교복이 눈에 밟혀 학교조차 가기 싫었으니까요.
그때가 아마 중학교에 입학하고 춘추복을 입어야 할 때였나 봐요. 친구들은 눈이 부시게 하얀 춘추복 입고 단아하게 등교를 하는데 전 교복이 없었습니다.
등교 즉시 전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걸리고 말았죠.
"이 자식 봐라? 넌 왜 동복이야?"
"춘추복이 없어서요."
"교복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임마! 너 저쪽에 가서 서 있어!"
두꺼운 몽둥이를 들고 섰던 학생주임 선생님은 무서운 얼굴로 교문 한 구석을 가리켰고, 전 말없이 그곳에 가서 섰습니다. 명찰 없는 아이, 신발에 무늬 있는 아이, 깻잎머리한 아이, 머리 길이에서 걸린 아이 등등. 그중에 교복이 없어서 걸린 학생은 저뿐이었습니다. 하얀 춘추복 무리 속에 검정 동복 입은 한 여자아이... 그것은 꼭 백로 무리 속에 섞인 재주 없는 까마귀 한 마리 같았죠.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둥, 가난해도 당당해,라는 둥 당시 그럴 듯한 말들은 많았죠. 하지만 정작 가난해서 하얀 춘추복을 입지 못했던 저는 당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못난 마음에 학교에서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지요.
집에 돌아와서 전 어머니에게 선언했죠.
"어무이 나 내일부터 학교 안 가요!"
"뭐시라? 학교를 안 가믄, 그럼 니가 공장에 나갈 끼가?"
"그래도 뭐... 학교 가는 것보담은 나을 걸!"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래도 이상했던가 봐요. 왜 그런지 꼬치꼬치 캐물으시는데 결국은 울음부터 터뜨렸고, 떠듬떠듬 춘추복 이야기를 했지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어머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습니다.
"어무이, 화났어예?"
"화 안 났다."
"그럼 왜 그렇게 말도 안 하는데요? 어무이 그러니까 무섭잖아."
"괘안타. 니는 들어가서 공부나 해라."
좀 전까지도 학교에 안 가면 공장에 나갈 거냐고 하시던 분이 공부나 하라니 적잖이 안심이 되더군요. 평소 신중한 어머니가 그렇게 나올 때는 뭔가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다음날도 춘추복은 없었습니다. 대신 등굣길에 어머니가 동행하셨어요.
"어무이가 학교는 와예?"
"선생님한테 사정해 볼란다."
"쪽팔리게 어무이가 와 사정하러 올끼고? 오지 마이소!"
"교복 없어서 학교 안 간다며?"
"갈게. 가면 될 거 아이가!"
"참말이가? 학교 꼭 갈끼가?"
"알았다! 학교 지금 간다고요!"
결국 전 혼자 학교에 갔고 역시 선도부 선생님에게 걸려 벌을 섰습니다. 여전히 교칙을 위반한 백로 무리 속의 까마귀가 되어서 말이죠.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시며 종이가방을 하나 내미시더군요.
"뭔데 어무이?"
"열어봐라."
전 기대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저를 학교에 보내놓고 새 교복을 한 벌 사 오셨을 겁니다. 종이가방 속에는 하아얀 춘추복이 곱게 들어있을 거고요. 하지만...
"이게 뭐꼬! 헌 교복이잖아!"
"그래 니 사촌언니 교복이 하도 낡아서 입을 수가 있어야제. 교회에 가서 내 한 벌 구해왔다. 좀 크긴 해도 영 새 거 같더라. 입어봐라."
"또 헌 교복 입으라고? 싫다 싫다!!"
이렇게 학교에서 수모를 당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또 헌 교복을 입으라니 어머니가 너무 미웠습니다. 차라리 공장에나 가겠다고 덤비다가 전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울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지도 않고 매를 들지도 않고서 어머니는 헌 교복 가방을 움켜쥐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계셨지요.
"미안하다. 옴마가 돼가꼬 교복도 새 거 못 사주고. 미안하다..."
결국 전 잘못했다고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것은, 마치 가슴에 커다란 벽돌이 떨어져서 아프게 부딪치는 느낌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그것은 아마도 열일곱 살의 철없음을 아프게 때리고 꾸짖는 마음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하복을 제때 못 입어도, 또 헌 교복을 가져다주셔도 군소리 없이 입고 학교를 다녔죠. 다만 다림질만은 하지 않았습니다. 헌 교복은 다림질을 해도 맵시가 안 난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목소리가 너무 슬펐기 때문입니다. 교복 때문에 어머니가 눈물 흘리시는 건 한 번이면 족했어요. 다시는 교복으로 인해 슬퍼하시게 해서는 안 되었기에 저는 교복 다림질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교복 빨래를 하는 날이면 절대 손으로 비틀어 짜지 않고 물기가 빠질 때까지 탈탈 털고 터는 게 일이었죠. 그렇게 오래도록 털고 나면 다림질한 것보다야 못하지만 구김이 거의 안 생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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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내내 남편의 다림질로 구김 한 점 없는 셔츠를 동복 안에 받쳐 입고 목련꽃처럼 단아하게 등교하는 딸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헌 교복이 싫어서 학교 안 가겠다는 딸을 보며 눈물짓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딸아이도 어른이 되어 교복을 입지 않게 되었지만 저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거짓말처럼 열일곱 철없던 딸로 돌아가 젊은 날의 어머니를 만나곤 합니다.
"어무이! 내 새 교복 안 입어도 괜찮아예."
"진짜 괘안나? 내가 교회 가서 좀 더 성한 걸로 가져올 수 있는데?"
"아입니더! 어무이가 주는 교복은 어떤 기든 다 좋습니더!"
그렇게 말하는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