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성벽 5

5. 84만 원의 월급과 엄마가 감겨준 머리카락

by 갱s토리

국가고시 합격의 기쁨은 잠시였다.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재활병원에 입사했지만, 사회는 냉혹했다. 철없던 시절, 동기 단톡방에 쏟아냈던 선배 험담이 화근이 되어 입사 초부터 '개같이' 찍히고 말았다. 일주일에 여섯 번씩 이어지는 스터디와 인격을 무시당하는 1년 차의 삶. 그 대가로 손에 쥔 월급은 고작 84만 원이었다. 추가 수당은커녕 인격조차 보장받지 못하던 그 시절, 나는 매일 새벽 출근이 무서워 엉엉 울었다.


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엄마였다. 엄마 역시 작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쇠를 꼬는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류마티즘과 관절염으로 휘어버린 그 손가락으로, 엄마는 새벽마다 울음 섞인 내 머리를 정성껏 감겨주셨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우리 딸."


따뜻한 물기 속에 섞여 들던 엄마의 위로. 그 손길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에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신의 고단함보다 딸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었고, 덕분에 나는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그 지옥 같은 1년 차를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 내가 10년 차 작업치료사로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는 건, 그 새벽 엄마가 감겨준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든 사랑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