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0년의 침묵, 드디어 내려놓은 빚의 무게
엄마의 희생은 병원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믿었던 사람에게 보증을 서고 사기를 당하며 남긴 수천만 원의 빚. 엄마는 그 무거운 짐을 10년 넘게 묵묵히 갚아 나갔다. 삼촌의 도움을 받아 제3금융권의 독촉을 겨우 돌려막으며, 한 푼 두 푼 모아 빚의 산목숨을 끊어갔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며 가정을 돌보지 못했지만, 엄마는 그런 아빠를 원망하는 대신 아빠의 몫까지 삶을 지탱했다.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와 병수발을 다 받아내면서도 "며느리 구실 못 한다"는 비난까지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 그 억울함을 알아준 건 오직 고모들뿐이었다.
마침내 10년 만에 마지막 빚을 다 갚던 날, 엄마는 대성통곡 대신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덤덤함이 오히려 내 마음등을 후벼 팠다. 빚을 다 갚은 아빠가 시골로 내려가 쪽방살이를 시작했을 때도, 엄마는 불쌍한 남편을 혼자 둘 수 없다며 그 험한 시골길을 따라나섰다. 마늘밭농사며 횟집 일까지, 엄마의 고생은 장소를 가릴 뿐 끝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월급을 펑펑 쓰며 내 힘듦만 토로할 때, 엄마는 시골과 부산을 오가며 자신의 생을 다 바쳐 가족이라는 성벽을 수리하고 있었다. 이제야 돌아본다. 엄마의 휘어버린 손가락과 깊어진 주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건 무능했던 남편과 철없던 딸, 그리고 가난이라는 폭풍우로부터 우리를 지켜낸 훈장이었다. 그리고 그 훈장이 빛 바래지 않게, 엄마의 억울함을 곁에서 묵묵히 증언해 준 이들이 있었다. 바로 나의 고모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