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성벽 7

7. 서른다섯의 베테랑을 만든, 어느 밤의 샴푸 향기

by 갱s토리

10년의 빚잔치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나는 드디어 작업치료사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내 손에 쥐어진 첫 월급은 고작 84만 원. 병원에서의 고된 노동과 사람에게 치이는 스트레스에 녹초가 되어 돌아오면, 나는 신발을 벗을 기운조차 없이 거실 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어느 늦은 밤, 퀭한 눈으로 퇴근한 나를 보며 엄마는 말없이 욕실 불을 켜셨다.


"우리 딸, 오늘 많이 힘들었제? 이리 와봐. 엄마가 머리 감겨줄게."


서른이 다 되어가는 딸이었지만, 그날 밤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뉘었다. 6화에서 언급했던, 횟집 일과 마늘밭농사로 마디가 굵어지고 휘어버린 엄마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따뜻한 물이 두피를 적실 때마다, 낮 동안 병원에서 삼켰던 서러움이 울컥 터져 나왔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이게 맞는 길일까?"


내 물음에 엄마는 대답 대신 더 정성껏 거품을 내어 내 머리를 씻겨주셨다. 엄마는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당신이 시집살이의 독설과 수천만 원의 빚을 10년 넘게 묵묵히 갚아나갔던 그 시간에 비하면, 사회초년생인 딸의 고단함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는 그 짐을 나누자고 말하는 대신, 당신의 무릎을 내주며 딸의 지친 하루를 씻겨내주셨다.


그날 밤 엄마가 정성스레 말려준 머리카락에선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향기가 났다. 그 향기를 맡으며 나는 다시 출근할 힘을 얻었다. 첫 월급으로 사드린 빨간 내복은, 사실 그날 밤 내 머리를 감겨주던 엄마의 젖은 손에 바치는 나의 작은 감사였다. 하지만 그 따뜻한 욕실 문밖에는, 여전히 엄마를 "며느리 구실 못 한다"며 타박하는 차가운 시집살이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