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른다섯, 미완의 숙제와 비로소 찾은 나의 '성'
부모님에게 나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존재인가 보다. 이제는 번듯한 직장도 있고,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생겼건만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마지막 과업은 늘 '결혼'으로 귀결된다. 사촌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명절 인사를 올 때면, 부럽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한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든다. 나라고 왜 예쁜 가정을 꾸리고 귀여운 아이를 품에 안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혼이라는 문턱 앞에서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건, 아마도 내가 보아온 부모님의 삶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된 엄마의 굵어진 손가락마디를 보며, 나 역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그만큼 단단한 성벽이 되어줄 자신이 아직은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밤이면, "내 짝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나"하며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엔 고요한 폭풍이 인다.
그럼에도 지금 이 '미완의 시간'이 내게 주는 선물은 뜻밖에도 달콤하다. 지독하게 모났던 사춘기를 지나 엄마를 고생만 시켰던 그 빚을, 이제야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2025년, 작은 고모의 세심한 도움 덕분에 드디어 내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했다. 은행 빚 1억을 짊어진 하우스푸어라지만, 이 집은 나에게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이 언제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 근처에 사는 고모와 사촌들이 오프 날 찾아와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그 공간 안에서 나는 비로소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공주'가 아닌, 소중한 사람들을 품는 '성주'가 된 기분을 느낀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리면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에 마음이 아릿하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만큼은 해달라는 걸 다 해줄 수 있는 오늘이 참 감사하다.
결혼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풀지 못한 채 남아있고, 이루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고요함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가족들과 행복을 쌓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양연화일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