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빚은 일상 5

5. 뾰족했던 막내를 품어준 세 개의 성벽

by 갱s토리

재활병원을 떠나 종합병원으로 이직했을 때, 나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100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에서 느꼈던 피로감과 '배신자'라는 낙인이 남긴 상처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작업치료사는 나를 포함해 단 4명. 나는 그 단출하고도 조용한 팀의 막내였다.


처음엔 겁이 났다. 또다시 사람에게 치이진 않을까, 내 실력이 탄로 나 무시당하진 않을까. 서툰 감정 조절 때문에 울컥하는 날도 많았고, 때로는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세 분의 주임님은 그런 나를 다그치는 대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병원 이야기부터 가슴 깊은 곳의 개인적인 속사정까지, 주임님들은 내 서툰 감정들을 받아내는 든든한 완충지대가 되어주셨다.


"갱 선생님, 선생님 방식대로 한 번 해봐요. 우린 선생님 믿어."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치료에 대한 신뢰였다. 연차가 낮다는 이유로 간섭하거나 지시하는 대신, 나만의 치료 방식을 존중하고 환자를 온전히 믿고 맡겨주셨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 그 사소한 확신이 뾰족했던 나를 조금씩 둥글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낯선 환경에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치료사로서의 자부심도 다시 꽃 피울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4명이었던 우리 팀은 7명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나도 후배가 생긴 제법 연차 높은 치료사가 되었지만, 힘들 때면 여전히 주임님들의 따뜻한 시선을 떠올린다. 내가 저연차 시절에 받았던 그 배려와 믿음을 이제는 내가 후배들에게 돌려줄 차례라는 것도 안다. 배신자라 불리며 도망친 줄 알았던 그 길 끝에, 사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진짜 동료'라는 이름의 성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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