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빚은 일상 4

4. 8시의 성실함, 엄마가 닦아놓은 나의 출근길

by 갱s토리

재활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일터를 옮기고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월급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내 이름 석 자 뒤에 붙는 직함의 무게도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철칙이 하나 있다. 바로 '지각하지 않는 것'이다.


동기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고,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도망치듯 이직했을 때도 나를 버티게 한 건 이 지독한 성실함이었다. 사실 이 성실함은 오롯이 나의 것이 아니다. 84만 원의 월급을 받던 신입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병원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새벽마다 잠을 설쳐가며 내 출근길을 닦아준 엄마 덕분이었다.


"딸, 밥 먹고 가야지. 기운이 있어야 환자들도 돌보지."


엄마는 내가 버럭 화를 내며 잠투정을 부려도 묵묵히 따뜻한 국을 끓여 놓으셨다. 엄마의 희생으로 다져진 나의 아침은 10년 차가 된 지금,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나의 가장 강력한 스펙이 되었다. 동료들은 나를 향해 "참 한결같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 뒤에 숨은 엄마의 주름을 본다.


물론 작업치료사라는 직업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여전히 다른 직군에 비해 박봉이라 느껴질 때도 있고, 육체적으로 고된 날엔 "이게 다 봉사하는 마음 없으면 못 할 짓이지"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내 손을 거쳐 굳어있던 관절이 펴지고, 혼자 옷을 입게 된 환자가 수줍게 건네는 "고맙습니다"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간다.


내가 만약 25년도에 마련한 내 집에서 혼자만의 안락함에만 취해 있었다면, 이 숭고한 보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 잘 산다고 마음이 편한 성격이 아니기에, 나는 오늘도 엄마가 닦아준 그 출근길을 따라 병원으로 향한다.


돈 없다고 맨날 징징대는 딸이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성실함은 엄마의 사랑이 만들어낸 가장 튼튼한 성벽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성벽 안에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일상을 재건하는 '베테랑 치료사'로 당당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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