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빚은 일상 3

3. 10명의 동기, 그리고 '배신자'라 불린 퇴근길

by 갱s토리

재활병원의 1년 차는 군대보다 엄격했다. 4명으로 시작한 동기는 금세 10명으로 늘어났고, 우리는 매일 밤 '일주일에 6번'이라는 살인적인 스터디 스케줄을 함께 견뎌냈다. 쏟아지는 과제와 선배들의 매서운 질타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오직 하나, 더 많이 배우고 더 빨리 성장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선배들에게 밥과 술을 사달라며 먼저 다가갔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달라고 매달렸다. 선배들의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즐거웠고, 그것이 환자를 위한 길이라 믿었다. 하지만 2년 차가 되어 숨을 좀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뜻밖의 풍경을 마주했다. 빽빽했던 동기들 사이에서 나만 덩그러니 섬처럼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선배들과 잘 지내는 나의 모습이 동기들에게는 '얄미운 깍쟁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위아래를 다 챙기며 고군분투했다고 생각했는데, 관계의 방정식은 재활 치료보다 훨씬 복잡했다. 100명이 넘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직을 결정하고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동기들로부터 돌아온 말은 축하가 아닌 가시 돋친 농담이었다.


"야, 너만 살길 찾아가냐? 완전 배신자네."


장난 섞인 말투라는 걸 알면서도 그 단어는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동기와 선배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버텼던 나의 시간들이 그 한마디에 '기회주의자의 도망'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너무도 속상했다. 짐을 싸서 나오는 마지막 퇴근길, 병원 정문을 나서며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결국 나는 정들었던 재활병원을 떠나 종합병원으로 이직했다. 운 좋게 선배의 추천으로 들어온 이곳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흘렀다. 나보다 연차가 훨씬 높은 대선배님들은 '저연차'인 나를 얕잡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믿고 환자를 맡겨주셨고, 서툰 부분은 따뜻하게 채워주셨다.


사람에게 치여 도망치듯 나온 길 끝에서, 나는 비로소 '사람'에게 치유받기 시작했다. 재활병원 시절, 실습생들을 가르치며 내 공부까지 챙기느라 숨 가빴던 시간들도 분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겠지만, 지금의 평온한 소속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


이제는 사람이 싫어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10년의 세월을 버티게 한 건 결국 '나를 믿어주는 동료'라는 울타리였다. 외로웠던 10명의 동기 시절을 지나, 이제야 나는 마음 둘 곳 있는 진짜 나의 일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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