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의 굵어진 손마디와 나의 비겁했던 이불속
구포동의 낡은 단칸방, 그 좁은 공간은 밤마다 거대한 공장이 되었다. 엄마의 손에는 늘 무언가 들려 있었다. 처음엔 인형 눈알을 붙이는 일이었고, 그다음엔 딱딱한 가죽 신발을 꿰매는 바느질이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엄마의 손은 점점 변해갔다. 예뻤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불거지고 관절이 휘어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저 그 고단한 노동의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동생과 내가 커갈수록 필요한 돈은 늘어만 갔고, 의지할 곳 없는 서른 전후의 젊은 여자가 감당해야 할 세상의 무게는 가혹했다.
어느 밤, 잠결에 실눈을 뜨고 보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소리를 죽인 채 TV를 켜두고 홀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그 슬픔이 나에게 전염될까 무서웠던 것일까. 나는 위로 대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엄마의 고독을 외면했던 나의 비겁한 첫 번째 기억이다.
철이 들수록 미안함이 커져야 했건만, 사춘기라는 괴물은 나를 더 못되게 만들었다. 집안 형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것저것 학원을 보내달라며 떼를 썼고, 내 스트레스의 화살은 늘 만만한 엄마와 어린 남동생을 향했다. 독한 말로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파고, 동생을 거칠게 몰아세우며 나는 나의 초라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은 학원 차에서 내리던 어느 날 저녁이다. 멀리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하루 종일 부업과 집안일에 치여 조금은 허름해진 차림의 엄마. 순간, 친구들의 시선이 두려워진 나는 엄마를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집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려다 멈칫했을 엄마의 손길을 외면한 채, 나는 그렇게 비겁한 딸이 되었다.
이제야 엄마의 굽은 손가락 관절을 만져보며 생각한다. 내가 먹고 자고 공부했던 그 모든 시간은 엄마의 눈물 50%와 피땀 50%로 지어진 성이었다는 것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 미안해"라는 말을 가슴속으로 수천 번 되뇌지만, 그 시절 엄마의 외로웠던 뒷모습에 닿기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