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회빙환은 인기를 끄는가
1.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2. 주인공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역사를 바꾼다.
3. 주인공이 다시 태어나 인생을 두 번 산다.
4. 주인공이 책이나 게임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다시 쓴다.
만약 웹소설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위 클리셰들을 한 번 이상은 봤을 겁니다. 그만큼 아주 보편적이죠.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해 봅시다! 왜 이런 클리셰가 보편화된 것일까요? 뭐, 그거야 잘 팔리니까 그렇겠죠. 주인공이 특별하고 비범하다는 것을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입증 가능하고 스토리를 팍팍 전행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있고요.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죠!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해 봅시다. 저 네 가지 클리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
좀 복잡하죠? 예시를 하나씩 들어 봅시다.
유명한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윤현우는 미래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고, 과거로 돌아가 재벌 집안의 일원인 진도준으로 환생해 재벌이 된다. 정석적인 회귀 스토리의 공식을 따르죠.
그러면 생각을 조금 해 봅시다. 그냥 회귀를 빼 버리고, 미래를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해도 똑같은 것 아닐까요? 네, 맞습니다. 주인공의 전생은 단지 미래 지식을 아는 수단으로 사용될 뿐, 그 이상의 특별한 가치는 없습니다. 원작 소설에선 더더욱 그렇고요. 그러면 왜 주인공이 회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자, 당신이 작가라고 생각을 해 봅시다. 그럼 일단 주인공과,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를 설정해야겠죠?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인간 관계와 주인공의 세계관과 능력을 설정해야 합니다. 만약 주인공의 가족을 설정한다면, 주인공이 가족과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적인 설정을 해 두어야 하며, 주인공의 친구가 있다면 어떤 사이고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짜야 합니다. 주인공이 그들과 어떤 관계고, 어떤 인연을 쌓았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설정해야 하죠. 안 그러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요지는 이겁니다. 소설의 모든 인물과 배경, 사건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주인공 역시 세계에 소속된 인물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세상인지에 따라 제한됩니다. 주인공을 만든다고 끝이 아니라, 주인공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까지 고려하라는 거죠.
예를 들어서, 마법이 실존하는 세계에 사는 주인공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선 안 됩니다. 과학이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이니까요. 또 다른 예시로는, 주인공은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 원수 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라면 호의적으로, 원수라면 적대적으로 바라보죠. 이렇게 주인공의 사고방식을 세계와 인물에 맞추어 설정하는 것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감정 이입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회귀, 빙의 등을 사용하는 순간 이런 법칙은 깨어집니다! 만약 주인공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오거나, 책 속으로 들어온 인간이라면, 주인공은 작품 속 세상과 인물, 설정과 완전히 단절된 인물입니다. 대체 역사물을 예시로 든다면, 사극 주인공은 현대적인 표현을 써서는 안 되며,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도 안 되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맞춘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주인공이 과거로 날아온 현대인이라면, 안 그래도 됩니다! 주인공은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현대적 표현도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작품 속 세상에서 살아온 인물이 아니라 밖에서 들어온 인물이니, 주인공의 사고방식 역시 작품 속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어집니다.
비슷하게 만약 주인공이 책 속으로 들어온 인물이라면, 주인공은 사실상 인간관계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말 그대로 툭 떨어진 거니까요. 그 말인 즉슨, 주인공이 주관적으로 깊게 연결되어 있는 인물도 없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의 원수도, 친구도, 가족도 다 의미 없습니다. 애초에 주인공은 그런 인간관계 외부에서 환생이든, 빙의든, 전생이든 해서 난입한 존재니까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사실상 현재와 비교해 인간관계도 세상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10년 전 세상으로 돌아간다면, 현재와 비교해 완전히 다른 모습이겠죠? 이미 겪었던 인생을 다시 산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삶을 산다는 느낌도 많이 옅어지고요.
자, 그럼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 일반적인 소설에서, 주인공의 사고방식은 작품의 배경과 인물, 사건에 의해 제약된다.
둘, 그러나 주인공이 회귀, 빙의, 환생을 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주인공은 세상 밖에서 난입하는 존재가 된다.
셋. 이렇게 줄거리 밖에서 난입하는 주인공은, 작품 속의 세상이나 인간 관계에 구애받지 않는 인물이 된다. 또한 작품 속 세상에 깊게 몰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왜? 왜 이런 클리셰가 유행인 걸까요?
저는 그것을 '이입하지 않는 주인공'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 일반적으로 좋은 작품은 독자를 깊게 이입하게 만든다는 것이 전통적인 시선입니다. 독자가 작품의 내용에 깊게 공감하며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 고전적인 시각이죠.
하지만 웹소설에선 이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에게 깊게 이입한다는 점은 감정이 소모된다는 점이죠. 저도 <프랑켄슈타인> 읽고 나서 내상을 크게 입어서 멍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웹소설에서, 더 나아가 현대 사회의 문화에서 이런 깊은 감정 이입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감정은 쓸모없는 장애물이고, 모든 것의 기준은 냉정한 계산이 된 것이 현대 사회의 문화입니다. 그러한 문화에 맞추어 부상한 것이 회귀, 빙의, 환생이죠.
웹소설의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의 이성적인 인간과도 같습니다. 주인공의 모든 판단 기준은 자신의 이득뿐이어야 하며,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이나 세계는 오직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의 시선으로 분석되는 대상이 됩니다. 주인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흠결은 가능한 한 배제됩니다. 애초에 회귀, 빙의, 환생으로 들어온 세상이고, 주인공이 나고 자라서 이해하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주인공은 마치 작품을 읽는 독자처럼 외부인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줄거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웹소설 주인공들이 죄다 감정 없는 기계란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복잡한 내면과 인간적인 감정이 있는 주인공이 많은 편이죠. 아예 이입이 안 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주인공이 작품 속 세상에 깊게 몰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귀, 빙의, 환생 등으로 세상에 난입한 주인공은 철저하게 외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작품 속의 고난과 인물들, 설정들은 철저하게 성공을 위한 이용의 대상으로 보여질 뿐, 실존하는 세상과 인물만큼의 깊이가 없습니다. 인물이나 배경은 실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주인공의 성공에 사용되는 장치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깊이가 없다는 것이 절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죠.
사실 이런 '외부에서 난입해 세상과 분리된 주인공' 은 다른 면으로도 분석 가능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리 잘 쓴다 해도 독자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다른 세상에서, 다르게 자라온 다른 사람. 하지만 회귀, 빙의, 환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독자와 주인공은 '낮선 세상에 들어온 외부인' 으로, 사실상 같은 위치에 서게 됩니다. 독자가 '내가 주인공이라면?' 하고 상상하는 난이도가 사실상 없다는 뜻이죠.
또한 웹소설의 특징 역시 중요합니다. 웹소설은 신문 연재 소설의 부활과 같으며, 짧은 분량을 끊어서 읽으니, 애초에 작품 속 세상에 몰입하기 힘듭니다. 당장 재미있게 읽은 책 하나를 떠올리고, 그 책을 하루에 세 페이지씩 끊어 읽는다고 칩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깊게 이입해서 읽기 좀 어려울 겁니다. 그럴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깊게 이입되지 않는 줄거리를 짜는 편이 낫죠.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회귀, 빙의, 환생은 단지 스토리를 시원하게 전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깊은 감정 이입을 피하는 웹소설 독자의 수요와 매체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게 최적화된 장르의 한 형태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