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과학 이야기

감성적인 창백한 푸른 점

by 탄산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게 오랜만이다. 미루고 미루다 오늘은 꼭 써야겠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내 MBTI 결과는 ENTJ인데 가만 보면 난 J가 아니라 P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오늘 할 이야기는 ‘창백한 푸른 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을 읽었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도 지금 <코스모스>를 읽고 있는데 엄마한테 사준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안 읽었냐고 잔소리를 자주 듣는다. 알아챘으면 알아챘을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의 집, 지구를 뜻한다. 내가 이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는 것보다는, 이 글귀를 쓰는 것이 더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을 것 같아 이 글귀를 써 본다.

창백한 푸른 점.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위에 있는 사진은 보이저 1호가 1AU(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이다. 그리고 위의 글은 그 큰 사진에 찍힌 조그마한 ‘창백한 푸른 점’을 보고 칼 세이건이 한 말이다. 이 사진은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이라는 타이틀을 남긴다. 이 사진을 막상 보았을 때, ’엥 이게 뭐야’ 할 수 있겠지만, 저 조그마한 점 하나에서 우리 모두의 스토리가 펼쳐졌다. 가장 슬펐던 순간, 가장 화났던 순간, 가장 기뻤던 순간. 하나뿐인 내 자식을 낳았을 때, 과학 발표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내가 원하는 꿈을 이뤘을 때, 돈을 미친 듯이 쓰며 친구와 쇼핑할 때,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나와 멀어지려 할 때, 첫사랑의 순간, 친구들과 학교에서 웃으며 떠들 때, 몰래 수업시간에 딴짓을 할 때, 사랑하는 배우자와 결혼을 했을 때, 늙은 몸으로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바람을 쐴 때나 내일의 계획을 세우며 침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잠에 들 때나 힘을 쏟았던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받을 때. 항상 불행한 일만 일어나서 죽고 싶을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날 위로해 줄 때, 가족들과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상을 나눌 때도.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과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는 것도. 정말 죽도록 힘든 상황이 든 너무나 기쁜 상황이든 우리는 그 모든 순간을 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만끽했다. 우주는 넓다. 너무나 크다. 너무나 커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는 우주의 몇백억 분의 1도 안 되는 거리이다. 그 거리에서도 지구는 너무나 작은 점일 뿐이다. 우리도 너무나 작은 존재이고 우리의 추억들도 기억들도 너무나 작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작디작디 작은 인생의 경험들에 목매달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뿌듯해하고 설레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너무나 작지만, 너무나 하찮지만, 너무나도 가치 없지만 너무나 소중하지 않은가?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의 사진.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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