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겁상실 May 14. 2024

선생님 우리 아이 신경 좀 써주세요

기승전 신경신경신경 무한랩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보기만 해도 너무 기빨려요."

"가만히 있는걸 넘어서 얘가 숨은 쉬나, 이 정도에요."

"요즘 이런 아이들을 명퇴 도우미라고 하지요."

"그 아이가 체험학습 간날은 숨 좀 쉬겠더라고요."


과학적인 인구구성으로 각 반에 선생님 에너지를 몽땅 써버리는 아이들에 대한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이다.


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만두지 않을거면 아이들을 가려받을 수는 없는 노릇



얼마 전 우리반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그 주간을 전으로 우리반 나의 에너지 루팡님 가정에서 연락이왔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알림장을 안 써오네요. 주의 집중도 잘 안되는 것 같고요, 작년에는 안그랬는데 왜 이지경이 된건지 모르겠네요...어쩌고저쩌고...."


이것 보세요, 님아. 내가 작년 담임선생님한테 다 들었는데 뭔 말이세요.

작년 담임선생님이 Me치고 팔딱 뛸뻔했다는 이야기를 장장 삼십분 넘게 들었는데요. 담임선생님 뿐만 아니라 학년부장님한테도 학년에서 유명해서 세 손가락 안에 별 달고 왔다는 이야기도 징글하게 들었구만요.

하라고 해도 한숨 푹푹 쉬는 아이에게 뭘 더 지도하라는 이야기신지...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개싸움까지는 가면 안되니께(싸움도 못할 뿐더러 화내면 나만 손해.....)

고렇게는 하지 않았다.


최대한 돌려 돌려 깎아서 기분이 안 나쁘시게...계란유골의 마음으로 한땀한땀 노력은 한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지도해야하니 댁의 아이만 전담마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두번 더 해보자고 제안할 수는 있지만 될 때까지 잡아다가 시키면 낙인효과가 생겨서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문제아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학습목표를 다른아이와 다르게 잡는다면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



하아.....거진 삼십분을 통화하며 그분은 나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늘 그렇듯...마지막 말은 다 똑같다.

어디 전국구 모임이라도 있는지...


"선생님 힘드시겠지만 우리 아이 신경 좀 써주세요."



늘 듣는 이야기지만 이번에도 화딱지가 났다. 힘드시겠지만...죄송하지만....이런류의 뒷이야기는 무시가 답이다. 아니나다를까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은 이미 벌게져 있었다.


도대체 내가 이 아이게게 신경을 못쓴건 또 무어란 말인지.

본인이 싫다는데 내가 대신 써줄 수도 없고... 이 아이가 다 쓸 때까지 밥을 안먹을 수도, 남겨서 쓰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는가.



그날의 전화 이후에도 그 다음날 전화가 또 왔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트레스를 무진장 받고있다는 내 몸의 신호였다. 전화는 끝내 받지 못했다.


하루종일 온종일 생각하기 싫어도 생각이 났다. 그놈의 신경을 얼마나 쓰면 그 아이가 해결이 될까?

진짜 전화받기 싫다. 신경정신과에 가면 진단서가 바로 나올까? 검색해보니 초진은 엄청 비쌌다...병가를 쓰려면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야하나...고민하다가도 그래도 예전에는 꾸역꾸역 학교에 나가려고했었는데 지금은 병가낼 생각도 다 하고 많이 발젼했다 싶었다.


 몸이 망가졌을 때 다짐을 한 것 이 있다. 복직해서 다시 이런일이 있으면 '전화로 이럴게 아니라 당장 학교 오시죠. 교장실로!'라고 외쳐버린다고 했으나 현실의 나는 여전히 싸움에는 자신이 없었다.



뭔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해서 동학년 모임과 지인 선생님께 수소문을 하고 교사 커뮤니티에 글도 올렸었다.



반응은 크게 네 가지였다.


1.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 아이 신경써 달라고하면 가정에서도 신경써 주시기 바랍니다만 주구장창 반복하세요. 저는 교실에서 이러이러하게 지도하고 있는데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라고 되받아쳐라.



2. 더 가까이 해봐

뭐 짜증은 나도 문제 안 일으키는게 좋으니까 앞자리에 두고 끼고 가르쳐보세요. 조금 더 나아질 순 있어요.


3. 알림장 폭파하세요.

알림장을 알림장앱에 게시하는 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아예 알림장도 안 써도 그만이지만 생활지도 근거를 남기는 것도 필요하니 아이들 알림장을 쓰거나, 학부모용 알림장 하나만 해도 괜찮겠어요.


4. 지 애를 안 잡고 선생을 잡고 G랄이네.

그의 말대로 나는 심하게 잡힌거였다.



1번 방법이 제일 사이다일 것 같으나 나는 나를 안다. 말싸움에서는 자신이 없고, 어차피 대거리해봤자 코티솔 수치만 높아질게 뻔하므로....상상속에서만 하는 것으로 넘겼다. (꿈에서까지 싸웠지만...)


2번은 내가 마더 테레사가 아니고 특수반도 아닌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달라는 건 다른아이들에게 갈 에너지를 못주는 일이므로 이 역시 패스


3번은 정말 신박했다. 그동안 알림장을 왜 그리 열심히 쓰고, 알림장 앱에 열심히 적었나 모르겠다. 나라에서 꼭 쓰라는 공식적인 앱도 아닌데 말이다. 우선순위를 잘 따져서 해야하는 일에만 힘쓰쟈.


4번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본인 아이 잡으실 수 있도록 제가 도움 드리도록 하려고요.



나의 해결책은 2+3+4번을 적절히 섞는 거였다. 보통 아이들 보다는 한 두번 더 주지는 시키지만 나의 관심은 거기까지이고, 하고 안하고는 니 할 탓이니라. 그리고 알림장 앱은 이후로 쓰지 않았다. 궁금하시면 직접 아이에게 물어보셔서 소통의 시간을 늘려보세요옹.


최선을 다하지만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라는 것을 장착하고 나니 그 아이를 대하는 것이 편해졌다. 아동학대신고는 뭘 열심히 하려고 했을 때 생기지 아무것도 안할 때는 안생기니까 말이다.


이후 진짜 대면상담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보다는 일단 하고픈 말이 있으실테니 다 들어는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일단 그런 마음을 가지니 칼자루는 나에게 있었고, 신경을 쓰고 말고는 내 할 나름이었다.




대면상담에서도 마무~우리는 또 그러했다.


"선생님, 힘드시겠지만 신경 좀 더 써주세요."


"물론, 신경을 쓰죠. 다른 아이들 지도에 무리 없는 선에서 하겠습니다."




한 번 더 신경신경 이야기 하면

다른 학부모님들 동의서 받아오라고 할랬드니....나의 또라이 눈빛을 읽었는지 그분은 바로 떠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화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탓 보다는 니 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