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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ul 여진 Apr 19. 2024

18. 아무도 믿지 않을 실화.



19살, 어느 날 좋은 오후.

그 시절 자주 만나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 중 우두머리였던 녀석과  무리 중 가장 어렸던 여자 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우두머리 집 방향으로 돌아가던 길이였다.

햇볕이 좋았고 날도 좋았고 그날의 모든 온기가 포근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녀석 집으로 향하는 길이 여러 방향이 있었지만 그 녀석이 늘 가던 지름길로 가는 듯했다.

나는 처음 가 본 골목길이었는데 그렇게 포근한 날에 햇볕이 골목을 밝혀주는데도 왜인지 그 골목길은 좁기도 좁았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았고 그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 나 혼자서는 지나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 여길 만큼 공기가 좀 달랐다.

그렇게 왜인지 모를 기분을 안고 골목길의 반쯤 걸어 들어갔을까 바닥에 짙은 갈색으로 변한 맨홀 뚜껑이 보였다.

맨홀 뚜껑이 좁은 골목 정 중앙에 놓여 있었고 그 녀석과 나란히 걸어가니 골목이 꽉 찰 정도라 그 맨홀 뚜껑을 밟아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맨홀 위를 밟기 싫었다)

맨홀 뚜껑 위에 내 발이 닿는 순간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

당황한 나는 지진이 일어났나 싶어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양팔을 벌려 넘어지지 않을 자세를 취하고 멈춰 섰다.

시계 방향으로 땅이 돌기 시작했고 땅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내 고개도 돌아갔다.

한 바퀴 훅 돌더니 멈췄다. 멈추게 된 그 방향에서 고개를 들어 보니 초록색 대문에 대나무가 꽂혀 있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이 무당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를 왜 불러 세웠는지 모르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그곳에 서서 바라볼 때 기분은 여전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무섭지 않지만 무서웠고, 낯설었지만 낯설지 않았고, 불길하지만 불길하지 않았다.

추운데 춥지 않은 겨울을 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나조차도 이 설명이 어이없다는 걸 알지만 이게 최선이다.

어제 일어난 일처럼 나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과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이 날 느낀 그 기분과 감정, 으스스하지만 따스했던 그 공간의 기운을 지금보다 더 자세히 설명할 자신이 없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뒤를 돌아보며 "뭐하노?" 하길래 쳐다보니 딱 네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내겐 꽤나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는데 그 녀석과 나의 거리로 보니 고작 몇 초 사이에 일어났던 거다.

그 녀석은 휴대폰을 보며 걷느라 내가 놀라서 "어어~~~!" 소리를 내며 당황하는대도 신경 쓰지도 않고 걷다가 그 좁은 골목에 바짝 붙어 걷던 내가 옆에 안 보이니 그제야 돌아본 게다.


그날 이후 나는 그곳을 피해 다녔다. 아니 사실 그곳으로 갈 일도 많지 않았지만 어쩌다 또 그 동생을 보러 갈 때면 돌아서 가곤 했다.

다시 말하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다.  근데 무서워서다.

이게 뭔 멍멍이 소리 같냐 하겠지만 무섭지 않은데 무서운 그 감정 때문에 그곳을 지나다닐 수 없었다.

그곳을 가는 순간 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너무 잘았다. 그냥 알았다.


어릴 때부터 이유 없이 자다가 토하느라 머리맡에 작은 대야가 놓여 있었고 9살 때 이사 간 그곳에서 지옥이 시작되었고 불면증도 그때부터 이어졌는데 졸피뎀 6알을 먹어도 잠들지 않을 정도라 내가 지금도 살아있는 게 신기하리만치 오래도록 불면증이 내 숙명처럼 이어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운명을 타고났다는 걸 중학교 2학년쯤 알게 됐다.  그냥 알게 됐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들리는 건지, 보이는 건지를.

들리는 것도 아니고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동기화가 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물론 이 설명조차 완벽하지 않지만 그냥 그 순간엔 내가 그 존재이고 그 존재가 나다.

그러니 뭔가 들리고 느껴져서 내뱉는 말들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화를 할 때 머릿속에서 뭘 생각하고 말하지 않듯이 그냥 그 순간엔 내가 그 존재라서 자연히 말이 나오는 거다.

그래서 지금처럼 그냥 알았고, 그냥 알게 됐다고 밖엔 설명이 안 된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나를 부른 이유를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 무속인 몇 명을 찾아가 물었지만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무능한 대답만 했다.


(여기서 잠깐!)
무속인을 무시하려는 발언이 아니라 어느 직업이든 가짜가 존재한다.
타로도 그렇고, 사주 보는 사람도 그렇고.
요새는 강남 쪽에 무속인인척 교육받아서 일을 시키는 곳도 있단다.
오피스텔에 여러 가짜 무속인을 배치시켜 놓고 돈을 버는 업체가 있다고 들었다.
가짜 의사도 있고 가짜 선생님도 있고 가짜 변호사도 있는 마당에 어떤 직업이든 사기꾼이 존재하니까 모든 무속인들을 무시하려는 내용도 아닐뿐더러 내가 그 직업이 싫어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난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서 거부를 했던 것이고 그럼에도 그날의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날에 대한 진실은 들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내가 지어낸 말이라 여겨버린다.


그렇게 진실을 알아내지 못한 채 나는 서울에 가서 살게 됐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부산에 다시 내려왔을 때 계속 그곳이 생각났다.

그럼에도 계속 그곳에 다시 가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몇 년을 그 근방에 살아놓고도 가지 않다가 부산 내려온 지 2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나,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재개발된 지역이라 그 골목길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 골목길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도 모를 만큼 변해 있었다. 너무 늦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후회 아닌 후회가 들었다.

반복해서 요상하게 말을 해서 어이없겠지만 이렇게 밖에 말 못 하는 나 자신도 어이없다.


그런데 2년 전, 내 나이 39살이 되던 해.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곳에서 타로 카페를 운영한다는 사람이 내게 한 번 와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낯선 사람과 선뜻 만나지 않는 나였지만 3년 전부터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들을 접해보려고 노력 중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 사람의 카페에 찾아갔다.

나는 늘 나비가 길을 안내해 준다는 걸 느끼곤 했는데 그날 그 여성분의 카페에 앉아 창가를 보니 흰나비 한 마리가 반갑다는 듯 맴돌았다.

그렇게 오묘한 기분으로 그 여성분과 대화를 이어갔고 60대이신 그 여성분의 어머니가 그 주변에서 유명한 무속인이었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 카페도 어머니가 남기신 유산으로 차린 거라고 하셨다.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는 말에 무속인 어머니의 딸이라는 그 때문인지 홀린 듯 대뜸 알았다고 답했다.

처음 본 사람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 부탁을 받아들인 게 황당하다.


그렇게 그 여성분을 도와주면서 33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12시간 이상 말을 해야 했고 그 여성분은 내 덕에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내 구독자들로 돈 버는 게 너무 당연한 듯 굴어서 결국 그 여성과는 35일쯤 지나서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로 인연을 매듭지었다.

그동안 나는 목 건강을 잃었고 지금의 목소리를 얻었다.

그렇게 33일 동안 그 여성분을 도와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카페 앞엔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지어지기 전에는 터가 너무 쌔서 무엇이 들어서든 망해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회가 들어서고부턴 그 주변이 자리 잡혀가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자연히 그 여성분이 주변을 같이 둘러보며 뒷 뜰에 있는 주차 공간도 보여줬는데 그 공간을 보는 순간 모습은 달라졌지만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그토록 내가 피해 다녔던 그 초록색 대문이 있던 그 공간이었다.


정확히 20년 만에 다시 그곳에 가게 된 것이고 어느 유명한 무속인의 딸을 돕게 되면서 그 장소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여전히 미스터리하고 여전히 내가 듣고 싶은 답은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지만 나의 49살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9살부터 죽음을 내 삶에 끌어당기고 싶을 만큼 지옥이 시작 됐었고 서울에 있던 29살 때의 나는 40일 넘게 먹는 것도 없이 위아래로 토해내며 원인 모를 병과 싸우느라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도 낫지 않아서 제발 죽여달라 하늘에 소리칠 정도였는데 그 시기에 사귀던 놈의 배신으로 헤어져서 일도 못하는 상태에서 병원을 다녀서 빚이 늘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39살이 되었을 때 19살 이상한 일이 일어났던 바로 그곳에서 무속인의 자녀를 도와주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일 수 없으니까.

   

9살 때 고통에 몸부림치다 처음으로 죽고 싶단 생각을 했고, 19살 때 그 일이 일어났으며, 29살 때 40일을 넘게 먹지도 못하고 온몸의 통증을 느꼈으며, 39살 때 20년 전 19살에 그 일이 일어났던 바로 그곳으로 무속인 딸을 도와주러 가게 됐다. 이게 다 내가 지어 낸 말 같은가?

그대들이 어찌 받아들이든 49살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겁나면서도 설렌다.



【마법처럼 힘이 되는 한 소절】

왜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하는 좌절감보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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