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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힐데 May 25. 2023

중립 했는가? 중립 하는가?

중립 하는가? 중립 했는가?


중립은 치우 지지 않고 정 중앙에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념의 논리가 차이를 넘어 흑백의 논리가 되다 보니 혼돈인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닌 다름‘, ‘차별이 아닌 차이’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 편’이 아니면, 혹은 ‘내 생각’이 아니면 ‘틀리다’라고 한다. 언젠가 나는 고백했다. ’다른‘ 것에 ’ 틀리다 ‘는 말을 사용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노라고. 그렇지만 억지를 부려보자면 나의 개별성보다 많은 대다수의 인식과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정서적 함의가 더 컸노라고 부득불 우겨보고 싶다.


그러한 배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 속, 아니 공무를 수행하는 어느 지점에서 더욱 혼란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적 배경은 무릇 집단(공조직) 속에서는 정(正)과 반(反)만 있게 된다 동조하든지 기피하든지. 기관장이 추천하는 독서목록에서 이념을 읽어야 하는 현실, “이 책을 꼭 구입해야 할까? 나중에 감사에 걸리지 않나?” 이 많은 시간이 지나고 중앙이든 지방이든 몇 번의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정이 아니면 반으로 규정하게 하는 지금을 어떻게든 기록해야 할 것 같아서 남긴다.


나는 그 직원의 말에 머리가 띵 했다. 30여 년 전 내가 공무에 임하면서 느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없었던 나, 그리고는 왜지?! 본인이 하는 행위에 대해 인식을 하면서도 행하는 것과 자신의 인지범위 내에서 정당성을 부여하고 행하였을 때 감사처분 시 잘잘못의 인정에 있어 ‘고의’와 ’ 미필적 고의‘로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며 자신의 인지의 인식과 의식화를 정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주면서 부연했다. 만약 자신이 하는 행위에 있어 당연하게 인식했다면 별만 문제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균열된 의식이라면 인지를 통해 균열을 깨고 정당성을 먼저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업에 있어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가치기준을 세우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일은 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그 관계는 조직의 내부와 외부(민, 관, 군, 경 등등)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할 수 있는 일도 때론 편향되는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적 영역에 있어서도 감정의 갈등은 찰나 속에서도 수 없는 반복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불행한 감정으로 분노하며 국민적 정서로 치부하기보다는 간극을 찾아낼 필요성이 있다. 그것을 요령(要領)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 간극에서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선택적 고민 속에서 스스로는 성장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하여 자기만족으로 그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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