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_부모와 자식은 길 위의 동무

일상 중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by 나힐데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의 애환으로 하나는 평시 아이들 돌봄도 어려웠지만, 주말이면 당직, 비상근무에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벌써 한 세대가 지났으니 지금은 노조도 생겼고 많은 환경 변화가 있겠다). 해서 나의 경우엔 소속되어 있는 기관에서 주관하는 지역 축제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비상근무도 때우고 아이들이 체험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달엔가는 행정홍보지 표지에 아이들 사진이 실리기도 했었다. 또 아이와 함께 시를 써서 지역 시화전에 냈던 경험은 나만의 스토리텔링이고 아이에겐 뿌듯한 자신만의 일화를 만들기도 했었다.


체험 활동은 지역축제 활용으로 1석2조

주말은 도시든 시골이든 참여 의지만 있다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지역축제로 쉴 틈이 없다. 소재는 비슷비슷하나 경비도 절약되고 밖에서 시간 보내기엔 지역축제를 활용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게 없을 듯하다. 손자 아이가 늘 엄마나 아빠와만 보내는 주말에 할아버지 지인들과 만남은 낯설지만도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가까이 귀촌한 할아버지 친구 회동에 첫 등판한 날 마침 금산시 삼계탕 축제가 있어 함께 했다. 음식만으로는 아이들을 꽤 찰 수 없는 축제랄까? 어찌 보면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에서 인삼으로 공략하자니 삼복을 앞두고 삼계탕이 제격이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삼계탕 축제라고 아이들이 제외될 순 없다. 아이들을 위한 코너로 ‘쌍화탕 제조’ 체험이 있어서 손주의 손에 이끌려 따라갔다. 할아버지가 네다섯 살에 기억하는 할아버지처럼 이 손주는 먼 훗날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지 할아비를 또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 같은 날로.


초등 1년생은 시키면 한다

1주 차시 손자는 지루한 시간에 처음 시를 쓰면서 시간 보내는 놀이를 스스로 시작했었다. 어떤 생각으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 묻자, 벽에 걸린 시화작품을 읽으면서 시평까지 했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남자아이 둘을 키웠던 양육자로 남자아이의 경우 텍스트에 약하며 집중도도 게임을 제외하면 약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초등 1년일 때 일기 대신 시를 쓰도록 했었다. 그렇게 쓴 시 365 편중 서너 편은 필자가 보기도 주옥같다고나 할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는 말로 치부해도 말이다. 또 중2년, 사춘기가 고점을 찍고 있었을 때 아들에게 엄마가 아들을 염려하는 시 ‘지팡이’를 써서 주면서 읽고 답시를 써 달랬다. 그랬더니 정말로 내가 써 준 시보다 더 좋은 시 ‘지팡이 2’를 써서 주면서 통곡했더랬다. 그 시로 지역축제 시화 전시회에 참여한 경험은 나와 아이를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팡이 1 / 전송자


산에 오른다


가을자락

청설모 움직임이 부산하다

낙엽 아래에서 흙내음이 올라온다


아들아!

네가 짚고 있는 그 지팡이는

이 엄마란다

산 봉우리 지나 가파른 고갯길

힘이 들거들랑

쓰러지지만 않도록 지탱하거라


네가 홀로 서거들랑

이 산 잔가지 속에 놓아두렴

훗날 네 어깨가 처지거들랑

찾아오렴


나무 그늘이 되어

맑은 공기가 되어

하얀 구름이 되어

네 볼을 어루만지고 싶구나


지팡이 2 / 이창섭 (금릉중 2)


내가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지팡이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지팡이


그 지팡이는

내가 올바른 길을

걷게 도와주네


학령산 가파른 고갯길

일백오 개의 약수터 나무계단

오를 때 내려갈 때 함께하네


PC방으로 갈까 학원으로 갈까

고민할 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도와주네


나의 시작점인 지팡이

언제까지나

내 옆에 남아 날 지켜줄

언제든지 잡아도 될 지팡이


지팡이는 나의 그림자


특별한 경험’으로 ‘특별한 사람‘이 된다

꼭 특별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특별한 경험으로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장치일 수는 있다. 필자는 아이들 교육 제1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엄마인 나 자신을 어떻게 기억시킬 것인가!’였다. 엄마의 이기적인 욕심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빠 역할을 동시에 해 내야 했던 나는 소위 말하는 악의 화신 ‘아수라 백작‘이었다. 조금 스파르타식이었다고는 하나 아이들 입장에선 집이 사막이었고, 극복해 내야 할 세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엄마이지만도 해 줄 수 있었던 몇 가지중 하나는 어린아이들 데리고 ’ 도보여행‘을 강행했더랬다. 항상 먼저는 아이들이 원했을 때 해 줄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하고 그 상황이 아니면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큰 아이가 중 2, 사춘기가 한창일 때 ‘몸이 으스러지게 걷고 싶다 ‘는 말 한마디는 내가 그 나이에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안되어서 못해봤던 ’ 경험‘에 대한 갈망을 알았기에 기꺼이 ’하자 ‘했다. 둘째는 초등 4년, 그때 우리 셋은 ‘길 위를 걷는 동무’가 되었다.


길 위를 걷는 동무, 부모와 자식 관계는

특별할 것 없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 1박 2일, 각자의 보폭은 다르지만 파주에서 과천까지 걷는 도보여행은 모두에게 ‘할 수 있는 것‘의 한계점을 확장하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길 위를 걷는 아들들과 나, 우리는 그야말로 한 팀이었다. 끝없이 걷는 길 위에서 또 얼마든지 그만둬도 되는 여건에서 각자는 육중한 자신의 몸무게만큼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의 시간이었다. 마음이 시끄러웠던 나나, 사춘기로 요동치는 큰 아이의 몸과 마음 그리고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 모두 처음 경험해 본 길 위에서 시간은 먼 훗날 자신을 돌아보는 데 있어 이정표가 되었지 싶다.


자발적 빈곤의 체험현장은 집이었다.

아이들 경제교육 일환으로 용돈관리는 물론 가정형편에 대한 공유는 어린아이들에게 가혹한 현실이었을지라도 가족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그 달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함으로써 가정경제 책임에 있어 가족으로써 각자의 역할에 맞는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모두는 가정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항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주인의식을 갖었지 싶다. 물론 자신의 삶에 있어서 선택과 결정에 대한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소위 나는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자발적 빈곤이 차지하는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면서 자위했다고나 할까?


용돈관리는 어려서부터

2주 차 주말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 초기부터 특별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아이들 키울 때 경험을 되새기면서 손주에게 제안하곤 한다. 1주 차 손주에게 용돈에 대해 언급은 했었다. 돈에 대한 개념, 돈의 필요 가치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울걸 알면서도… 우리는 아주 가끔 회색빛 도는 사진 한 장을 가지고서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곤 하지 않는가? 손주에게도 그러한 빛바랜 회색빛 도는 사진 한 장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 중 하나이길 고대하는 2주 차 동행이다. 손주에게 용돈기입장과 일기장을 준비해 주려는데 아인 한자노트까지 챙겼다. 처음으로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1일 1천 원, 일주일에 7천 원을 주면서 수입에 대해서 그리고 그 수입 중 30%는 저축하도록 하고 10%는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기부에 대한 이해를 강요? 하면서 지출에 대한 개념을 갖도록 했다. 그러자 손주는 바로 “그럼 할머니께 용돈 받아서 4주면 게임 아이템 살 수 있겠다!” 했다. 비록 내가 희망하는 대답이 아닌 엉뚱한 말로 이어질지라도 끊임없는 반복도 또 다른 도전이 된다.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심 3일’은 수행자나 피수행자나 모두가 필요한 덕목인 게다. 결과는 장담 못하지만 과정에서 손주와 나는 또 다른 성장을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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