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나를 마주칠 때

가락리 선착장

by 나힐데

지금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 하지만, 그때는 불가항력적인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불혹 마흔의 자야는 어느 날 어릴 적 있는 곳에서의 존재함이란.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유독 더 춥게만 느끼다 옆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꼬맹이의 경쾌함 속에서 조금은 창피해할 때, 날씨의 온도차를 느끼며 등장한 6살의 자신과 맞딱들었다. 그리곤 그 자야는 시도 때도 없이 일상 속에 나타나 헤집고 다녔다.​


자야는 어느 추석날 시골, 섬에서 살고 있는 큰엄마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촌 오빠네로 갔다. 둘째를 앞세우고 부츠를 벋고 레깅스에 스포티한 옷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 사촌 올케가 말결을 한다.


“우리 고모 카레우먼답네, 원이랑 같이 다녀도 결혼한 사람으로 보지 않겠는데!”

옆에 있던 춘미는

“우리 자야가 고생을 많이 했응께 이제부터는 잘 살 거야~”

안부결에 경인 추석 전날 다녀갔다고 전했다. 식사가 끝나고 시골에 살았던, 겨우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게 삶의 다였던 가난한 시절이 좋았노라고 환담이 오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막내 사촌오빠는 배웅을 하면서

“엄마가 일부러 너를 일이 네로 보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랑께 옛날 일은 잊고 마음 편하게 힘내고 살아라!”

한 말이 그동안 묻고 살았던 자야의 지난날을 깨웠다​


자야는 자동차에 시동을 켰다. 와이퍼를 작동하는데 라디오에서 미투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옳고 그름이란 극히 주관적이라 사는 동안 반복되는 선택,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현실이 얼마나 많았는가라는 잠깐의 생각을 했다.

1973년 전남 신안군 신의면의 가락리 선착장, 옥소호(목포에서 신의도 가는 배)에서 멀리 선착장 깃발이 아른거렸다. 큰 바다 수평선 아래로 잔잔한 파도가 펼쳐지고 점만 한 섬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갯것을 하던 큰엄마 항심은 육지에서 오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점만 하던 배가 점점 커져 가시권에 들어오자 갯것 하던 바구니를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배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멀리 선착장 깃발이 크게 보였다. 캄캄한 배 안에서 엄마 양녀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 옆에서 자야는 자다 일어나 앉았다. 옆엔 다음 섬에서 하선할 승객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객실 밖에서 뱃사람이

“가락리 선착장에서 내릴 사람들은 싸게 준비들 하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양녀와 자야는 일어나 흔들거리는 몸뚱아리를 이리저리 중심을 잡으며 나무계단을 올라 갑판 위로 올라갔다. 양녀는 옥소호에서 종선(큰 배는 접안이 안되어 승객과 화물을 수송한 작은 배)에 갈아탈 때 물건을 먼저 던지고 자야를 안고 종선으로 옮겨 태웠다. 파도에 배와 종선이 동시에 흔들거렸다. 종선이 파도를 가르고 가락리 선착장에 닿자 종선 주인이 밧줄을 던졌다. 선착장에 있던 종선잡이가 밧줄을 잡아 선착장 말뚝에 매어 고정시켰다. 승객들은 종선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딛고 올라갔다. 양녀는 가락리 선착장에서부터는 봇따리를 이고 앞질러 걸어가고 자야는 뒤따라 갔다. 양녀는 자야와 하룻밤을 같이 자고 새벽같이 짐을 이고 마당어귀를 천연히 벗어나더니 사라졌다. 6살 자야는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엄마를 기다렸다. 양녀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와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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