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아리랑

어떤 유년의 기억, 동화 속처럼

by 나힐데

어릴 적을 생각해 보라. 과연 어린이들이 갖는 생각이 말로 표현되며, 그 표현된 말들에 대해 얼마나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졌는지, 특히 언어로 정확히 특정 지어진 역할이 있었는지. 자야의 어릴 적 생활이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무어라 말로 단정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차리고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역할이 주어진 것처럼 말이다.


자야는 앞서가는 엄마의 발 뒤꿈치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가는 길마다 표식이 될 것들을 하나씩 기억하려 했다. 언젠가 이 길을 되돌아갈 수 있도록. 주의보로 진도로 가는 배편은 끊겼고 목포 도심을 벗어나 끝도 없는 시골길을 걸어갔다. 어렴풋이 영암이여 해남이라는 지명이 자야에게는 도통 낯설었다. 그렇게 가다 겨우 집 하나 나오면 들러 엄마는 머리에 이고 있던 꽃무늬 이불 홑청을 내 보이고 흥정을 했다. 그리고는 또 발길을 돌려 다음 마을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몇 번인가 했다.


그렇게 진도 오일시장까지 내쳐왔더랬다. 그렇지만 자야를 데리고 가는 지막리 이모네는 오일시에서도 한 참을 더 가야 했다. 오일시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다 마을을 벗어나려니 커다란 저수지가 나왔다. 그 저수지 위로 해는 저물었고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달빛으로 모녀는 밤길을 걸었다.


“어짜것냐, 나 혼자는 도저히 느그들 다 먹여 못살리것다. 그라니 니가 나 좀 도와줘야긋다. 그래도 니가 맘도 넓고 이정스러운께 이모네에서 국민핵교 나오믄 엄마가 덜 힘들것다. 이모가 졸업하도록을 데리고 있겠다고 안하냐? 이번에는 느그 언니 보낼라 했든만, 언니는 죽어도 안간다 하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또 자야에게 말하듯 중언부언했다. 자야는 그저 그려려니 했다. 어린 자야에게 자기주장이란 없었다. 언제나 상황만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싫다고 거부하지 못하였을 뿐이지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모두는 자기식대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큰 마을 몇 개를 지나 지막리에 도착하자 세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가장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자니 마을 중간에 우물 한 개가 나왔다. 우물 왼쪽으로는 논들이 즐비해 있었고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작은 샘터를 지나 세 번째 집이 자야 이모네 집이었다. 자야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밤중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들어서자 오른쪽에 치칸과 돼지우리가 있었고, 정면에는 큰 정지가 딸린 방 한 칸과 소 외양간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뒷산을 뒤로하고 반듯한 커다란 집이 앉아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 바로 왼쪽엔 커다란 나무둥치가 세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모네 집은 그 시대 신식으로 지은 파란색 스레트 지붕의 집이었다. 그렇지만 본체와 맞은편의 돼지우리와 닿아 있는 작은 샘터를 앞에 두고 있는 아랫집은 검은 기운에 스산했다.


아침에야 자야는 왼편 작은방 문을 열고 우물가 옆에 살구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포도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엄마가 없다는 것도.


안방에서 자던, 자야보다 두 살, 네 살 아래 외종사촌 호와 심은 일어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이모와 이모부는 이미 밭일을 나갔고, 자야는 심을 업고 호를 어르면서 새벽녘에 이모가 한 말을 쫓아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했다. 밖은 비가 쏟아질듯하고 비바람에 나무가 물먹기 전에. 정지에 나무도 옮겨 놓고, 쇠죽 쑤기 위해 작년 묵은 깻단이며 콩단을 작두질했다.


진도아리랑


엄마

나 오줌 누고

아무리 늑장을 부려도

머리 위 보따리는 마냥 작아져 갔다


엄마

나 배고파

코 닦은 손으로 침 훔치며

디미는 주먹밥


빈대떡 냄새나는 오월시 장터를 지났다

산도 저수지도 지나서

뱀꼬리는 보이지도 않는데 걸었다


하얀 밤 달빛 맞고

울보 치호 업고

보리밥을 배부르게 먹었다


십오일 오월시 장이 섰다

점만 한 보따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나를 두고 가면 십리도 못 간다 하였거늘

날 데려가 주실래요 엄마


아리아리랑

왼손 가슴팍에 붙이고

오른손 허벅지 내리친다

쓰리쓰리랑


비뚤어진 입술 사이로 새는 장단이여

내 딸 알아듣게 노래해 보세

칭얼대는 녀석 아리아리랑

보리밥에 배불러서 아리랑아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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