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가야지

여러 조각의 낡은 빛, 큰엄마

by 나힐데

부르지 않으면 잊는다 우리 기억이라는 것은. 하지만 몇 가닥의 기억은 무채색의 흑백사진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더 정확한 것은 어떤 실체나 정의 없이 여러 조각의 낡은 빛들이 하나의 커다란 형상을 만들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면서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야가 늘 믿어라 하는 큰엄마가 그랬다. 구로공단에서 첫 월급을 타자 자야는 엄마와 큰엄마에게 빨간 내의가 아닌 고운 깨끼 한복을 똑같이 맞춰 보냈다. 그게 엄마에게 복수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엄마를 바다에 흘러 보냈을 때였다. 결국 그것은 자신의 왜곡된 감정의 또 다른 부채라는 것도.


밥 숟가락이 채 입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큰엄마는 베네아짐에게서 자야를 낚아채듯 데리고 쏜살같이 가락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앞질러 가는 큰엄마를 따라 자야는 달리듯 따라갔다. 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해는 잔잔한 파도 위에 내려앉은 만큼 춤을 추고 수평선 멀리 까만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큰 엄마는 자야에게 여객 표와 과자 한 봉지를 주면서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 돌돌 말아 자야 손에 쥐어줬다.

“물 때가 좋응께 금방 오것따. 워짜든지 공부는 해서 까막눈은 면해야 헌다. 우리까지는 여그서 살아도 느그들은 도회지 나가서 사람같이 살아야제 않겄냐!


큰엄마는 큰아버지보다 머리 하나가 큰 키만큼 얼굴도 기다랗고 갸름했다. 신의도 본 섬에서도 또 40여분을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치섬’이라는 작은 섬이 친정이라 했다. 큰엄마는 자신의 이름을 알지만 쓸 줄도 몰랐다 그렇지만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


큰 엄마는 본체보다 더 큰 배터리가 달린 라디오를 허리춤에 매달고 밭에 김을 매면서, 갯것을 하면서 그날그날의 뉴스를 듣고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모든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해 줬다. 한 여름 밭일 후에 점심을 먹다 가끔 된장 그릇 속에서 나오는 구더기를 숟가락 끝으로 거둬 마당에 있는 개한테 던져 주다가, 모기가 윙윙 거리면 꼭 우리말을 알아듣는 모냥 “이 잣것들아 저리가야~”하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또 구전으로 들은 이야기들, 라디오에서 들을 이야기들을 각색까지 해서 밤새 들려줬다.


한 번은 큰아부지가 돼지 부대(지금으로 말하면 교미)를 붙인다며 흔질에 있는 뉘 집의 수퇘지를 몰고 와서는 큰엄마네 집 돼지우리에 집어넣고 어린 우덜은 못 보게 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 해질 무렵 큰아부지는 돼지우리에서 부엌에 있는 큰엄마를 향해 “땅꼬멈~ 돼지 밥 올리소, 돼지 새끼 날라고 하네~”, 큰엄마는 어미돼지 산달에 맞춰 미리 준비해 놓은 늙은 호박이며 절강 한 고구마 그리고 미강(쌀을 찧을 때 나오는 속겨로 아이보리색 가루)으로 특별히 만든 밥을 정성스럽게 떠 주면서 “워따 수고혔따!”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자야는 큰엄마와 큰아부지를 보며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자야는 그렇게 해서 목포에 있는 엄마네 집으로 왔다. 엄마네 집은 목포 유달산 달동네였다. 정지는 주인집 정지를 같이 사용했고 방 한 칸에서 엄마와 언니 동생들이 함께 살았다. 국민학교를 어떻게 입학했는지 기억엔 없다. 다만 4학년인 언니가 쉬는 시간이면 1학년 교실로 와서 연필을 깎아주곤 했었다. 한 번은 노는데 정신 팔려 낮에 해야 할 숙제를 못했다. 천장에 달린 전기불이 손에 닿지도 않았지만, 숙제를 하기 위해 불을 켤 수가 없었다. 자야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부엌에 불을 켜자 부엌문을 열어 그 빛으로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도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야는 머리에 봇짐을 이고 집을 나서는 엄마를 따라 진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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