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존재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증명되는 것

by 나힐데

인생이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갈린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과연 온전히 자신만의 선택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아주 사소하지만 적극적인 개입으로, 예측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은 신의 섭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자야에게 큰엄마가 그러했듯이!

큰엄마 집의 여름 저녁은 마당 평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평상 옆에는 보리 떼짚으로 만든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바람이 부는 대로 모깃불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자야는 오른쪽 다리를 탁탁 쳤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사촌 동생은 팔뚝을 탁탁 쳤다.

“낮에 라지오에서 그라는디 미국 대통령이 온다고 안 하냐? 11월에 온다고 하든디, 워따 유독 모기가 극성인거시 낼은 비가 올란갑다. 후덥지근한 거시, 저기 봐라 도깨비불도 왔다 갔다 안 하냐!”

큰 엄마가 가리키는 곳은 가락리 선착장 가까운 조그마한 동산인데 진짜로 횃불 같은 것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때부터 큰 엄마는 도깨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 슨상님이믄 머 하겠냐, 웬수도 그런 웬수는 읎시야! 어지레밭 지나 상태서리까지 가는 길목에 재가 있는디, 달도 없응께 별 보고 갔는디 그 재에 오른께 하늘에 있는 별들이 다 땅으로 내려와서는 갑자기 도깨비로 변했다고 안 하냐?, 도깨비가 길을 막고 못 가게 한께 밀쳤는데, 그 도깨비들이 내기를 하자고 했다더라”

밤은 깊어지고, 하늘에 별들이 무수히 떠 있고 큰엄마 이야기는 자장가가 되었다. 자야와 사촌들은 졸면서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밖은 아직 캄캄한데 갑자기 번개가 쳤다. 비가 오기 시작하고 자야는 일이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꿈이었다. 자야는 일어나 가락리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배가 오면 타고 목포에 있는 엄마한테 가리라 다짐을 하면서 달렸다. 자야는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다시 봄과 여름 사이, 새벽에 큰엄마는 호미를 들고 밭으로 큰 아버지는 낫을 들고 논으로 나갔다. 해가 뜨자 자야는 일어나서 눈을 부시며 일이네 집으로 갔다.

자야는 일이네 집 뒤 느티나무를 지나 작은 텃밭에서 어린 호박을 따 가지고 와서는 도마에 올려놓고 썰었다. 방에 있던 일이가 울자 자야는 방으로 들어가 일이를 업고 밖으로 나왔다.

“누나가 업응께 좋챠? 엄마 오기 전에 반찬을 해야 쓰니까 조용히 있어라잉?”

자야는 업혀있는 일이를 위해 연신 얼르듯 무릎을 굽혀다가 엉덩이를 치켜들기를 반복했다. 그때 배가 부른 배네 아짐이 들어오면서,


“내가 못살것따, 저 웬수 땜시 못살아야~ 밤 새도록 기집질을 했는지, 도박을 했는지 새벽에 와서는 퍼질러 자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렇게 말하고 배네 아짐은 갑자기 배를 잡고 주저앉으며 숨 쉬기를 힘들어했다.

“아짐! 아짐! 어쩨 그라요~, 많이 아퍼라우?”

“아이고 나 죽겄네! 자야, 언능 느그 큰 엄마 불러주라, 언능아~”

자야는 큰 엄마 집으로 달려가 큰 엄마를 불렀다. 큰 엄마는 쇠죽 끓이는 무쇠 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피면서

“자야는 집으로 가 있어라.”

일이를 업고 자야는 큰 엄마 집으로 갔다.

그 해 겨울 해 질 녘 자야는 등에 일이 동생 희를 업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그 옆에서 일이는 앉아서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겨울눈이 내리는 어느 날, 면사무소 직원이 큰 엄마한테 무언가 주고 갔다. 큰엄마는 마루에 올려놓고 나무하러 뒷산으로 가고, 자야는 마당에서는 사촌 동생 둘이 눈을 맞으며 놀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큰 엄마는 깜박 잊었다 생각나듯이


“워메 깜빡했시야, 낮에 면서기가 주고 간 종이가 있었는디, 옥아 마루에 있을 것인디 갖고 온나!”


큰 엄마는 큰 아부지한테 그 종이를 건네자 큰아부지는

“옥이 국민학교 입학통지서인디!”

“워메 그라믄 자야는 워쩐다냐~ 자야도 핵교를 가야는 디!”

배네 아짐, 일이 아버지, 자야, 일이가 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려고 하는데 큰 엄마가 밖에서 불렀다.

“일이네 일이네, 큰 일 났시야” 큰 엄마는 안방 문을 열고는

“아야 언능 느그 엄마한테 가그라, 작년에 보냈어야 허는디 잊어 먹고 있었다. 너도 초등학교는 나와야지 언능 느그 엄마한테 가야한께 후딱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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