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삶이란 살아가는

매 순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예수가 되고

by 나힐데

희생은 원해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십자가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그렇게 시지프 신화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매 순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예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뜨문뜨문 경험하던지, 또 누군가는 일생일대에 한 번의 경험으로 스스로의 속박에서 자유했을 수도 있다.


발길질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일 수 없는 순간, 세모 불빛이 나오는 그 오빠의 눈을 통해 자야는 어떤 여자를 봤다. 날씨가 흐릿하면 이모네 집 주변을 도는 미친년은 아니란 걸 직감했다. 그 여자는 그 오빠를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오빠의 정신을 갉아먹으면서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면서. 그때 이모부가 아래채 부엌문을 열고 들어 오자 그 세모 불빛은 두려움에 떨며 으스러졌고, 그 오빠는 아래채 방에 다시 감금되었다. 이모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번에는 판자를 가지고 와서 아래채 방문을 가위표로 막고 망치질을 했다. 그 광경을 보며 자야는 그 많은 날들의 두려움이 이모네 집으로 다 모인 것 같았다. 그 모든 잡귀를 자신이 불러들인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자야는 이상한 말을 했다. 이모가 이상해졌는지 자야가 이상해졌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끔씩 나타나서 자야에게 말동무가 되었던 심연의 자야는 더 이상 나타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녀도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자야의 죄의식으로 자리매김했는지도 모른다. 헛소리를 하면서 고열에 시달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모는 자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놈하고 니가 상극이라 하지 않냐? 그래서 그놈이 괜찮아질 때까지 니가 여기에 좀 있다 좋아지믄 집으로 오니라, 여그 스님 아들이 니랑 같은 반이라고 항께 핵교도 같이 다니고야…”


학교 가는 길 스님 아들은 말이 없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내가 ‘고아’였다면 그니는 ‘땡중’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등하교가 이뤄졌다. 간간히 산 길 오가다 뛰었다가, 걸었다가, 나뭇잎 주웠다가, 들꽃을 꺾었다가, 그렇게 한 여달이 지났다. 컴컴한 그믐날 산속의 밤은 검은빛이 감돌았다. 잠 속까지 검은빛으로 가득 찼다. 자고 있던 자야는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입 속으로 물컹한 무엇이 들어온 것을 감지 한 순간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방문이 확 열리면서 스님 부인이 들어왔다. “이 땡중아! 니가 사람이냐? 이럴 줄 알았시야, 오메 부처님이 너를 가만히 두겄냐~, 천지신명이 너를 안 잡아가면 내가 사람이 아니여야, 한 두 번이 여야제 시방 니 눈에는 불쌍한 어린것이 밥으로 보이냐?”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밖엔 자야랑 함께 등하교를 같이 하던 ‘땡중’이 서 있었다. 자야는 두려워해야 할 감정임에도 타인에게 비칠 수치심과 창피함이 먼저 앞섰다. 그때 해소되어야 할 자야의 두려움은 내면으로 숨어 스스로를 탓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기만하는 괴물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괴물은 자야와 함께 자신이 지은 죄만큼 자신을 괴롭힘으로써 매 순간 자신을 정화해 나갔다. 순간순간 자신의 오염도만큼 그렇게 정화하면서 순도를 유지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살아 있으니까 비록 훗날 자학이 될지라도.


자야가 이모네 집으로 돌아가고 며칠 지나 이모부의 아들은 죽었다. 장가도 못 간 주검이라 상여도 없었고, 묘도 쓰지 않았다. 대신 이모부는 커다란 항아리를 지고 주검을 앞질러 갔다. 살구나무가 있는 우물 앞에 굿 상이 펼쳐져 있었다. 무당은 막걸리를 벌컥이더니 집 주위를 돌며 입으로 막걸리를 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