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 제거 수술하던 날

부제 : 지하 벙커 수술실의 고깃 덩어리

by 마담 리에
2018년 10월 2일 수술 요약정리
-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은 프랑스어로 intervention 이라고 함.
- 수술 오전 9시에 실시
- 수술 이후 집에 귀가 une hospitalisation ambulatoire


집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수술 당일 아침 일찍 8시 30분 정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도착한 환자 한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프랑스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병원에 같이 왔다. 그런데 수술실로 들어가야 할 때는 보호자와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나 혼자 수술실로 들어가야 했다.


딱딱하고 차가운 환자 침상에 누워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 위치한 수술실은 내가 누워있는 것과 같은 침대가 수없이 많이 놓여 있었다. 마치 벙커가 연상되기도 하고 도살장이 연상이 되기도 하였다. 나의 몸뚱아리는 차가운 고깃덩어리처럼 덩그러니 침상위에 놓여 있었고, 나는 혼자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와 마취의가 도착했다.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나로서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어를 조금 하는 간호사가 들어와서 영어로 통역을 할 수준은 안 되었고, 프랑스어의 억양이 잔뜩 묻어나는 아주 간단한 영어 문장으로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이 지경에 와서 설명을 들어봤자 무슨 소용 있겠는가 싶어서 하늘에 맡긴다는 심정이 되었다.


마취를 받고 나자 스르르 힘이 풀리고 의식이 저만치 멀어져 갔다. 그리고 수술이 진행이 되었고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에는 내 얼굴 위로 비추는 밝은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시고 어느새 수술은 끝나가고 있었다. 의사가 한말 중에 impeccable라는 단어 하나만 이해하고서 수술이 무사히 종료되었다고 짐작을 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에 찢어진 자국과 꿰맨 자국, 실이 보였다.


드라마에서 보면 수술실 바로 앞의 의자에서 보호자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지만 내가 수술을 받은 지하의 수술실 밖은 벙커 같은 느낌으로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인데다가 창고나 주차장으로 쓰일 것 같은 넓고 차가운 그 지하실에는 딱딱하고 작은 수많은 침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그 차가운 지하실에서 덩그러니 누워 있어야 했다. 수술 이후의 나의 상태를 병원의 관계자의 누군가가 와서 체크를 해주어야 나는 비로서 보호자 남편이 있는 병실로 돌아갈 수 있는 절차였다.


그러나 30분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다.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도 않았기에, 프랑스어로 제발 와달라고 말 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힘조차도 없었다. 또 꾸역꾸역 프랑스어로 내가 생각을 해내서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무슨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이해할 수도 없고, 질문을 이해할 수 없으니 대답도 할 수 없는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말없이 딱딱한 병상 침실에 누워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제발 와주세요. 저는 언제 병실로 돌아갈 수 있나요? 이 지하실을 언제쯤이면 떠날 수 있죠? 여기는 너무 춥고 저는 도살장에 끌려온 짐승 같아요."라는 말이...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수없이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며 파헤치고 있었다. 바로 이 날.... 이 지하실에서... 수술 받고 나서의 이 지하실에서의 이 느낌은 머리에 각인되고 가슴에 새겨져서 반드시 내가 내 앞가림을 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어를 정복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언제까지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가? 나의 입과 나의 뇌, 그리고 나의 뇌가 있는데 왜 내가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남의 입과, 귀, 뇌를 이용해야 하는가? 혹시 만약에라도 이 날의 경우처럼 남편이 내 옆에 없을 경우에 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나에게 닥친 일들을 어떻게 나는 수습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 프랑스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의 언어,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기나긴 전투가 시작되었다. 바로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한 병원의 수술 지하실에서...


프랑스의 병원의 시스템이 전부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수술 받았던 그 날을 의사는 수술만 전담으로 하는 날로 정해서 그 날 하루 온 종일 의사는 수술만 했다. 한 사람 수술 받고 나면 그 다음 환자, 또 그 다음 환자...... 그래서 마치 나의 육체가 고깃덩어리가 되어 침상 위에 누워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오랜 기다림을 하고 나서 겨우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 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 의사가 병실로 확인하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제발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은데 나는 이미 기력이 다해서 화낼 힘도 없고, 의사가 마냥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은 기다리는 데 지쳐 있었다. 사실 지칠만도 했다. 오전 8시 30분에 도착해서 병원에 4시까지 머물렀으니 말이다. 남편은 모든 간호사들을 독촉해서 의사를 마침내 불러냈다. 그리하여 의사가 수술 받고 이후에 지켜야 할 지침에 대해 말하고 나서 가도 좋다.. 라는 한마디를 했고 우리는 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은 방문간호사(infirmiere à domicile)에게 전화를 했다. 나에게 주사를 놔줄 방문간호사(infirmiere à domicile)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주치의에게 전화를 해야 되었다. 주치의의 비서가 나를 담당해줄 방문간호사(infirmiere à domicile)의 연락처로 전화를 하였다.


정말 남편의 도움 없이 내가 수술을 받고 주치의와 방문간호사에게 모두 전화해서 모든 서류와 각종 전화를 처리는 정말로 불가능했다.


해외에 살면서 거기에서 구사하는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우울과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이 병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나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제대로 되지 못한 그 상황에 가슴이 메이고, 하루하루 또 울고 공부하고 그리고 또 울고 공부하고, 마음의 상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쌓고, 또 가슴에 묻고, 들어도 들어도 귀가 뚤리지 않는 기나긴 나날들…


병원 다니면서 듣는 생소한 단어들..

영어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정말이지 프랑스어 답답하고 기나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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