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기울어진 운동장 재편성
요약
방문 간호사 치료
수술의와 항데부
암종양 의사와의 항데부
피검사
2018년 10월 4일, 방문간호사
10월 2일 종양제거 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이 간호사는 방문간호사(infirmiere à domicile)라고 하며 이동하기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집으로 다니면서 주사를 놓아주거나 치료를 해준다. 이 간호사와 접촉을 하기 위해서 먼저 주치의에게 문의를 했고, 주치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하는 방문 간호사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문 간호사는 주치의의 부인이었다. 시골 동네의 특징이다. 세 명만 건너면 모든 사람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간호사나 의사가 방문해서 치료해 주는 것은 영화에서만 본 것 같은데...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나서 방문간호사가 우리집에 격일로 방문해서 수술을 한 오른쪽 가슴의 붕대를 갈아 주었다. 그녀는 붕대를 갈아주면서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열을 강하게 쏘이기 때문에 그 불을 끄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우리 동네에 딱 한명이 그것을 할 줄 안다며 그 사람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기도 했고, 본인이 아는 다른 사람들의 유방암에 걸린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infirmiere à domicile 방문날짜 (10/4 목, 10/6 토, 10/8 월, 10/10 수, 10/12 금, 10/14 일)
2018년 10월15일, 종양제거 수술 이후 항데부
요약
RDV avec chirurgien à 15H00
RDV avec oncologue à 16H00
오늘은 2명의 의사와 약속이 있었다. 첫 번째는 수술 담당의와의 약속이며, 두 번째는 암종양 의사와의 약속이었다.
암종양 제거 수술은 10월 2일에 받았다. 그리고 약 2주 후인 10월 15일에 수술의와 다시 면담을 하게 되었다. 오늘 면담의 목적은 수술 이후의 경과를 보는 것 이외에 앞으로 항암치료를 받게 될텐데, 항암치료를 받을 때 매번 혈관 주사를 이용해서 항암치료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Portacath를 심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Portacath란 항생제나 화약 요법 약물을 장기간 정기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환자를 위해 정맥에 접근할 수 있는 이식 장치라고 한다. 수술의에게 Portacath를 어떻게 심을 것인지 설명 들었다. 그리고 수술은 11월 6일에 진행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날 수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처방전 잔뜩 받아들고 왔다.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프랑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의사는 수술 당일에 사용할 메스는 비롯해서 약물에 대해 처방전을 써준다. 그러면 그 처방전을 들고 내가 직접 약국에 가서 필요한 것을 가지고 병원에 가야 한다. 그래서 병원에 한번 다녀오면 엄청난 양의 처방전을 잔뜩 들고 와서 약국에 들러서 그 약들을 받을라치면 쇼핑백 하나 가득 채워 오는 것 같다.
암종양 의사와의 면담 16시에는 항암치료 하는 날에 본인이 비번이기 때문에 다른 의사가 대신 진행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진행 과정은 동일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귀가했다.
2018년 10월17일, 항암치료 중의 피검사
항암치료는 총 15번을 받게 된다. 3번은 3주에 한 번씩 받게 되는 큰 치료이고, 12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받게 될 치료이다. 앞으로 항암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15일마다 한 번, 모두 6회에 걸쳐서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확한 날짜는 항암치료 받기 48시간 전에 피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피검사를 받고 나면 검사 결과를 담당의사가 바로 본인 컴퓨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행정 시스템은 토 나올 만큼 느리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나 놀라운 최첨단의 시스템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 나라... 참으로 적응하기 힘들다. 뭐 하나 중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하여 항암치료 받기 전에 처음 받은 피검사의 결과는 이상 없음(無).
나와 프랑스인들과의 만남은 유방암치료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유방암이 걸리기 전에는 어디를 가던지 남편과 항상 함께 했다. 남편이 본인의 친구들을 만날 때 나도 따라가고, 남편이 본인의 부모와 친척들을 만날 때 나도 따라갔다. 모든 것이 남편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나의 취향은 물어본 적도 없고 궁금해 본적도 없는 남편을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본인들 취향대로 차려진 식탁위에 저 구석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은 것같은 프랑스에서의 나의 자리였던 것이다.
하루에 버스가 몇 대 없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자가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슈퍼에 장을 보러 가는 것도 걸어서 가면 왕복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무거운 것은 제대로 사서 들고 올 수도 없는 거리이다. 슈퍼 출입구 옆에 카트가 놓여 있는 자리에는 항상 노숙자(SDF)가 대기하고 있으며 그들은 슈퍼를 들어가는 고객들에게 당당하게 인사를 하고 돈을 달라고 말을 건넨다. 내 얼굴에 두려움과 당황스러운 표정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려웠던 것이고 그 이해하지 못했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서 보이는 당황스러움이었다. 마흔이 넘은 중년의 나이에 어른으로써 나의 몫을 해내야 되지만 언어전달 능력 부족, 운전면허 미소지한 사람으로서 나는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남편에 기대어 사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남편의 세상에 내가 끼어 들어가서 거기에 맞추어 살아갔던 삶이 유방암치료를 계기로 남편이 나의 삶의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치료를 위해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남편도 함께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2016년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이후로 단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진 적은 처음이다. 주치의, 방문간호사, 수술 담당의, 암종양 의사, 병원 접수처 직원들, 피검사 laboratoire 직원들, 약국 직원들, 앰뷸런스 기사들, 등등...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 재편성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