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 전·후 큰 차이

by 마담 리에

2018년 12월 03일, 프랑스어 수업


나에게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과 후의 분명한 큰 차이가 있었다.


유방암 받기 전에는 남편이 원하는 것이 우선순위였고, 내가 원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항상 남편 스케줄에 따라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고 주말에는 집안 수리, 나무베기, 울타리 담장 설치하기, 정원 가꾸기, 그 중에서도 가장 스트레스는 베란다 공사였다. 남에게 맡기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서 남편과 둘이 콘크리트 작업 및 베란다 공사를 둘이서 하다보니 20킬로 시멘트를 옮기는 것은 물론, 콘크리트 까는 작업도 같이 하다보니 나중에는 기계에 자갈과 모래를 넣고 시멘트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그 화를 어찌하지 못해서 나에게 본인의 감정의 쓰레기들을 필터링 하지 않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프랑스어로 남편은 그 화를 쏟아냈다. 프랑스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였지만 그의 분노와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하나 둘씩 받아서 나의 마음은 멍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쌓이고 쌓이고 너무나 많이 쌓여 이제 가슴이 답답한 지경을 넘어서서 머리 끝을 뱅뱅 돌며 우울이라는 수도꼭지를 틀어버렸다. 그 와중에 그 모든 감정을 제대로 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가슴의 응어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씨꺼먼 암덩어리라는 형태로 구현되어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참에 유방암 진단이라는 것을 받음으로써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문득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으니 그 날 하루를 숨쉬며 사는 것 같았다. 오늘도 눈을 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왕 사는 기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즐겁게 살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않겠는가? 라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뭘까..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죽더라도 내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심정으로 죽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프랑스어를 배워야 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도시에 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프랑스 자연 지역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시골 깡촌에 살다보니 도시에 나가는 것은 엄청난 미션이었다.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나가면 저녁 7시에 집에 도착하는 버스만 있기 때문에 남편은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러 도시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이용하고, 책을 보고 최선을 다해서 독학으로 A2 과정까지는 마쳤다. 그러나 문제는 말하기와 쓰기였다. 쓰는 방법은 모르겠고 남편은 프랑스 원어민이지만 프랑스어를 배우는 초보 외국인에게 프랑스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만한 프랑스어 선생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나는 독학에서 벗어나서 실제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에게 배우고 싶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인터넷 강의라고 하더라도 프랑스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어의 억양이 가득 담긴 강의를 듣고 싶지 않았다. 프랑스에 살면서 필수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행정처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병원에서 받는 수술과 치료를 위해서라도 나는 프랑스어 수준을 하루 빨리 향상시켜야 했다. 내가 내 생각을 제대로 여기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프랑스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남편에게 언제까지나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것과도 같았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싶었다. 나의 장애를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성인의 개체가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내가 한국에서 모아 둔 돈으로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닐테니 남편 너는 동의만 해 달라고 말이다. 남편의 돈은 건들지도 않을 테니 내게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부터 프랑스어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집을 떠나서 아침 버스를 탈 때의 그 기분, 그 해방감, 잠시나마 집안일과 남편 뒷바라지를 접어두고 내가 먼저 살고 봐야 겠다는 그 충만한 느낌으로 나는 프랑스어 학교에 도착했다. 원래 수업일정은 월,화,목,금 이지만,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인터뷰에서 화요일은 유방암 치료 때문에 병원에 가야 되므로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므로 월, 목, 금요일의 수업을 받게 되었다.


대머리이기 때문에 모자를 하루종일 쓴 채로 밖에 있어야 하는 것은 두피가 숨을 쉬기 힘들기 때문에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해방감이 신체의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았다. Claudia 선생님은 따뜻하게 나를 환영해주시고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하더니 나를 B1 레벨로 정해주고 드디어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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