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와 생존의 본능

by 마담 리에

2019년 1월 15일, 항암치료 4 et 심장검사

2019년 1월 15일 화요일 아침 7시 30분 앰뷸런스 집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심장 검사와 항암치료의 일정이다. 심장 검사하는 병원과 항암치료를 받는 병원이 다르므로 오늘도 장거리 마라톤이다. 항암치료를 견뎌내기에는 기본적으로 심장이 튼튼해야 한다. 항암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심장검사가 3회가 있다. 항암치료 받기 전에 1회, '탁소텔' 또는 '도세탁셀' 이라고 불리우는 빨간색의 항암 치료를 3회 받고 나서 오늘 두번째 심장검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심장검사는 한달 뒤에 있다고 한다.


오늘 두 군데 병원에 나를 데리고 갈 앰뷸런스 운전 기사는 ‘삐에르’이다. 본인 직업이 운전하는 것인데도 길도 헤매는 그는 운전하면서 엄청 투덜대기 때문에 그의 차량에 탈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지 않아도 몽펠리에에 진입하는 길을 출퇴근 시간대는 차량 정체가 심한데 오늘도 가던 길이 틀려서 또 투덜대며 신경질적인 운전을 했다. 다행이도 검사 시간 9시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그나마 의사가 정말 친절한 여성분이어서 다행이다.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나의 심장에는 아직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남편은 나의 엄청나게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에 무한 부러워했다. 시아버지가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으로 인해 사십대에 인공 심장을 수술 받았다. 그러므로 남편은 본인의 불규칙적으로 뛰는 본인의 심장에 늘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다가 나의 심장이 매우 규칙적으로 뛴다는 말을 듣더니 나의 심장을 엄청 부러워 했다. 나의 심장이 정말 자랑스럽다. 훌륭한 DNA 덕분에 나의 신장의 일부분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여길지는 예상치 못했다.


이 자랑스러운 심장 검사 결과를 가지고 항암치료를 받으러 두번째 병원으로 이동했다. 두번째 병원으로 이동 전에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심장검사를 받았던 병원에 있던 환자 한명을 엠뷸런스 기사인 ‘삐에르’가 데리고 안과 병원에 들렀다. 밖에서 ‘삐에르’가 나오는 것을 남편과 같이 기다린다. 하루종일 나와 병원에 동행하며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남편에게 너무나 고마운데 내 몸이 아프고 언어장애도 와서 내 앞가림도 안되는 상황이다보니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있다. 나의 일부분도 내어줄 것처럼 사랑해서 했던 결혼이었는데 막상 내가 아프고 내 앞가림도 안되니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다.


아무튼 두번째 병원에 도착했다. 드디어 항암치료 시작이다. 점심은 대략 이렇게 나온다. 설익은 감자 야채와 생선 빠네 그리고 빵, 비스킷, 페리에, 그리고 과일이다.

IMG_8089.JPG?type=w773 항암치료 중의 점심



오늘부터 매주에 한번씩 받는 항암제인 ' 파클리탁셀'을 투입받기 시작했다. 드디어 빨간 악마 투입은 끝나고 투명한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이 주사기를 통해 몸 안에 심어놓은 Portacarte를 통해 액체가 몸안으로 들어온다. 잠이 엄청나게 쏟아진다. 화약약품의 무서움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약품으로 사람의 목숨을 좌우지 할 수 있겠구나 싶다. 쏟아지는 잠에 저항을 할 기력조차 없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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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2일, 항암치료 5


2019년 1월 22일 화요일이다. 3주 간격으로 진행이 되었던 항암치료가 3회에 걸쳐 끝이 나고 지난주부터 일주일에 한번으로 진행이 되는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악마가 몸 속으로 스며 들어와서 나의 모든 에너지를 모두 빨아 먹는 듯한 '탁소텔' 또는 '도세탁셀’의 항암제 투여 기간 동안의 나의 인생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현실로 인지가 잘 되지 않았던 나날들이었다.


유방암 진단부터 셀 수 없이 많은 검사들을 받고 종양제거 수술, 그리고 항암제를 투여받기 위해 몸 속으로 port à cath를 심고 항암치료를 받는 그 모든 과정이 인지하기에는 너무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의 이 시기의 삶은 회색빛이었다. 신체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사고할 수 있는 뇌의 기능도 감소했던 걸까?


아침에 눈을 떠서 일어나면 나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구나.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끝나는 건 아닌가 보다 싶으면서 작년 이 맘때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삶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신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물어보고 싶어도 아버지는 이제 나에게 말을 걸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 살아생전 효도하라는 어른분들 말씀을 항상 들었지만 나의 현실에 닥친 일들을 해내기도 숨가쁜 나날들 속에 전화 통화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2016년 한국을 떠나서 프랑스로 올 때 병문안을 했던 날 딸이 프랑스에 간다는 말에 아버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어느덧 그렇게 힘들었던 '도세탁셀’의 항암치료가 끝나고 이제 ‘파클리탁셀’을 투여받기 위해 매주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일정이다. 이 시기가 되고서야 비로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앰뷸런스가 9시30분 집 앞 도착했다. 오늘은 꺄홀이 날 병원까지 데려다 준다. 내가 여자인지라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대하기에 좀 더 편하긴 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잘 고려하지 않고 차선의 도로 통행량 흐름을 예상 분석이 안되는 그녀는 늘상 구불구불한 도로를 덜컹덜컹 빠르게 운전한다. 그래서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면 구토감이 밀려온다. 앰뷸런스를 탈 정도의 환자이면 아파서 혼자 이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일텐데 도로 감속장치가 있는 범프 지역에서는 그녀처럼 덜컹 덜컹 과격하게 운전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접수대에도 따라와서 뒤에 앉아서 침착하지 못하게 다리를 덜덜 떨면서 자꾸 나를 재촉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내가 접수대에서 본인이 필요한 서류를 받아오자 재빨리 낚아챈다. 언제 끝나는지 물어본다. 3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내가 끝날 시간 정도가 되자 환자실을 모두 뒤져서 내가 있는 병실을 알아내는 그녀…


오늘은 군것질이 땡겨서 병원에서 제공하는 군것질을 하나씩 모두 맛봤다. 식욕이 생겼다는 건 좋은 신호이겠지. 몸이 더 이상 아래로 추락할 수 없는 바닥까지 아프니까 사람의 생존의 본능은 무의식적으로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기운 차릴만 하니까 식욕이 바로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추락했으면 이제 남은 것은 올라가는 차례인 듯 싶다.


오늘의 점심도 지난주와 비슷하고 후식으로 바나나만 다르고 페리에 대신에 바두아로 바뀌었다. 이 병원에서 직접 요리는 하지 않는다. 식품 거래처에서 점심을 조달해 온다. 이 병원의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쓸데없는 인력 낭비도 없고 시간 낭비도 없다. 프랑스의 행정 시스템과는 극단적으로 상반되게 실용주의와 효율성이 그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는 병원에서 그들이 얼마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지 보고 느낀다.

IMG_8156.JPG?type=w773 정말 먹을 것 없는 점심 식사



나처럼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프랑스인 배우자와 결혼해서 프랑스 시골에 정착을 한 경우에 프랑스어를 실제 생활에서 내 입으로 말할 기회가 거의 없다. 몸은 프랑스에 있지만 언어를 배워서 잘 말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치료받게 되면서 나의 의사표현을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여전히 거의 알아 듣지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과 나의 요구를 조금씩 요청하며 프랑스어를 배워가고 있다.




2019년 1월 29일, 항암치료 6 : 프랑스어 전화공포


오늘은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가속화하는 듯 싶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던 처음에는 뇌에서 처리해야 하는 새로운 정보들이 많아서 하루가 길게 느껴졌던 것들도 여러차례 해보고 자동화가 되고 나면 뇌에서 자동화가 되어서 몸이 알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거겠지. 하루 24시간 이라는 것만큼 국적을 불문하고 평등하게 주어진 것도 그리 많지 않은 세상이니까…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파클리탁셀’을 투입하는 항암치료가 오늘 벌써 3번째에 접어 들었다. 오늘은 장 미쉘 앰뷸런스 운전 기사가 집 앞에 9시30분 도착했다.


지난번 남편이 나와 동행해서 병원에 갈 때 남편이 ‘장 미쉘’의 대화 상대를 해 주었다. 남편도 나처럼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음에도 ‘장 미쉘’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시간 반 가량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속사포 랩을 했다. 한국말도 랩이 안되는 내가 프랑스어의 저 속도를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그런 ‘장 미쉘’이 도착하자 오늘 남편은 어제 잠을 못잤다며 나의 옆의 뒷좌석에 앉는다고 했다. 타자마자 안전벨트도 하지 않았는데 달리기 시작하는 장 미쉘… 본인이 기분 나쁘다는 사실을 거친 운전 방식으로 눈에 띄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피곤하기 때문에 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바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내 옆에 앉아서 바로 눈을 감는 남편… 둘의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그것을 관찰하기에 나도 피곤해서 신경 아랑곳하지 않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 우리는 이렇게 무언의 상태로 한시간 반 걸려서 병원에 도착했다.


내가 차에서 내려서 내가 움직여야 할 차례이다. 병원에 도착하면 처음 번호표를 뽑고 대기한다. 나의 번호가 불리우면 접수처에 가서 앰뷸런스 기사에게 주어야 하는 첫번째 서류인 Bon de transport를 접수처에 요구해야 한다. 이 서류에는 내가 몇시에 뭐하러 병원에 왔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그 다음으로 의사와의 항데부가 있으면 의사와 면담을 하여 치료 이후 과정이 어떠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항암치료가 매주 진행이 되기 때문에 의사가 3주에 한번씩만 본인과 면담해도 된다며 오늘은 의사와 면담을 하지 않고 바로 두번째 접수대에 갔다.


이 곳에서는 bulletin de situation의 서류를 요청해서 받아야 한다. 내가 받은 치료와 내 상황이 적혀 있는 서류이다. 그 서류를 받아서 앰뷸런스 기사에게 주어야 한다. 남편이 오늘 나와 병원에 동행을 했던 이유는 본인이 X선 촬영(radiographie)를 하러 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검사를 받으러 옆 병동으로 갔다. 그러므로 오늘은 남편의 통역 없이 나 혼자 모든 필요한 서류를 요구하고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긴장 된다. 내가 말할 때마다 알아쳐 듣지 못하는 이 사람들이 짜증난다. 책에서 배워서 암기했던 것도 빨리 즉각적으로 어설픈 발음으로 하면 못 알아 들어서 자꾸 다시 물어보니 부끄럽고 그 다음은 짜증이 나고 그 다음은 화가 난다.


어쨌든 드디어 내가 필요한 서류를 받아 들고서는 장 미쉘에게 전달했다. 오늘도 운 좋게 독방에서 치료 받을 수 있었다. 환자는 한 명인데 항상 가족을 3~4명 이상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어가 아닌 언어를 살짝 크게 말한다거나 그들의 옷차림으로 인해 치료를 받기 위해 단체가 있는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눈빛으로 그들에게 독방을 주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행해진다. 오늘은 그들이 없었기에 내가 그 방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채널을 틀었다. 하지만 여전히 숨쉬지 않고 말하는 뉴스 진행자들… 내용이 이해하기 힘드니까 그들의 얼굴 표정들을 자세히 살피게 된다. 그들이 말할 때 목젖이 미치도록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저렇게 목젖이 스타카토의 빠르기로 움직이면 성대결절이 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병원 화장실이 너무 넓어서 여기에서 잠을 자도 되겠다 싶다. 병원 냄새가 싫은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어디에서나 똑같은 화장실 규칙들이다. 화장지 제외하고 다른 이물질은 변기안에 넣지 말 것이라고 쓰여 있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쳐서 규칙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에 살아보니 프랑스에는 참으로 규칙이 사방팔방 도처에 깔려 있다.


이제는 병원 점심 식단이 매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병원의 점심 식사가 좀 더 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주와 다른 것은 과일뿐이다.


항암치료 끝나기 한시간 전에 앰뷸런스 회사에 전화해서 끝나는 시간을 알려 줘야 한다. 오늘까지는 남편이 대신 전화했지만 다음주부터는 남편은 나에게 전화해서 설명 하라고 했다. 치료 받는 것도 힘든데 상대방의 표정을 알 수 없는 전화를 해서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 정말 긴장된다. 작은 동네라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삽시간에 퍼지는 외국인도 별로 없는 시골에서 프랑스어로 전화 하는 건 공포심까지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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