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보다 더 큰 언어 상실의 고통

by 마담 리에

2019년 1월 7일, 가슴을 후비는 고통


세번째 항암치료는 회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정도로 나를 피곤하게 해서 일주일 동안 침대 밖을 나가는 것 조차 힘들게 했다. 일주일 동안 일상생활의 움직임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란 사실은 나로 하여금 항암치료가 왜 3주 단위로 진행되는 지 논리적으로 수긍을 하게 했다. 즉 3주라는 기간은 회복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과 다음의 항암치료를 이겨낼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한 기간일 것이라는 주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번 세번째의 항암치료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나는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정말 가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항암치료를 이겨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번 치료 기간동안 내가 해내야 하는 커다란 미션은 나의 프랑스어 수준을 어떻게 해서든지 높여서 남편 없이도 나의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현재 나의 곁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처럼 남편에게 짐만 된다면 언제 떠나도 이상할 리 없다는 것이 인지상정아니겠는가?


현재 영어도 한국어도 통용이 안되고 프랑스어는 내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장소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나는 잃어버렸다. 현재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신체적으로 아프고 힘든것은 자고 나면 조금은 채워진다. 아무리 암투병 과정이 힘들어도 신체의 힘듬은 자고 자고 또 자고 휴식을 취하면 언젠가는 회복이 된다. 그러나 나의 정신적인 타격을 가져다 준 언어의 상실은 가슴을 후비고 후벼서 좀처럼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언어를 내가 언젠가는 자유롭게 구사하는 날 이 고통스러운 정신적인 타격에서 벗어날 것이다. 정말이지 언어상실보다 더 큰 아픔은 없으므로 내가 프랑스어라는 이 언어에서 자유로워지는 날까지 내 몸이 버텨 주면 좋겠다.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은 늘상 그렇듯이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버스 타고 센터에 가서 프랑스어 수업을 하루종일 듣고 집에 귀가하니까 저녁 7시가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밖에서 긴장했던 것이 모두 풀어지면서 급 피곤해 진다. 그렇지만 설거지는 언제나 그렇듯 내 몫이다. 밥먹고 설거지를 마치며 남편과 이야기 하며 오늘 하루도 버텨 준 나의 몸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2019년 1월 9일, 정맥의 살고 싶은 본능


2019년 1월 9일 수요일, 오늘은 4번째 피검사하는 날이다. 내가 태어나서 40년동안 살았던 모국인 한국에서 받았던 피검사의 횟수보다 2년 4개월 동안 살고 있는 프랑스에서 받은 그리고 앞으로 받을 피검사의 횟수가 훨씬 많을 듯 싶다. 피검사를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는 데 있어서 3주마다 한번씩 피검사를 받아 그 결과를 병원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항암치료를 받는 6개월 동안 총 20번 정도 피검사를 받을 것이다.


프랑스에 살게 된지 2년이 조금 넘은 지금 행정처리라고는 체류증과 의료보험카드와 관련된 서류들만 봤는데 갑자기 병원관련 서류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항상 전화로 약속을 먼저 잡아야 하는 프랑스 시스템은 프랑스어를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전화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남편이 전화를 해줘서 약속은 해주었고 피검사는 나 혼자 받으러 갔다.


갈 때마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오늘은 기계가 고장이라 의료보험카드를 등록할 수 없으니 매뉴얼로 작성하겠다며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다행이 질문을 이해해서 대답을 하고 나서 피검사를 진행했다. 프랑스에서 피 뽑을 때 한국에서 느꼈던 섬세한 배려는 집어 치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를 놓겠다는 준비하라는 말도 없이 푹 찔러 댔다. 특히나 나는 정맥이 가늘어서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주사를 섬세하게 잘 놓아 주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도 대체적으로 있고 손가락 움직임에도 섬세함이 배어있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을 사용해서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피검사가 진행 되는 동안 매번 주사를 그냥 마구 잡이로 푹~ 찔러 놓고 “이게 아니네.. 미안해 (Je suis désolée), 다른쪽 팔 내밀어.” 이런 말을 한 두번 듣는 것이 아니라 매번 듣다보니 이제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피검사를 하고 그 날 저녁에 팔뚝을 보면 멍이 들어서 색깔이 녹색으로 변해 있다. 그리하여 내가 여기 프랑스에서는 왜 주사도 잘 놓지 못하는 거야? 라며 불만을 토로하며 남편에게 질문했더니 “운동을 더 하면 정맥이 굵어지니까 운동을 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맥이 가늘어서 주사를 정확한 위치에 받을 수 없다면 잘못은 간호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정맥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다면 해답은 운동을 많이 많이 해서 굵은 정맥을 가지고 겁나 겁나 건강해 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일을 잘 못하는 간호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해서 본인의 정맥을 굵게 만들어야 한다니… 프랑스의 건강한 삶의 비결은 이러한 것이었나? 싶다.


나의 정맥이 살고 싶어 하는 본능에서 일까? 오른쪽 팔의 가늘었던 정맥이 약간 튀어 나와서 주사를 놓기가 수월해졌다. 그리하여 오늘은 주사를 한번만 맞았다. 바늘 구멍이 많이 나지 않아서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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