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5일, 항암치료 7
2019년 2월 5일 화요일, 4번째의 petit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병원은 차로 편도 9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매번 남편이 동반해 주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병원에 가는 날이다.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가면 그는 나를 대신해서 질문이 있을 경우에 나 대신 답변을 해주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뇌를 통해서 그 사람의 입으로 나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남편에게 어쩌면 정신적으로 짐을 지우고 있다는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프니까 도움을 받을수도 있지 라는 양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항암치료 받으러 가는 동안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되나 불안감에 휩싸였다. 일단 병원가면 늘 해야 되었던 것을 되짚어 보았다. 먼저 병원에 도착하면 접수처에서 요청해야 되는 서류들, 간호사가 매번 물어보는 질문들, 의사와의 면담에서는 손에 알레르기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며, 항암치료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앰뷸런스에 전화 요청을 프랑스어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이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도 하지 않았는 데 벌써 부담감이 온다.
9시 30분이다. 엠뷸런스가 평소에 집 앞에 항상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는 데 오늘은 왠일인지 정시가 되어도 도착하지 않았다. 남편없이 나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날인데 시작부터 벌써 문제가 발생한 듯 싶었다. 순간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만약이라도 앰뷸런스가 안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앰뷸런스에 미리 전화해서 알렸어도 “아 그래? 우리 몰랐는데..?”라는 경우가 발생 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빠릿빠릿 알아서 일 잘하는 한국에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보냈던 우편물도 받지 못했다고 하고 소포가 사라지는 일도 있고 모든 지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특기인 사람들이 많은 나라인지라 걱정이 폭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전화해 볼까 ? 라고 생각하던 찰나 마침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35분이다. 불과 5분 이었던 것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5분 늦게 도착해서 오늘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갈 앰뷸런스 맨은 ‘장미쉘’이었다. 지난번에 남편이 본인과 대화하지 않고 뒷 좌석에 앉아서 이어폰 끼고 잠을 잤다는 것에 대한 작은 복수였을 수도 있다. 프랑스에선 병원에 시간에 늦게 도착한 다는 것은 말도 안되니까 말이다.
전형적인 무서운 산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장미쉘은 말투 또한 그의 얼굴과 어울리게 거칠다. 그런 그는 ‘차선 끼어들기의 달인’으로서의 면모를 오늘 아침 또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절대 차선 양보하지 않는 그는 오늘도 운전하면서 다른 운전자와 싸울뻔했다. 그가 끼어들기를 하자 상대 운전수가 손가락을 보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장미쉘은 굴하지 않고 험한 인상을 쓴 채 몇마디 했다. 다행히 크게 싸우지 않고 10시 55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와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나는 의사에게 10일 전부터 괴롭히고 있는 손에 생긴 알레르기를 보여주었다.
어제는 지난번 처방해 준 연고(pommade)를 바르고 약간 진정이 되긴 했지만 완전히 진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손가락이 간지럽고 부어 오르기 시작하며, 잠잘 때도 가려워서 무의식적으로 잠결에 긁어버렸다. 의사가 복용할 수 있는 알약을 처방해 주고 알약과 함께 연고는 계속 바르고 혹시 다음주에도 낫지 않으면 항암치료를 2주 쉬어야 한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라는 말도 덧붙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인가 보나 싶어서 안심하기도 하지만 2주 쉬었다가 다시 항암치료가 재개된다면 도대체 4월까지 내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방사선 치료까지 계산해 보면 7월까지 넘어간다.
제발 약 먹고 이번 항암치료 받고 알레르기가 사라지기를 바래본다. 온몸이 갈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고 예민해져가니까 돌아버리겠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박테리아가 득실거려서 가는 것 조차 꺼려지는데 하필 프랑스에는 씻지도 않아서 냄새 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배우러 수업에 가야 하기 때문에 제발 나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클래스 메이트들만이라도 샤워 좀 하고 오기를 바래 본다.
오늘은 침대가 아닌 의자에서 치료를 받으며 개인실이다. 3주동안 점심으로 맛없어서 거의 먹지 않고 남기는 빠네를 먹기 싫어서 다른 것 없냐고 물어 보았다. 샐러드가 있었다. 그렇다. 내가 점심 뭐 먹을래 물어보는 질문을 이해를 잘 못해서 3주간 맛없는 빠네를 먹었던 것이었다. 이번에는 참치가 들어간 샐러드와 과일을 주문하고 나서 병원에 다니고 첨으로 제대로 먹었다. 이 나라는 알아서 남을 배려해 주는 문화가 아니라 나의 요구를 항상 제대로 말로 표현해서 관철시켜야 하는 나라인데… 내가 이 문화 차이를 간과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한국에서 통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꼭 말을 해야 된다.
아침 9시 30분에 집에서 나와서 항암치료가 15시30분에 끝나고 앰뷸런스를 타고 집에 가면 17시가 된다. 퇴근하는 남편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같겠구나 싶다. 이렇게해서 한국에서는 오늘은 특별한 날인 설날이 프랑스에 있는 나에게는 병원에서 보내는 하루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