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리운 그 이름...

부제 : 가슴 속으로 수만번 그리운 그 이름 불러봅니다.

by 마담 리에

2016년 프랑스에서 결혼하고 나서 2017년 6월 남편과 함께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방문했다. 당뇨를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발에 화상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하고 투석 생활을 하셔서 3년간 병원에 입원하여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는 남편과 나를 보며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며 이 말씀을 반복하시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든든하고 강한 존재였는데 3년간의 병상 생활에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왔다.


그동안 나와 동생들을 키우느라고 본인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은퇴하면 세계 여행을 같이 하자며 엄마에게 말씀하시곤 했고, 그래서 은퇴 이전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자고 했던 그런 아버지이다. 내가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 간다고 했을 때도 박사과정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물질적으로 심적으로 항상 지원해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가 작년 이맘때쯤 혼수 상태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체류증을 받지 못하고 갱신하기 위해서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중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혼수 상태가 된지 나흘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곁에 있을 수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고 싫었다. 나의 평생을 지켜봐 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도 못하며 체류증 갱신하는 데 7개월이나 걸리는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는 이유가 뭘까.. ? 라며 나 자신을 수없이 자책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오랫동안 나의 마음을 멍들게 했던 것 같았다. 몇 달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새벽에 깨어나서 울다가 잠들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문득 문득 울고 있던 나였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7개월 후에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마음이 썩어 문드러 지는 그런 마음이 가슴을 멍들게 한 것만 같았다.


유방암 진단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병원에 드나드는 일상이 진행되었다. Radiographies 검사, mammographie 검사, scanner 검사, ponction biopsie du sein 검사, mri검사를 거친 후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 끝나면 그나마 좋았으련만 의사는 나의 암경우는 공격적인 암이므로 다시 한 번 재발하는 경우에는 죽을 것 이라는 말을 하며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정기적으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 Portacath를 몸에 심고, 항암 치료를 받고, 머리카락도 모두 빠지고 면역체계가 떨어지면서 피부도 약해지며 알레르기 및 온 몸이 민감한 자체이다.


매번 항암치료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이렇게 아플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금은 하늘에게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편하게 지내고 계실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병원에 있으실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아버지는 지내셨을까? 이제는 나의 수 많은 질문에 응답할 수 없는 아버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나는 왜 아버지에게 이런 많은 질문을 실제로 하지 못한 채 마음에만 담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동안 감히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현실이 마냥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그렇게 갑자기 보낼 준비가 나에게 되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 그리운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째 되는 날, 나는 이 글을 쓰며 마음 속에 그리운 그 이름 ... 아버지... 를 불러본다.


"아버지, 이제는 하늘에서 아프지 않고 잘 계시는 거죠?"


오늘은 무척이나 아버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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