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2일, 항암치료 8 : 기다림의 연속
2019년 2월 12일 화요일이다. 4월까지 매주 화요일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한다. 아침 9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17시이다. 마치 직장인인 남편과 거의 다를바 없이 출퇴근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 주변에는 암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없기 때문에 도시로 가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 병원까지 차로 걸리는 시간은 왕복 180분, 즉 3시간이 꼬박 걸린다. 시골에 사는 커다란 단점 중 하나는 바로 관공서 및 병원과 거리가 멀다는 것일 것이다.
2주전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는 알레르기로 인한 손 피부에 간지러움은 좀처럼 나을 것 같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프랑스어를 배우는 곳인 기관에서 비롯었다. 이민자들을 주로 대상으로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는 기관인데, 듣기수업이라며 그곳에 놓여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구매한 아래로 청소를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듯한 컴퓨터 키보드 자판에는 검은색의 손때가 5mm 정도 쌓여 있었다. 항암치료로 인해 면역 상태가 떨어진 상태였는데 그 더러운 키보드를 사용했던 것이 이 알레르기를 촉발시켰다. 그 날의 경험은 씻지 않은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것이 면역이 약한 사람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나의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날들이다. 공기에 떠다니는 먼지 속에서도 나쁜 박테리아가 나를 공격하러 달려드는 느낌도 든다.
오늘은 환자가 미어터지게 많은 날이었는지 개인실이 빈 곳이 없어서 8명이 함께 치료 받는 단체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처음 보는 간호사가 오늘 나를 담당 해 주었는데 유난히 느릿느릿하게 진행하고 조심스럽게 하길래 명찰을 봤더니 étudiante infirmière(학생 간호사)이다. 실습 나왔나 보다. 그 간호 실습생은 상냥하긴 했지만 너무 느릿느릿하게 일을 해서 나의 치료도 그녀의 느려터진 속도에 맞추어 진행이 되었다. 하필 왜 내가 그녀의 실습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마치 실험을 위한 기니피그(cobaye)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점심도 뭘 먹을건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려서 남는 음식이 빠네뿐이라며 또 맛없는 설익은 감자 당근을 데워서 내밀었다. 이렇게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면 내가 프랑스어로 말을 잘 못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따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 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는 의심마저 든다. 또 먹지도 못할 점심을 받아서 거기에 들어 있는 약간의 빵조각, 귤 그리고 물만 마시고 나머지 모두를 남겼다.
오늘은 원래 담당 의사의 진찰 없이 항암치료만 받으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손에 알레르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 다만 의사가 나의 피부를 체크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접수처에서 이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의사가 이 말을 11시에 했고, 4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의사는 나의 손의 상태를 보고 처방전 하나를 써준다. 처방전 하나를 받기 위해 이렇게나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렸나 싶다.
처방전에는 복용해야 하는 약 명칭이 쓰여 있었다. 오늘은 간호 실습생에게 정말 속 터지게 느리게 치료를 받았지만 어쨌든 오늘 치료는 끝났고, 4시간이 걸려 받은 처방전에 쓰여있는 약을 복용하면 항암치료는 2주간 중단 없이 계속 될 수 있는 듯 하다. 제발 피부의 알레르기가 가라앉아주면 좋겠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다려야 되는 날인가 보다. 나를 집에 데려다 줄 앰뷸런스는 15시까지 오라고 말했는데 30분이 지나도 올 생각을 안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식당에서 뭔가 필요하면 종업원을 부르지 않고 그가 나를 볼 때까지 쳐다봐야 하는 나라라며 재촉하면 격이 떨어진다나 뭐라나…
그러나 병원 밖에서 이미 30분을 기다렸고 게다가 항암치료를 받아서 제대로 몸도 가누기도 힘들고 점심은 익지도 않은 감자에 출처도 불분명한 생선들로 만든 빠네라서 거의 먹지도 않았기 때문에 극도로 피로감이 쏟아진다. 그래서 격이 떨어지든지 말든지 내 몸 건사하는 게 우선순위이다. 엠뷸런스 회사에 전화했더니 금방 도착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도착한 게 45분이다. 도착 시간 보다 45분 늦게 도착해놓고 태연하게 많이 기다렸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침에 엠뷸런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처에서 기다리고 초짜 간호 실습생의 실험실 기니피그가 되어 느릿느릿 항암치료를 받고 점심도 나에게는 가져다 주는 걸 잊어 버렸다며 점심도 기다렸고, 처방전을 받기 위해 의사를 4시간 기다렸고, 마지막으로는 집에 가기 위해 앰뷸런스마저 45분을 기다렸다. 정말이지 프랑스에서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기다리는 인내심’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