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9일, 항암치료 9
오늘은 2019년 2월 19일 화요일, 항암치료를 받는 날이다. 오늘은 아침에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는 앰뷸런스 기사는 “꺄홀”이다. 25세와 16세의 두명의 딸이 있고, 손자가 3명이 있는 여성이다. 너무 피곤해서 뒷자리에 앉아서 잠자고 싶었는데 뒷문은 열어주지 않고 앞자리 조수석에 본인 옆자리에 앉으라며 앞자리만 열어 주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조수석에 앉았다.
그녀가 앞좌석의 문을 열어서 조수석에 나를 앉게 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병원에 가는 동안 그녀는 대화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프랑스 영화를 보면 항상 말이 많이 하는 프랑스인들처럼 ‘꺄홀’은 말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운전하는 동안 본인이 심심하지 않기 위해 본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환자의 상태를 배려하기 보다는 본인의 감정과 상태가 우선시하는 듯 싶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기간은 신생아처럼 잠이 마구 쏟아지는 데 말하고 싶어하는 ‘꺄홀’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결국 앰뷸런스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문화라고 말하는 것 중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이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택시를 타면 내가 피곤할 때 뒷좌석에 앉아서 휴식을 취해도 괜찮았는 데, 왜 프랑스에서는 엠뷸런스에 타서 환자인데도 불구하고 피곤함을 무릅쓰고 운전사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엠뷸런스 기사들을 위한 배려라고 하는데, 환자가 그들을 배려해 주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전에는 남편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말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유난히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고, 실없는 소리, 쓸데없는 말 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더더군다나 말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다고 우리집 앞에 지나가는 동네 사람 붙잡고 말을 건넬만큼 넉살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시골에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신혼 초에는 1년정도는 남편과 나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래서 종종 대화를 나누었지만 1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프랑스어만 말하기를 고수하는 남편, 그리고 프랑스어로 내 생각을 전달하지 못하는 나, 우리 커플이 대화할 언어도 사라졌고, 우리의 다툼이 그 자리를 메꾸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유방암 치료를 계기로 하여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치료를 받음으로써 나는 생존을 위해 프랑스어를 의무적으로 말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매번 같은 질문인 생년월일 말하는 것은 자동으로 입에서 터져 나왔다. 말하기도 어렵지만 항상 어려운 건 듣기였다. 예전에는 프랑스어를 들으면 퍼즐 조각처럼 단어가 하나 두개만 귀에 들려왔다. 그러면 그 들린 단어로 무슨 말을 했는지 추측을 해야 했다. 그러나 너무나 퍼즐 조각이 비워져 있으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맞춰야 할 퍼즐 조각들은 너무나 많아서 퍼즐이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더 친절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커다란 착각이라고 외치고 싶다.
2년 전에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왔을 때 우리집과 옆집 사이에는 담장이 없었다. 담장이 없다는 것은 즉 옆집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커플은 이사오고 나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장을 설치 했다. 그러자 그 이웃집 여자는 시청에 불만 편지를 보냈다. 이유는 우리집에 설치된 담장 때문에 뒤에 보이는 산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며 ‘조망권 침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핑계였다.
그 이웃집 여자의 불만의 진짜 이유는 우리 커플이 이사오기 전에는 담장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집 정원을 그들 자신의 정원처럼 사용했었다. 그 집은 정원이 아주 작은 집이다. 우리집은 정원의 크기가 1000m2 이다.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정원이 넓기 때문에 이 집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커플이 담장을 설치하자 정원이 없는 그 집에서 이제까지 누려왔던 우리집의 정원의 혜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실질적인 이유였다. 그 이웃집 여자는 우리 커플에게 들으라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하면서 짜증을 내면서, 앞집의 여자까지 불러서 일부러 크게 불평을 하며 텃새를 부렸다.
그리고 남편 동료 중 한명은 아시아 사람들은 본인 프랑스인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고급인력으로 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며 청소부를 하거나 ‘넴’을 만들면서 중국 식당에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개를 산책 시키다가 매일 우리 집 앞에서 개에게 볼일을 보게 하던 여자도 있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개가 똥오줌 쌀 시간이면 산책을 시키면서 길거리에 싸지르게 한다. 집 대문 앞에서 내가 개똥을 발견했다. 내가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프랑스어로 싸움을 할만한 수준이 안되니까 남편에게 범인을 잡아서 제발 어떻게 해보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개똥을 본인이 치우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
남의 집 앞에 개똥을 싸질러놨으면 치우라고 항의를 하는 것이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본인은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지 않았다며 그렇게 항의하는 것은 격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사고방식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통하지도 않은 말을 반복해봐야 부부싸움만 더 커질 뿐이었기 때문에 매번 개똥을 봐도 나는 못본척 했다.
남편이 3~4번정도 개똥을 치우더니 5번째 개똥을 대문 앞에서 발견 했을 때는 마침내 남편도 화가 났다 보다. 아니 격의가 없어도 상관이 없어졌나보다. 개똥을 싸지르게 했던 그 여자에게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번 더 개똥을 우리집 앞에서 발견 할 경우에 그 똥을 당신집 우체통에 집어 넣겠다. 나는 당신이 어디 살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 개똥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집 대문 앞에서 개가 똥 싸게 하지 않았다. 옆집 대문 앞에 싸게 했다. 내가 결혼 전에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에게 프랑스는 개똥을 마음대로 싸질러도 항의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
여하튼 오늘은 의사와의 면담 없이 바로 항암치료 받는 날이었다. 지난주 간호실습생은 너무 느릿느릿 일을 했지만 오늘 나를 담당해준 간호사는 손이 엄청 빠르다. 주사 바늘을 푹 찌르고 나서 ‘숨을 크게 쉬세요’를 말했다. 원래는 숨을 먼저 쉬라고 하고 주사 놓은 것 아닌가? 항암 치료액도 조금씩 들어오게 조절해 주지 않고 그냥 콸콸 몸 속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두었다. 몸이 받아들이기에 버거웠지만 일찍 끝났다는 장점은 있었다.
예상시간보다 빨리 끝나서 병원 정문 앞에서 앰뷸런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앰뷸런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담배 냄새가 났다. 병원 현관 바로 앞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담배 꽁초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엄연하게 뒤에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현관 바닥에 꽁초를 이렇게 버린다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배에 너무 관대한 프랑스인들이다.
담배 냄새를 맡으며 앰뷸런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어김없이 25분 늦게 도착한 앰뷸런스에 나를 집으로 다시 데려다 주는 사람도 “꺄홀”이다. 젠장! 자는 건 포기해야 겠군.
2019년 2월 20일, 인생의 소중한 것들
2019년 2월 20일, 오늘은 6번째의 피검사를 받으러 우리 동네의 Laboratoire에 가야한다. 프랑스어로 Laboratoire는 ‘실험실, 연구실’이라는 뜻이며, 피검사 받으러 가는 곳은 Laboratoire médicale이라고 해서 ‘의료 실험실’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이 곳의 역할은 친자확인 검사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인체의 체액을 채취해 분석하는 곳이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3주마다 피검사를 해야 한다. 3주라는 시간의 흐름이 광속도로 느껴진다. 어제 검사를 받은 것 같은데 오늘 또 피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항암치료를 처음 받을 때는 처리해야 할 새로운 정보들도 많고, 피검사를 받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이제 치료받는 과정에서 내가 적응하고 익숙해 졌기 때문에 체감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거겠지. 처음에 힘들었던 것도 여러번 반복을 하고 나면 머리로 배우고 익혀서 몸으로 습득하고 이 과정이 자동화되서 같은 행동을 하기까지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다 보니 시간의 흐름도 더욱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청소년 시절에 느꼈던 때의 체감시간과 현재 중년의 나이의 체감시간은 현저하게 다르다. 초등학생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러서 시간이 마치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듯 했는데, 요즘 중년의 나의 시간의 흐름은 롤러코스터의 속도로 전력질주하고 있는 듯 싶다. 긴 숨 한번 들여마셨다가 내쉬고 났더니 3주가 지난 것 같은 느낌이다. 매일 무언가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데도 불구하고 무엇을 했는지 떠올려 보면 3주가 마치 3초로 줄어들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되어버린다. 마치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박박 모두 기억을 지워버려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하얀 도화지가 된 듯한 느낌이 신기한 일이다. 적어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하루가 길었던 어렸을 때의 나는 결코 현재의 중년의 나의 체감 시간의 흐름의 속도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
우리 동네 Laboratoire에는 옆 동네 사는 이웃이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피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녀는 우리집 우체통에 넣어주기로 했다. Laboratoire는 근무 시간이 오전으로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아침에 프랑스어를 배우러 40km 떨어진 도시에 나의 몸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피검사 결과를 수령하기 위해 다시 이 곳에 올 수는 없었다. 모두가 알고 지내는 산골짜기 마을에 사는 몇 가지 안되는 장점 중 하나겠지. 피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 오는 길에는 화창하고 따스한 햇살에 저절로 나른해지는 몸은 봄날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날씨에는 뭔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서 땡땡이 치고 싶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초등학교에 사람이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요일이었다는 사실을 지각했다. 평소에는 점심 시간, 등하교 시간에는 아이들을 픽업하러 온 학부모의 자동차들이 줄을 서서 잔뜩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업이 없는 수요일, 이렇게나 고요하고 한적하다니...
이제 이 마을에도 2년 6개월째 살고 있다. 내 기억속의 작년의 야자수는 이렇게 크지 않았었는데, 1년동안 많이 자랐구나 싶다. 야자수의 성장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야자수 네가 큰 만큼 나에게도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단다”라는 말을 한국어로 조그맣게 속삭여 본다.
개나리가 벌써 피었구나. 서울에 살 때는 3월에 개나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개나리를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면서 가슴 저 깊은 한 곳에서 무언가 울컥한 것이 올라오며 내 모국인 한국이 절로 그리워진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 남부 시골 동네에는 미모사가 많다. 2월에 이웃 마을에서 미모사 축제를 한다고 한다. 매년 가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가지 못했다. 가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암치료 받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는데… 아직 아무것도 해 놓은 것도 없는데… 많은 생각들이 뒤따르면서 이 생각들은 “아마도 내년에는 내가 미모사 축제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점철이 되었다.
프랑스에 와서 뭔가를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 끝나고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니 역지사지로 인생에서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뒤돌아 보게 된다. 한국에서 살면서 자연을 그다지 둘러보거나 느끼거나 하지 않고 책에 파묻히거나 일 하느라 숨가쁘게 달려왔던 시절에는 공부 빼고 뭐하나 아는 게 없었던 나였다. 일벌레, 책벌레였던 내가 프랑스에 와서 시골 마을에 살면서 책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각종 야생 동물들과 식물들을 내 눈 앞에서 직접 보게 되었다. 한국어로도 몰랐던 벌레, 동물, 식물, 나무 이름들을 프랑스어로 먼저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 나는 서울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물,식물을 키울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다. 프랑스 작가 Jean Giono(장 지오노)가 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나무를 심은 사람)’ 소설에서처럼 우리집의 커다란 정원을 푸르른 녹지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나무를 심으면 좋을까? 내년에는 텃밭을 가꾸고 싶은데 어떤 걸 심는 것이 좋을까? 가능하면 여기서 구입이 불가능한 깻잎은 반드시 심고 싶은데... 깻잎 씨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나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식물이 풍성한 자연으로 둘러싼 시골에서 사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 동안 세월의 고단함 속에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 미처 주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 흔들리는 바람속에 나부끼는 플라타너스의 나뭇잎의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 한낮의 따스한 햇볕에 진주처럼 반짝거리는 호수의 물결, 그 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은 최고의 콘서트를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