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

by 마담 리에

2019년 4월 29일, 방사선 치료 시작


총 34회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공휴일과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병원에 가는 일정이며, 치료는 6월 21일까지로써 약 2달 남짓 소요된다. 치료 시간은 5분 정도 걸리지만 병원에 왕복하는 시간이 최소 3시간 정도 걸린다. 즉 매일 오전을 병원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병원과 학교 등 인프라가 부재하는 시골에 사는 단점이다. 3주 만에 방문한 병원은 늘 그렇듯이 효율적으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공간임에 변함이 없었다. 다만 차이라고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출입구에서 왼쪽으로 향했지만 방사선 치료는 오른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점 뿐이었다.


방사선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이름이 호명된다. 안으로 들어가서 탈의실에 가방 및 겉옷을 두고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방사선사가 나에게 기계 안에 들어가 반듯이 누워서 손을 쭉 뻗어 만세를 외치는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나는 지시받은 대로 자세를 취하고 천장을 향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려니, Ne bougez pas. (움직이지 마세요). 라며 방사선사가 거듭 말을 했다. 그와 동시에 웅장하게 큰 기계가 왼쪽에서 빨간 레이저를 쏘면서 지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십초간 열을 쪼인다. 그런 다음에 오른쪽으로 기계가 돌아간다. 다시한번 수십초간 오른쪽에서 지징~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을 쪼인다. 이렇게 5분만에 치료가 끝났다. 이제 집에 돌아가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약 90분이다. 집에 도착하면 늘 그렇듯이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의 직장이 집에서 자전거타고 5분 거리이므로 집에서 하루 세끼를 모두 먹는 덕분(?)에 상차리기와 설겆이를 반복하면 하루가 지나가는 듯 싶다. 출장 한번 없는 남편이다.


방사선치료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피곤하다. 조금만 피곤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오고 갈 때 차 안에서 3시간을 졸고 나면 조금 더 낫지만 졸지 못한 날에는 하루종일 피곤해서 저녁 7시가 되니 버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고 만다. 저질 체력이 지겨울 정도다.




2019년 6월 5일, 방사선치료 중간보고


우리집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다. 그리고 정원에는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 중에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몇몇 나무들이 벌레들에 의해서 갉아 먹혀서 마침내는 쓰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무들을 베어내었다. 나는 유방암 치료를 받으면서 우리집 정원에서 본 벌레들에 의해 먹혀서 쓰러진 나무들과 암을 관련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나무를 베어낸 것처럼 암에 걸리면 종양을 제거해 내는 것이 유방암 수술이다. 그리고 나무가 다시는 벌레들에 의해 먹히지 말라고 화학약품처리를 하는 것처럼 종양도 재발되지 않게 하는 것이 항암치료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벌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불태우는 것처럼 암치료도 마찬가지로 방사선치료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방사선 치료는 한마디로 암덩어리가 있었던 부위에 열을 쪼인다. 10회 정도까지는 괜찮았는데 20회 정도에 이르자 치료 받는 부분이 꼭 다리미를 한번 강하게 눌러놓은 것 처럼 빨갛다. 치료 후에는 그 부분을 의사에게서 처방받은 크림을 듬뿍 발라 준다.


그리고 치료를 받으면 피곤해서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체력 회복을 돕는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항암치료 받을때보다는 훨씬 덜 힘들다. 나는 항암치료 받을 때도 그리고 방사선치료를 받을 때도 매일 집 뒤에 있는 산길을 걸었다. 똑같은 길을 매일 같은 시간에 걷다 보면 나의 신체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 항암치료 받을 때는 매일 6km가 최대로 걸을 수 있었고, 높은 산에는 오르기가 힘들었다. 반면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부터 하루 평균 9km를 걷고 있으며, 오르막 산길도 잘 걸어다닌다.


항암치료 끝난후 2달 정도 되어 가니까 머리카락도 송송 솟아나면서 드디어 헤어라인이 생겼다. 아직 갓 태어난 신생아보다 더 적은 수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8달 동안 대머리 동자승의 헤어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헤어라인이 생겼다는 것은 정말이지 기쁘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생기니 내 얼굴도 조금 예뻐 보인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해서 각종 검사(초음파 검사, 조직검사, 유전자 검사, MRI, 스캐너, 심장 검사, 피검사 기타 등),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있었다. 작년 9월부터 시작했던 검사, 수술, 치료등이 드디어 마지막 고지를 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후련히 여행을 가고 싶었다. 매일 걷는 국립공원 동네를 벗어나서 다른 풍경을 보고 싶었다.


시부모님 두분은 손 꼭 잡고 현재 러시아 여행중이시다. 거의 같은 나이인 나의 아빠는 늘상 엄마에게 말씀하기를 아빠가 은퇴하면 엄마랑 같이 여행다니자고 했다. 그러나 그런 아빠는 은퇴 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여행은 미루는 것이 아니다.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한 남편은 집에서 ARTE(EBS 같은 방송임) 채널을 보면서 방구석에서 세계여행을 하자고 한다. 줄서서 안기다려도 되고 소파에 누워 편하게 볼 수 있으며, 게다가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더 훌륭한 다각적인 각도의 카메라로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며 말이다. 이번에 베르사유 궁전의 방송을 아주 감명깊게 본 남편의 말이다.


그러나 방사선 치료가 끝나는 날은 “음악 축제”날인 6월 21일이다. 6월 21일은 음악축제인 “La fête de la musique”로서 프랑스에서 여름이 시작하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모든 곳에서 음악 콘서트를 하며 축제를 한다. 여름 동안 내내 축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이 날은 밤새도록 축제를 한다. 이 날을 필두로 해서 우리 동네는 여름 동안 내내 목요일 밤마다 길거리 음악 콘서트를 한다. 이 때는 자동차들은 시내로 지나가지 못하고 우회를 해야 한다. 길거리는 레스토랑과 바의 테이블이 점령을 하고 있고 음악축제로 마을은 떠들썩해진다.


나의 방사선 치료가 끝나는 날 축제의 날이라는 게 왠지 좋은 느낌을 준다. 나의 치료가 끝남을 축하라도 하는 듯 말이다. 치료가 끝나면 여행을 가리라… 마음껏 여행도 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여행을 하리라… 여행은 미루는 것이 아니라 저지르는 것이다.




2019년 6월 21일, 니꼴 할머니


프랑스에서는 혼자서 움직이기 힘든 환자,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위해 집을 방문하며 재택 간호를 해주는 간호사들이 있다. 가정간호사(l'infirmière à domicile)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환자의 집을 방문해서 의료 처방에 따라 주사를 놓거나, 노인을 모니터링하고, 건강치료와 관련된 행정 절차를 지원하거나 일상 활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나또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이 혜택을 받았다. 항암치료로 인해 떨어진 호중구 수치를 올려주는 주사를 놓아 주기 위해 간호사가 집을 방문했다. 그 간호사는 나의 주치의의 부인이었다. 그 간호사는 나에게 주사를 놓아주고 나서 내가 방사선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화상"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그때 니꼴 할머니에게 연락을 하라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니꼴 할머니는 불을 꺼주는 사람(coupeur de feu)이라고 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한국어로도 불을 꺼주는 사람은 소방대원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기에 니꼴 할머니는 만나기도 전에 나에게 굉장한 호기심을 주었다. 프랑스는 따지고 합리적이고 논리를 좋아하는 이미지였는데, 손을 공중에 대고 있으면 불을 꺼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왠지 믿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것을 간호사가 소개를 해주는 것이 더 믿기 어려웠다. 간호사라고 하면 의학쪽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의학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학문인데 이것이 어떻게 미신처럼 손만 대도 화상 열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그들의 믿음이 더 신기했다. 이것은 내가 어릴적에 배가 아플 때 엄마가 배를 살살 문질러주면서 ‘엄마손은 약손’ 했던 것과 같은 효과가 아닌가 싶었다.


방사선치료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주중에 34회로 진행이 되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처음에는 그 부위가 화상 입은 것처럼 따끔따끔 거렸다. 10회를 넘어가자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부분이 핑크빛으로 변했다. 20회정도 이후부터는 빨간색 그 이후에는 검은 빛깔로 변했다. 어떻게 니꼴 할머니는 방사선 치료로 따끔따끔거리는 가슴 부위의 화상열기를 어떻게 끌 수 있는 걸까? 니꼴 할머니를 4월 29일 방사선이 시작한 날에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니꼴 할머니와 만남이 시작되었다. 니꼴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나의 가슴부위의 불을 할머니가 먹고, 본인의 몸속에서 그 불을 끈다고 했다. 할머니의 몸이 소화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방사선 치료 받아서 화상으로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따끔따끔거리는 부분을 본인의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원 모양으로 그리며 불을 껐다. 이것을 여러번 반복하셨다. 매 회마다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이걸 하면 나의 불을 먹기 때문에 할머니의 목이 많이 마르다고 했다. 신기했다.


이 과정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그것이 왠지 모르게 효과가 있는 듯 했다. 덜 따끔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더욱 신기했던 것은 한 두 번도 아니고 거의 30회에 달하는 횟수였는데도 니꼴 할머니는 그것을 자원봉사로 해주는 것이었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마법적 신념과도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니꼴 할머니처럼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이 화상이나 통증을 완화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산골짜기에 오두막을 짓고 다른 사람들과 고립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으며 파리 지역에는 그 수가 매우 많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본직업은 제빵사, 변호사, 교사 등의 다양한 일이 종사하면서 니꼴할머니처럼 방사선 치료나 화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화상을 치료하고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신기했던 점은 직접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면 전화로 이것을 진행할 수도 있어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초자연적인 믿음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사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종종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기도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1905년부터 교회와 국가의 분리와 함께 법으로 보장된 세속주의는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프랑스는 가톨릭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기초로 화상을 치료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보면 어쩌면 한국에서의 ‘엄마손은 약손’처럼 플라시보 효과가 있는거라고 믿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긍정적인 마인드는 병을 극복하는 데 플러스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나로서는 좋은 경험이라 생각되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누군가를 알고 그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배움거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니꼴 할머니에게는 텃밭을 가꾸는 법, 집안을 본인 취향으로 꾸미는 법, 장인 정신등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니꼴 할머니의 집은 높은 곳에 위치해서 우리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인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바로 밑자락에 위치해 있다. 하루종일 해가 비추는 곳이어서 식물들이 잘 자란다. 그리고 마법의 손을 가진 할머니는 정원을 예쁘게 가꾸었다. 할머니는 앞쪽의 정원의 꽃을 가꾸고 할아버지는 뒷쪽의 정원에 텃밭을 가꾸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부부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크고 가장 멋진 텃밭을 우리 동네에서 가지고 있었다. 니꼴 할머니가 주신 텃밭에서 키운 딸기는 정말 맛있었다. 나도 치료가 끝나고 나면 할머니처럼 멋진 텃밭을 일구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게다가 할머니의 집 내부는 박물관 같아서 구경할 거리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의 1980년의 사진도 있었고, 할아버지가 직접 잡은 멧돼지도 박제가 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할머니가 직접 만든 할아버지의 인형이 있었다. 니꼴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미는 데 사용되는 전통 인형인 성서 속 인물뿐만 아니라 장인, 농부, 마을 주민 등의 인형에 채색을 해서 판매를 하기도 하고, 손바느질을 해서 만든 소품들이나 본인이 그린 그림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는 장인이다. 할머니의 작품들을 보니 나도 빨리 건강해져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고 싶은 것들에 도전을 해보고 싶은 좋은 에너지가 전해졌다. 어쩌면 니꼴 할머니의 불을꺼주는 재능보다도 할머니가 간접적으로 나에게 전해주는 좋은 에너지 덕분에 내가 겪는 화상의 아픔이 완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019년 6월 21일, 방사선 치료 끝, 항암치료 이후 큰 변화


드디어 유방암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가 모두 끝이 났다. 매일 병원에 가야 했던 방사선치료.. 거의 70km에 달하는 거리를 왕복으로 매일 다녔던 병원.. 병원을 나오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 짧은 0.1초의 순간에도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후련한 느낌이 그 어떤 감정보다 압도적이다. 모든 치료가 끝났다. 오늘 방사선 치료 마지막 날을 앞두고 매일 9시만 되면 자던 내가 어제는 하루종일 들떠서 자정까지 흥분해서 잠을 못잤다.


그동안의 치료로 인해 나를 병원에 데려다 준 앰뷸런스 운전수 여러명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방사선 치료에는 나탈리가 가장 나를 자주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두번째로 높은 자리의 보스였던 그녀가 나를 동반하는 횟수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가 엠뷸런스 회사 측에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고객이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극효율적으로 그에 맞춰 분 단위로 시간표를 배정하는 그들이다. 프랑스에서 일을 해보면 확연하게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일년 52주의 기간 중 5주를 유급휴가를 갖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그 많은 기간을 바캉스로 보내는 만큼 일을 할 때는 일하는 강도가 극효율적으로 높기도 하다.


이런 기업의 측면에서 생각해서 보면 씁쓸한 느낌은 어쩔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일곱 살 많은 나탈리는 나와 취미도 맞고, 둘다 호기심 천국인데다가, 시골의 꽉막힌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지 않은 그녀를 나는 유난히도 좋아했다. 나탈리는 한국과 프랑스의 근무조건의 차이에 대해서도 나에게 질문을 종종 했고 프랑스의 사회복지 및 여러 시스템과 문화, 뉴스에 대해서도 나에게 하나 둘씩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만큼의 프랑스어 실력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병원에 오고 가는 3시간은 짧게만 느껴졌다.


반면에 다른 엠뷸런스 여자 운전수인 까홀.. 그녀는 나탈리와 같은 나이이지만 정반대의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남과 대화를 할 때 강아지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주인처럼, 5-6살 정도의 어린아이에게 엄마처럼 지시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그런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울리는 없었기에 그녀와 함께 가는 날은 살짝 가시방석이었다. 그나마 엠뷸런스 차량이 작은데 꺄홀이 여자여서 남자 운전수에 비해 덜 불편하다는 장점을 빼고는 딱히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그녀를 통해 나는 ‘말썽꾸러기 소피’라는 책을 알게 되었기에 그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남자 운전수들이 태워다 줄때는 뒤에 앉아서 주로 모자란 잠을 보충했기 때문에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를 똑똑히 잘 기억하고 있다. 채식주의자인 ‘짐’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절대 길을 양보하지 않고 다른 운전자들과 종종 시비가 붙는 ‘장미쉘’, 투덜이 스머프를 능가할 정도의 늘상 불만인 ‘피에르’, 나탈리의 남편인 ‘파트릭’, 주말에는 소방수 일을 자원봉사로 하고 있는 ‘루이크’, 전혀 말을 하지 않는 ‘로랑’과 ‘필립’, 등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항암치료가 4월 2일에 끝이 났고, 4월 29일에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서 오늘 6월 21일에 끝이 났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 가장 큰 가시적인 변화는 눈썹 및 머리카락이 자랐다는 것이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커다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지만 두달, 세달이 되어 가면서 머리가 점점 풍성해졌다. 네 살 연하인 남편이 나더러 본인보다 어려 보인다며 투덜댔다.


IMG_7782.jpg?type=w773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의 머리 2019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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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 동안 항암치료 때문에 억눌려 있었던 머리카락이었다. 엄청나게 소복히 많이 자꾸자꾸 자라고 있다. 항암치료 이후 12주 정도 지나면서부터 머리카락이 이렇게 까맣게 솟아나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항암치료라는 것이 독한 치료였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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