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오흐부와 (Au revoir)...
한국에서는 ‘케모포트’라고 부르는 것이 프랑스어로는 Port à cath 라고 쓰고 ‘뽀흐따까뜨’라고 발음한다. 이식형 포트 카테터(chambre à cathéter implantable)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뽀흐따까뜨(Port à cath)는 약물, 용액 또는 채혈을 위해 정맥에 쉽고 반복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피부 아래에 이식되는 의료 장치이다.
나의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15회를 받았다. 매번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정맥주사 바늘을 꽂고 그 독한 항암용액을 주입받기에는 혈관이 견디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뽀흐따까뜨(Port à cath)를 오른쪽 어깨 아래와 가슴 위쪽에 심었다. 그래서 뽀흐따까뜨(Port à cath)를 통해 항암약품을 혈류로 주입할 수 있으므로 팔의 정맥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제 항암치료도 방사선치료도 모두 끝났기에 뽀흐따까뜨(Port à cath)를 제거할 차례였다. 이것을 제거하고 나면, 이후 6개월 후에 있을 재검사를 위해 내년 1월에 방문하면 된다고 한다.
아침 9시 30분에 의사와의 면담약속이다. 집 앞으로 앰뷸런스가 8시에 도착하기로 했다. 오늘로서 앰뷸런스 타는 것도 마지막이다. 운전기사 로랑이 2분 늦게 도착했다. 그는 분명 그는 회사에서 8시에 출발했을 것이다. 책임자 3인방 중 한명이었던 나탈리는 항상 10분 전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일반직원들은 약속시간에 조금씩 늦는경우가 다반사였다. 사람 성향이다. 어떤 사람은 미리 계획을 세워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조금이나마 일찍 도착하려고 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시간이 다 되어서야 시작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이 회사가 우리집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로랑은 따라서 약속시간 8시에 약속장소인 우리집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약속시간에 본인 회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어쨌든 2분 정도야 별거 아니니 쿨하게 패스했다.
나는 앰뷸런스에 뒷좌석에 앉았다. 로랑이 나에게 오늘은 나 혼자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옆 마을에 있는 다른 환자 집에 들러서 그 환자도 함께 데리고 병원에 갈거라고 설명했다. 같은 병원에 그 환자도 약속이 있다고 하기에 알겠다고 응답했다.
로랑이 말했던 그 다른 환자의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는 엠뷸런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로랑은 차에서 내려서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5분이 흘렀다. 로랑은 회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했다. 본인의 상사와 전화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나서 로랑은 그 환자의 집의 뒷문으로 갔다. 뒷문을 열고 환자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약속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병원은 70km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로랑과 환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엠뷸런스 차량에 앉아 있는 나는 초조해진다. 일초, 이초, 삼초, .... 일분, 이분, 삼분, .... 20분이 지났다. 8시 30분이다. 드디어 약속시간을 전혀 지키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 환자 할아버지가 로랑과 같이 나타났다. 둘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로랑이 할아버지를 깨워서 데리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병원 약속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을자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앞좌석에 앉았다. 그 할아버지는 로랑과 나에게 민폐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게 앞자리에 앉았다. 본인 때문에 로랑은 엠뷸런스 기사인데도 불구하고 환자 집에 뒷문으로 들어가서 깨워서 데리고 나와 주기까지 했고, 또 같은 병원의 환자인 나는 의사와의 면담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 그 할아버지가 무례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골 마을에서 이런 무례한 사람들은 종종 마주친다. 어쨌든 이심전심인지 약속시간을 무시하고 잠을 자고 있던 할아버지를 데리고 나온 로랑은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 있음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조만간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이 되어 있는 로랑에게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우리가 9시 30분에 병원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까요?
그는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9시 30분에 우리는 병원에 있을 거에요.
우리집에 2분 늦게 도착하는 걸 보고 신뢰가 그다지 가지 않았는데, 걱정말라며 나의 약속 시간에 병원에 도착할거라는 그의 확고한 답을 들으니 굉장한 안심이 들었다. 로랑이 운전대를 잡고 우리가 탄 앰뷸런스는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과속카메라가 고장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2018년 11월부터 시작된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로 인해 여러 과속카메라가 고장나 있었다. 고마운 노란조끼…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날이다. 우리는 9시 33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3분 정도 늦었지만 로랑이 걱정말라고 했던 그 확고한 말처럼 그의 프로 직업 정신에 존경심이 들었다.
오늘은 수술실 건물로 가야 되었다. 로랑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정확히 내가 가야 하는 건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나는 접수대에 가서 오늘 뽀흐따까뜨(Port à cath)를 제거 수술을 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50분을 기다렸다. 의사는 환자를 기다리게 해도 되지만 환자는 의사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 이후 한 간호사가 나오더니 지금 의사가 수술 준비를 할 것이며, 25분 뒤에 날 부를거라고 했다. 여전히 오늘 수술의를 필두로 이 팀은 오늘 수술만 하는 날이구나 싶었다. 이 병원에서는 수술의는 환자와의 면담을 하는 날은 면담만 하고, 수술을 하는 날에는 수술만 하루종일 한다. 그러므로 의사와의 수술 약속을 잡는 것도 시간이 걸리지만 날짜와 시간을 변경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힘든일이기 때문에 병원약속이 있는 날에는 다른것을 뒤로 하고 병원약속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수술을 기다리며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방암 진단을 작년 9월에 받고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소에서 종양제거 수술을 받고 그 때부터 시작된 암투병 그리고 프랑스어와의 사투... 처음에는 내가 프랑스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병원에 혼자 가는 것이 겁이 났었다. 그래서 남편이 병원에 동행해 주었다.
매번마다 남편이 동행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나 혼자서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기 위해 의사, 간호사, 접수대에 비서들의 질문을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프랑스어 실력을 향상시켜야했다. 그야말로 생존 프랑스어를 해야 되었다. 항암치료가 중간 정도가 진행되면서부터 나혼자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 없이 혼자서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은 질문을 들었을 때 프랑스어를 이해 못하면 어떻게 해야 될지 겁이 났다. 그래서 처음에 혼자 병원에 갈 때는 병원에서 늘상 질문하는 것에 내가 대답해야 하는 문장을 수첩에 적고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몇십번이고 중얼중얼 거리며 암기했다. 그렇게 병원에 혼자 다닌지 5개월이 지났다. 오늘 간호사의 질문과 설명을 듣고 응답을 하면서 이제 내가 혼자 병원에 가서 예상치 못한 돌발 질문을 받아도 이해를 하고 이 상황을 혼자서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의 생존 프랑스어 수준에 도달했구나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간호사가 나를 호명한다. 우리는 지하에 있는 수술실로 향했다. 작은 수술실에는 종양제거 수술을 했던 수술의 T와 간호사 두명이 있었다. 국수 마취를 할 예정인데 알레르기가 없는지 물어보고 수술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뽀흐따까뜨(Port à cath)가 심어 있는 부위를 째고 제거하는 작업이라서 내가 못보게 부직포 커텐으로 가리고 수술 작업을 시작했다. 제거 후에는 그 부분을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2~3일 동안은 그 부분에 샤워하지 말고, 통증이 있으면 프랑스에서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돌리프란을 복용해도 괜찮다며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수술을 참 잘하는 수술의 T는 늘 그렇듯 C’est impeccable.(완벽해)를 외치며 수술을 했다. 그 한마디는 환자들에게도 수술을 같이 하는 팀의 분위기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로써 그동안의 암치료가 끝이 났다.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도와준 남편에게 고맙고,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와 더불어 나의 생존 프랑스어를 익히게 해 준 병원에 고맙고, 나아가 이런 치료 시스템을 제공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안녕… 오흐부와 (Au re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