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by 마담 리에

2020년 1월 9일,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1차 : 언어의 중요성


뽀흐따까뜨(Port à cath)를 제거를 받은지 4달이 지나고 2019년 10월 28일 월요일에 Mammographie(유방촬영법) 검사와 échographie(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음파 검진 결과를 2달 정도 이후에 수술의에게 가지고 가서 보여주는 1차 정기검진을 2020년 1월 9일 목요일에 받았다. 수술의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는 6개월 단위로 면담이 있다고 했다. 즉, 1월과 7월에 병원에 방문해야 하고, 그 중 1월에는 초음파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의사의 말과 별개로 병원에 가기 전부터 가슴에 잡히는 멍울같은 것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아무 이상 없을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검사 결과 후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의견을 들었다. 의사가 확실하게 말을 해주니 실제로 이상이 없다고 확신이 들며 동시에 안도감이 든다.


벌써 수술 받은지 1년이 넘었구나 싶다. 그 동안 머리카락도 많이 자랐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은 웨이브가 없는 일직선이었던 반면에 새로 자란 머리카락은 손가락으로만 쓸어내리기만 해도 곱슬곱슬 거려서 관리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반면 흰 머리카락도 많이 생겨났다. 남편은 그것은 나이탓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왜 암이 찾아왔을까?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내뱉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두면서 고립되어 외로운 삶을 사는 사는 건 혹독했던 듯 싶다. 본인의 생각을 제대로 말로 표현해 내지 못하고 타인과 의사소통의 단절속에서 사는 것은 나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태어난 조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수증기처럼 증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혼자 고립되어 있었던 상태였으니 말이다.


프랑스어로 전혀 의사소통을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때에 나는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보호자 동반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병원의 공장 같은 지하의 싸늘한 수술대 위에 혼자서 덩그러니 놓여 있게 되었다. 나의 침상을 지나다니며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야기 했지만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내가 프랑스어로 내 생각을 자유롭게 질문이라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좀 더 그 상황이 그렇게까지 압도적으로 무기력한 상태로 내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나의 몸은 마취 상태로 움직일수도 없었다. 신체도 두뇌도 입도 귀도 눈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나는 무기력하게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그 수술대에서 수술을 받고 이케아의 주차장 같은 지하실의 장소에서 수백개의 딱딱한 침상이 놓여 있고, 그 중 하나의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있었던 그 당시 나는 한명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내가 고깃덩어리가 된 것처럼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그 날의 모습이 나의 뇌에 선명하게 그리고 가슴 깊이 아직도 뼈저리게 박혀 버렸다.


그러나 너무나도 커다란 장벽이나 어려움 앞에서 돌연히 초연해져 버리는 것처럼 오히려 무기력한 나는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만약 내가 눈을 뜨면 다시 살아있는 것이고 눈을 감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이 세상과 작별할 수도 있으니 나쁠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치료를 받고 현재 나는 살아있다. 내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느꼈던 개인적으로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다름 아닌 다른이들과의 프랑스어로 의사소통 문제였다. 나는 한국어를 잘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한국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본인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그들만의 섬에 갇혀 살고 있다. 몇 십명 되지도 않는 그들의 그룹에 끼워달라고 애써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도 안다녀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다른 동네에 사는 영국인들이다. 게다가 우리 동네 사는 독일인들은 저마다 각자 숨어서 초개인주의 성향으로 각자 도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가 마주치는 99%의 사람들은 프랑스어만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면 내가 프랑스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는가? 내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그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며 지낼 것인가? 동물들처럼 제스처나 신호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것인가? 아니면 프랑스라는 땅에 살고 있어도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이 나을 것인가?


나는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데, 그들은 프랑스어밖에 말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그들보다는 내가 낫다며 거짓위로를 내게 계속 하면서 노력하지 않고 프랑스라는 땅에서 계속 살것인가? 백명 중 3개 국어를 말하는 나는 한명이고 프랑스어만 말할 줄 아는 그들이 99명이면, 99명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나 한명이 노력을 하는 게 더 합당하지 않는가? 어차피 나는 영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갈 예정이 아니므로 내가 프랑스어의 실력을 향상시켜서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암에 걸렸었고 치료를 받았고 그 모든 치료과정을 물론 치료를 받는 동안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말했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나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중대성을 이번 암치료를 통해 몸소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내 발로 딛고 있는 이 땅의 언어를 내가 구사해야 함을 말이다.





2020년 7월 9일,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2차 : 이동제한 명령 장점


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였던 2018년 9월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2년 후가 지난 현재 프랑스 정부가 바이러스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이동과 모임을 제한하는 락다운 조치를 취하는 등 이제는 개인 간 최소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인 les gestes barrières가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만큼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보호자는 동반할 수 없고 환자 본인만 들어갈 수 있으며 이마저도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철저하게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것이 2018년이 아니라 올해였다면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훨씬 많이 나빴을 듯 싶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병원의 침상이 만원이어서 예약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유방암 발견은 2018년이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남편이 나의 유방암을 극초반에 발견해서 수술도 한달만에 이루어졌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뒷따르고 대머리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여러 부작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이 조속하게 이루어졌기에 의사는 나에게 암치료 이후에 약은 따로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치료 이후에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는 것은 치료를 계속 받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폐경이 왔으며 관절이 많이 약해져서 조금만 육체적으로 힘든일을 해도 온몸이 아파서 견디기가 힘든데 약까지 복용을 했으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듯 싶다. 어쨌든 폭풍같았던 치료들도 모두 끝이 났고 머리카락은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단발정도의 길이가 되었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은 손질하기도 편하고 왠지 ”Comme D'Habitude (늘 그랬듯이)“를 불렀던 ‘클로드 프랑소와’와 비슷한 1960-70년대의 복고풍 같은 헤어스타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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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치료가 끝난 이후로 6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1년에 한번씩 마모그하피(mammographie, 유방암 단층촬영)을 받고 있으며 오늘이 두번째 정기검진 날이다. 검사결과 이상없음이다.


나의 생존프랑스어의 배움의 터전이었던 병원이었다. 치료 받는 과정에 병원관계자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내 머리속은 불어작문을 하느라 바빴고, 아시아 억양이 잔뜩 묻어나오는 프랑스어 발음으로 쭈뼛쭈뼛 대답을 했다. 늘상 물어보는 문제는 이미 답변을 연습했기에 대답을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면 모르기 때문에 마침내 고개를 떨구어 버리게 된다. 몇번을 말해줘도 들어서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본인들도 일하느라 바쁜 사람들인데 누가 나에게 친절하게 여러번 설명해 주고 싶겠는가? 이렇게 병원에서 나의 생존 프랑스어는 시작이 되었다.


나는 암투쟁과 동시에 생존프랑스어를 익히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녔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프랑스어 시험 DELF A2를 봤다. 구술시험장에서 시험관이 나의 대머리 위에 눌러쓴 베넷을 보면서 암치료 중이냐고 물어봤었더랬다. 치료과정을 짧게 답변했다. 초급 수준의 A2는 쉬웠기 때문에 고득점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방사선치료가 끝나고 나서 프랑스어를 배우러 국립대 어학당을 다녔고, 1차 정기검진 있기 몇 주 전이었던 2019년 12월에 프랑스어 시험 DELF B1에 합격했다. 자라나는 머리카락과 함께 나의 프랑스어 실력도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남편과 시댁식구를 비롯해서 외국인으로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부류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시댁에 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시부모님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그것을 놀림거리로 삼아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식탁 테이블에서 모든 친척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 시어머니는 나는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신혼때의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그들이 말하면 언제 웃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썩소 짓는 인형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생존불어를 시작한 지금은 대화 모두가 이해되는 것은 아니어도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그 흐름은 가늠할 수는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답다고 하는 프랑스어는 나에게 전혀 그렇지 않다. 시어머니가 나를 조롱하는 말을 프랑스어로 듣고 배우기 시작했는데 프랑스어가 아름다울리 없었다. 프랑스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남을 헐뜯는 것이 취미인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기 중심적인 그들이 하는 프랑스어는 고상하고 우아하기는 커녕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매일 남들을 비하하기 위한 프랑스어였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프랑스에서 이동제한명령이 있어서 좋았던 점은 시부모님이 80km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댁에 오라고 명령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21년 2월 16일,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3차 : 한걸음 성장


프랑스에서는 50세가 넘으면 유방암 검사를 2년에 한 번씩 받으라고 권장사항에 나와 있다. 그러나 유방암 치료를 받은 사람은 매년마다 한 번씩 Mammographie(유방촬영법) 검사와 échographie(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는 오늘 3번째의 검사를 받았다. 1~2차 검사를 받던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겨서 이번에는 내가 유방암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정기검진 항데부를 요청했다. 프랑스에서도 워낙 유방암 치료로 유명한 병원이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체계적인 검사를 해준다.


프랑스의 서비스는 정말이지 극과 극이다. 다시 말하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서비스와 반면에 광속도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빠른 속도의 서비스이다. 대부분 프랑스에서 악명 높게 느려터진 행정 서비스는 기다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간장이 타고 쪼그라들어서 머리털이 다 빠지고 나중에는 도 닦는 사람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기다리면서 될대로 되라며 포기를 하면 서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내가 치료를 받은 병원은 현대의 놀라운 발전된 테크놀로지와 함께 엄청난 광속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찌나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지 그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말하는 속도와 분량마저 시간타이머를 놓고 맹연습을 하고 있는 것마냥 군더더기 없이 일한다.


검사를 받기 위해서 내가 했던 것은 병원에 전화해서 항데부(rendez-vous)를 잡는 것과 주치의(médecin traitant)에게 처방전(ordonnance)을 받았다. 그리고 예전에 받았던 유방촬영법(Mammographie) 검사와 초음파 검사(échographie) 결과 분석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


병원에 가는 날이면 내 머리속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그 병원과 인연을 처음 맺게 되었던 2018년으로 올라간다. 살기 위해 생존 프랑스어를 배웠던 이 병원에 오면 내 머리는 자동적으로 “병원 = 생존 프랑스어”가 거의 공식이 되어 머리에 박혀 버렸다.


생존하기 위한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그 요구 수준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넘는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는 기억력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서 결코 청춘 시절에 배운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공부해도 공부해도 그리고 또 공부해도 잊어버린다. 내 머리가 바위라고 생각하고 바위에 새긴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도 달팽이 보다 더 느리게 한걸음씩 발전하고 있는 프랑스어의 실력에 매일 좌절감이 들었다. 특히 항암치료를 받을 때 나의 뇌의 기억력에 현저한 저하가 있음이 매순간 들며 실망을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때 예전과는 현저하게 다른 차이가 있었다.


첫째, 병원에 가기 전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예전에는 병원에 가서 프랑스어로 어떻게 질문에 답을 해야 할까에 대해 굉장한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었다. 미리 수첩에 적어서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속으로 암기를 한다. 항상 늘 그렇듯 질문은 항상 똑같지 않고 예상치 못한 질문들을 받기 때문에 당황스럽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프랑스어 수준을 내가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에 병원에 갈 때는 이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대답해야 하는 말을 준비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었다는 것이 내가 임기응변에 대처할 만큼의 프랑스어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둘째, 이번에는 정말 오롯이 혼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치료를 받을 때처럼 앰뷸런스 직원이 동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집을 나서서 버스정류장까지 30분을 걷고, 버스를 타고,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트람으로 갈아타고 병원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서 종착지에 도착했다. 편도 3시간, 왕복 6시간 걸리는 거리를 나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왔다. 유방암 치료를 받기 전에는 어디를 가던지 남편과 함께 했던 반면에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은 그동안 다녔던 국립대 어학원을 다니던 길과 유사하기에 2년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 혼자 가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걸음마를 한 발 본인의 힘으로 걷기 시작한 것처럼 나의 프랑스에서의 삶이 자립을 향해 한 걸음 성장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었다.


셋째, 그동안 병원에 갈 때 가장 힘들게 했던 점이 의료진들과의 의사소통이었다. 예전에는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그들의 설명도 이해를 잘 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별로 어려움 없이 답변을 했다. 접수처에서의 직원과의 대화, Mammographie(유방촬영법) 검사를 했던 직원과의 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échographie(초음파 검사)를 했던 직원이 검사 후에 말해주었던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나의 프랑스어 실력이 원어민만큼 유창해졌다는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병원 관계자들이 외국인 환자들을 상대를 많이 해보아서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쉽게 설명을 해주는 그들의 설명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ugIsv2gFqzklOJcOsKlTedwbJIXHH5hYna8JIi2Jlk2Nonyp-ZuDNCBsCMWTuyjzUvEhp46J59hJrrXWnHbY4GbPNrroOg3gjxg3Gmmt2iwmpTSwFJUbxNwXssyK7IzEBGKtBxtOR0YEO3HOO5qKook 2021년 2월, 유방암 치료 종료 1년 6개월 후 검사 결과 이상 없음





2021년 8월 10일, 유방암 정기검진 전 피검사 :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라


프랑스에서 유방암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서 선결조건이 피검사를 미리 받아야 한다. 피검사는 laboratoire에서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laboratoire에서 피검사 요청을 할 수는 없고, 피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주치의에게 처방전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 건강 관련 검사의 대부분 모든 것은 주치의로부터 시작이 된다. 주치의와 면담 가능한지 여부는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예약을 해야 한다. 요약해서 순차적으로 설명하자면 첫째,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예약날짜를 잡는다. 둘째, 예약 날짜에 주치의를 방문해서 피검사를 요청한다. 셋째, 피검사 처방전을 들고 laboratoire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단 예약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한다. 넷째, laboratoire에서 받은 피검사 결과를 가지고 유방암 정기 검진 병원에 간다. 유방암 정기 검진도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것이 전화를 통해 예약을 해야 시작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전화공포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편이 좋다.


주치의에게 피검사 처방전을 받아와서 피검사를 받기 위해 laboratoire에 전화를 했다. 이 날이 7월 22일이었다.


나 : 안녕하세요. 마담 OO에요. 피검사를 받고 싶은데, 8월 첫째주 가능할까요?
직원 : 시간은 몇 시가 좋으세요?


(laboratoire는 8시에 문을 열며 보통 10시까지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잡한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


나 : 11시 가능한가요?
직원 : 10시 30분부터는 코로나 검사를 하기 때문에 피검사는 그 이전에 해야 해요. 8월 5일 목요일 10시 괜찮은가요?
나 : 네, 좋아요.


약속한 당일 8월 5일이 되었다. laboratoire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집에서 일찍 나섰다. laboratoire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보다 15분 더 일찍 도착한 9시45분이었다. laboratoire 문 밖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들 중 한 마담에게 물어보았다.


나 : laboratoire 안에 들어갈 수 없나요?
그 마담 : 한번에 한명만 들어갈 수 있대요. 나머지는 여기 밖에서 기다려야 해요.


5명 정도가 나보다 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상태였다. 한 젊은 무슈는 아들과 함께 와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을 혼내며 Arrête ! 를 연발하고 있었다. 다들 오전부터 지친 얼굴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나이가 든 무슈가 와서 그 아들을 혼내는 젊은 무슈에게 말을 건넸다.


늦게 도착 한 무슈 : 피검사 결과지만 찾으면 되는데, 내가 먼저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아들 혼내고 있던 무슈 : Non, monsieur. 저도 마찬가지에요. 여기 모든 사람들처럼 말이죠.


늦게 도착 한 무슈는 포기하지 않고, 줄을 기다리던 나이가 가장 지긋해 보이는 한 마담에게 말을 건넸다.


늦게 도착 한 무슈 : 피검사 결과지만 찾으면 되는데, 내가 먼저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나이 지긋한 마담 : (종이를 흔들며) Non, monsieur.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그 때 laboratoire 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중에 한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 제일 앞에서 기다리던 한 무슈가 들어갔다. 그러자 늦게 도착 한 무슈는 포기하지 않고, laboratoire 문이 열린 틈을 타서 그 안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늦게 도착 한 무슈 : 피검사 결과지만 찾으면 되는데, 내가 먼저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직원 : 들어오세요.


그러자 그 나이 지긋한 마담도 피검사 결과지만 찾으러 온 거였기 때문에 laboratoire 문을 열고 직원에게 본인도 결과지 찾으러 왔다며 안에 들어가길 요청했다. 직원은 들어오라고 대답했고, laboratoire의 자동문은 닫히고 나머지는 모두 계속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굳어지고 짜증이 완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렇게 기다린지 25분째... 나의 약속 시간은 벌써 지났다. 한 명이 나오고 또 한 명이 들어갔다. 아... 이제 한명 남았구나... 기다린지 35분이 지났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직원 : 뭐 하러 왔나요?
나 : 피검사 하러 왔어요.
직원 : 피검사는 10시까지인데요. 지금은 코로나 검사에요.
나 : 항데부가 오늘 10시이고, 게다가 저는 35분동안 밖에서 기다렸는데요.
직원 : 어쨌든 오늘 피검사는 모두 끝났고, 불가능해요. 다음주 화요일 8월 10일 8시 15분 괜찮으세요?
나 : (잠시 망설이며)... 그런데 이미 오늘 저는 35분 기다렸는데요...
직원 : 다음주 화요일 8월 10일 8시 15분! 괜.찮.나.요.?
나 : (속으로 이런 깡패같은...) 네...
직원 : 처방전 주세요. 약속 날짜와 시간 써 줄게요.


그녀는 처방전에 8월 10일 8시 15분이라고 써주고 나에게 처방전을 돌려 주었다.


약속된 8월 10일이 되었다. 지난번의 경험으로 인해 이번에는 집을 일찍 나서서 공중부양을 하는듯한 빠른 걸음으로 laboratoire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에 비해 20분 일찍 7시 55분에 도착했다. 이미 3명이 또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3명이 기다리고 있어도 30분을 기다려야 할지 1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대비해서 읽을 책을 한 권 가지고 갔다. 가지고 갔던 책을 가방에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한명이 나오고 기다리던 한명이 들어갔다. 10분이 지났다. 그리고 또 문이 열리고 한 명이 나가고 또 한명이 들어갔다. 이제 내 앞으로 1명뿐이다. 그 때 깁스를 한 무슈 한명이 왔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를 보며, 그 깁스를 한 무슈는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슈에게 말을 걸었다.


깁스를 한 무슈 : 저는 오늘 항데부가 있는데, 제가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그 무슈 : 나는 항데부를 하지 않았는데, 그럼 먼저 들어가세요.


그 소리를 듣고 20분째 기다리고 있던 나는 끼어들었다.


나 : 저도 오늘 항데부가 있거든요.
깁스를 한 무슈 : 저는 8시 15분에 항데부인데요. 당신은 항데부가 몇 시인가요?
나 : 저도 8시 15분이거든요. 게다가 저는 오늘 2번째 오는거에요. 지난주에 와서 35분을 기다렸는데, 그 날 피검사는 끝났다며 받을 수 없었거든요.


laboratoire의 문이 열리자 새치기를 포기하지 않고 깁스를 한 무슈는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항데부가 있다며, 안에 들어가도 되냐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 직원에게 말을 했다. 나도 항데부가 있다고 말이다. (이것들은 내가 말을 안하고 있으면 호구로 안다)


직원 :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나 : OOO에요.
직원 : (예약명단을 살펴보며) 이름이 안쓰여 있는데요. 아마 날짜를 착각했나봐요.
나 : (처방전을 보여주며) 여기 보세요. 8월 10일 8시 15분이라고 쓰여 있어요.
직원 : 아, 그러네요. 그럼 Carte Vitale 주세요.
(일처리중... 잠시후...) 검사 결과지는 직접 찾으러 오실래요? 아니면 우편으로 수령하실래요?
나 : (30분이나 걸어와서 또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 결과는 우편으로 수령할 경우 몇일이 걸리나요?
직원 : Normalement(통상적으로), 다음 주 정도에 받아볼 거에요.
나 : 우편으로 받을래요.


그래서 나는 그 새치기를 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던 기브스를 한 무슈보다 먼저 피검사를 받았다. 이제 남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가만히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 취급 당한다거나, 보자 보자 하다가 보자기 취급 당하고 싶진 않다.


프랑스에서는 본인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꼭! 꼭!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을 안하고 있으면 그들을 배려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바보 취급 당하기 때문이다.

ZMIgnHrdPo-hBSBcgAz7AcR-Hr7oa08j4RghZRbA22fhcRxn3L7G4Hk_Au0mRWSz1nxhcH_mPumMDwo18DUfYBBjuH_WcyTCB8zlQGBLoeioj3wXtNM2w6AV06lz2-Aw6zABR-1kp3IUqqde52YuLCQ 피검사 받고 돌아오는 길...





2021년 10월 20일,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4차 :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


정기검진은 유방암 치료를 받고 나서 1년에 2번 받아야 한다. 올해 2월에 정기검진을 받았기 때문에 원래는 8월에 받아야 한다. 그래서 6월 어느날에 예약을 하고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가 10월 20일이라고 했다. 바캉스가 신성시 되는 나라, 프랑스이다. 바캉스 기간인 8월에 당연히 진료를 받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9월이 불가능하고 10월에도 후반에 자리가 있다니… 도대체 예약을 몇 달 이나 이전에 해야 되는건지 짐작이 되질 않는다.


전화를 걸어서 예약하는 것도 불편하고 이번에는 formation을 듣고 있기 때문에 너무 바빠서 정기검진을 받고 싶지 않았는데 꼭 받으라는 남편의 강요 때문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는 본능적으로 가고 싶지 않은 나는 자발적으로는 가지 않을거라서 남편의 잔소리가 아주 가끔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 유방암 정기검진 결과도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치료 이후 5년까지는 재발 위험이 높다고 하던데 유방암 치료가 2019년에 끝났고 현재로 2년이 지났으니 2/5은 넘은 셈이다.


항암치료 때문에 모두 빠졌던 머리카락도 어느덧 가슴에 내려올만큼의 길이가 되었다. 항암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단발과 장발중 어떤 것이 좋을지 등의 머리카락의 길이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머리카락의 유무에 있어서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강제로 모두 잃고 나니 내가 머리카락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지 나의 과거를 돌이켜봤다.


내 머리에 ‘머리카락의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는 순간, 순식간에 나의 기억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당시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연합고사’ 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커트라인 점수 이상이 되는 수험생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커트라인에 도달하지 않은 수험생들은 고등학교에 갈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합격자들에게는 학교가 무작위로 배정이 되었고, 내가 배정된 학교는 광역시에서 유일하게 단발령이 실시된 여고였다. 단발이 요즘 같은 어깨까지 내려와서 예쁘게 볼륨도 있는 그런 시크하고 우아한 단발이 아니라, 귀밑으로 1cm의 길이로 잘라야 했던 단발이었다. 그 당시에 그 머리를 몽실이 머리라고 불렀는데, 1990년 MBC 주말드라마인 ‘몽실 언니’에서의 주인공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게 잘라서 예쁜 사람은 레옹에 출연한 ‘나탈리 포트만’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단발령 의무인 인문계 고등학교로 배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엄마와 함께 엄마가 평소에 다니던 동네 단골 미용실에 갔다. 그렇게 해서 그동안 길었던 머리카락를 싹둑 잘라냈다. 이럴수가… 나탈리 포트만의 ‘나……’조차 닮지 않았다. 거울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산골에서 장작을 패서 모닥불을 피우다가 불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귀밑으로 1cm정도의 길이의 머리카락을 가진 한 여자아이가 마을에 갓 내려온 듯한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의 긴 머리카락을 보고 눈을 들어올려 내 앞에 있는 거울에 비추는 내 모습을 보고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잘려진 머리카락에서 상실감이 느껴졌던 듯 싶다. 미용실에서 나오기도 전에 거울 보고 울며 서있자, 미용실 아주머니가 가격을 할인해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삼손의 지혜와 힘의 상징이었던 머리카락… 이라고 바락바락 주장하며 나는 머리카락을 될 수 있으면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내가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내 머리카락은 허리 정도까지 찰랑거리는 연한 갈색을 띄고 있었다. 프랑스에 와서도 나에게 예쁜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소리를 간혹들었으며 나는 ‘뒷모습은 라푼젤’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러던 것이 처음 항암치료를 받고 2주 정도 이후에 나는 머리가 속속무책으로 빠지기 시작해서 머리를 모두 밀고 대머리 동자승이 되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두피에서는 좀처럼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영원히 하얀 두피로 내 남은 인생을 보낼것만 같은 암담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항암치료가 끝난지 한 달 이후부터 하얀 두피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마칠 무렵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빼곡히 들어차서 자라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기뻤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을 때 내가 여성인지 아니면 그냥 남자애인지 알아차리기 애매모호하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어쩌면 머리카락은 남성, 여성을 구별하기 쉽게 판단하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기들은 성별을 보여주기 위해 여자아이는 일부러 머리에 큰 리본을 묶는 다거나 머리띠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남성, 여성 상관없다고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머리카락 하나 만큼은 그냥 길고 싶었다. 나의 마지막 여성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자꾸 들었기 때문이었다. 머리카락과 함께 자신감도 그리고 여성성도 되돌아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계속 내버려 두었다. 예전처럼 ‘뒷모습은 라푼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머리카락을 이번에 한움큼 잘라버렸다. 거의 15센티가 되는 길이를 단번에 잘라 내버렸다.

5pWk-n_7QaG5Mr_8WmUn2tBcTnnn7Ze0z4QwWNqA5vYvIxNoAsMuyt8of-gM_Umbg__NE5cCuaP3Z-9XngdjcANKTVu9EZ_ZIezi6UWqJm0xC2SxLffv7SmGPU5DL6UhsiSDHt6DdH_0wEO7rTegvdw 이제 보내야 할 때…


항암치료 후 새롭게 머리카락이 자라서 한번도 자르지 않고 길었던 머리카락을 이번에 자르게 되었던 이유는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서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츄잉껌이 머리카락에 딱 달라붙어서 빗질을 하면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버리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가위를 들고 욕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며 쓰윽쓰윽~~~ 하고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자른 김에 앞머리도 자르고 옆으로도 층층으로 조금씩 그라데이션도 냈다. 썩 제법 잘 잘랐다. 자르고 나서 거울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Il faut tourner la page.”


즉 이제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수는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푼젤의 긴 머리를 고수했던 건 과거의 나와는 이별을 고하고 이제 짧은 단발 헤어스타일로 새로운 마음으로 산뜻한 시작을 해보자는 결심이 선다.




2021년 12월 22일, 뼈 스캔 검사 : 나의 인생의 주요한 과제


검사 일정 요약

12월 8일 주치의 진료
: 전문의에게 검사 필요하다는 소견서 받음
12월 15일 산부인과 의사(Gynécologue)의 진료
: SCINTIGRAPHIE OSSEUSE 검사 처방전(ordonnance) 받음
12월 22일 뼈검사(SCINTIGRAPHIE OSSEUSE) 검사 실시


이 검사를 이번에 받게 된 이유는 Bilan d’extension d’une lésion mammaire였다. 즉 항암치료를 받고 난 이후 부터 눈에 띄게 온몸이 전반적으로 많이 약해졌으며 특히 관절 부분이 많이 약해졌는데, 대기중에 습기가 많이 있거나 추운 겨울이면 아픔의 정도가 더 크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내가 너희들을 낳고부터 뼈마디가 아프기 시작했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나의 어깨는 항상 경직되어 있고 허리도 아프고 영치뼈 골반도 아프고 가끔은 무릎의 관절도 아파온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허리, 골반의 통증이 느껴진다. 육체적인 힘을 쓰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는 날이면 저녁 밥 먹고 나서 바로 침대로 직행이다.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복용해야 잠이 들 수 있다. 이런 체력으로 현재 듣고 있는 포마씨옹을 받으러 가기 위해 책가방 메고, 도시락 가방 들고 걷고 버스를 타고 왕복 90분 정도의 거리를 매일 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간다. 코로나 이후로는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재택근무의 개념인 FAD(Formation à distance)를 해서 다행이다. 과연 이런 저질 체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절망감에 휩싸인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겪는 이 통증이 그저 내가 쇠약해진 탓인지 아니면 암이 다른 형태로 Mutation(돌연변이)를 일으켜서 뼈에 암이 전이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오늘 뼈 스캔 검사(SCINTIGRAPHIE OSSEUSE)를 받았다. 3년 전인 2018년 11월 18일에도 첫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뼈 스캔 검사를 받았었다. 한마디로 뼈 스캔은 뼈의 염증, 손상, 암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로서 방사성 의약품을 사용하여 뼈의 변화를 촬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암 진단뿐만 아니라 외상, 관절염, 뼈 감염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뼈스캔 검사에 총 소요 시간은 약 2시간이 넘으며 다음과 같이 진행 되었다.


11시 30분 병원에 도착

코로나로 인해서 보호자 동반 불가이며 혼자 들어가야 했다. 전문의에게 받은 처방전, carte vitale, 그리고 passe sanitaire 제시


11시 45분 정맥 주사 받음

이후 1시간 30분 동안 병원 밖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때마침 점심시간 이어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단, 검사를 위해서 수분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1시간 30분 동안 거의 1,5리터는 마셨다. 그리고 병원 화장실 가서 배뇨하여 방광을 비워야 한다.


13시 뼈스캔 검사 촬영 시작

상의는 벗지 않아도 되었고, 금속 부착, 허리띠 허용 안되며, 주머니를 비우고 기계에 누웠다. 다리 발목을 고정대로 묶어서 마치 두 다리가 함께 묶인 닭다리가 된 듯 싶다. 차렷 자세로 누워서 전신 촬영이 시작되었다. 위에 있던 기계가 점점 내 얼굴 가까이로 내려왔다. 내 눈 앞에 십자 표시의 불이 보였다. 기계가 내 얼굴 5cm 위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오른쪽, 왼쪽, 전신을 모두 촬영했다. 촬영 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13시 40분 검사결과 대기

검사 이후 대기실에서 약 20분 정도 기다린 이후에 검사 결과가 바로 나왔다. 결과는 Absence de lésion osseuse secondaire 였다. 즉 이는 질병의 확산이나 뼈의 다른 부분에 대한 손상이 없음을 의미하며, 이는 의학적 진단에 있어 긍정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나쁜 결과는 없고 단지 척추가 약간 휘어 있고 뼈가 좀 약해졌다고 한다.


2016년에 프랑스에 왔고 2018년 어쩌다 암에 걸렸고 이 병원에서 암종양 제거를 받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당시에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병원 의료진 덕분에 주변에서 간혹 들려오는 의료사고 없이 치료를 잘 받았다. 치료는 무사히 종료가 되었지만 화학요법, 방사선요법,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포함한 암 치료 자체가 뼈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매일 만보 이상 많이 걸으며 체력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전의 젊은 시절의 체력으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꽃꽂이 서 있고 싶지만 나의 마음을 외면하는 나의 등은 새우처럼 자꾸 앞으로 굽으려 한다. 하나 둘 씩 늘어가는 흰 머리를 보며 늙어가는 것도 평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서툴기 그지 없다. 이제 나의 저질체력에 한탄만 하기 보다는 노화의 신체 변화를 받아들이고 좀 더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겠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신체적 무리를 주는 일로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의 인생의 남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남은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겠다.




2023년 5월 11일,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5차 : 논쟁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검사 일정 요약

2월 3일 주치의 진찰
: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 유방초음파(échographie) + 피검사 처방전 받음
2월 17일 피검사 (Prise de sang)
: 결과 이상없음
3월 7일 전화 예약
: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 유방초음파(échographie) RDV 요청
5월 11일 검사 실시
: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 유방초음파(échographie) 검사 실시


드디어 유방암 치료 이후의 5번째의 마지막 정기검진이다. 늘 그렇듯 이번 정기검진도 주치의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진찰약속을 요청했다. 2월 3일 주치의는 피검사와 유방암 수술 이후 5차 정기검진 처방전을 써 주었다. 그리고 정기검진을 받기 전에 피검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동네에 있는 Laboratoire에 전화해서 피검사 가능한 날짜가 2월 17일라고 답변해 주었다. 해당 날짜에 피검사를 받고 나서 이틀 후에 결과를 이메일로 받았다.


2018-2019년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피검사 결과는 우편으로 수령하거나 아니면 직접 Laboratoire에 다시 방문해서 종이로 된 결과를 받았었다. 이 모든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방역조치에 따라 재택근무가 활성화 되는 추세로 바뀌면서 피검사 결과도 직접 방문해서 받거나 몇일이나 걸리는 우편으로 받는 대신 그 결과를 빠른 시간내에 이메일로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피검사 결과를 의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의사는 본인의 컴퓨터에서 접속해서 나의 피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프랑스의 서류 처리를 온라인으로 급속하게 바뀌게 했던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메일로 피검사 결과를 받았고, 다음 단계로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과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전화를 해서 진찰 예약을 했다. 유방초음파(échographie) 검사와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검사를 받기 위함이다. 이 날은 3월 7일이었다. 직원은 현재는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두 달 이후인 5월 11일부터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가장 빠른 날이 두달 뒤라고 하니 그 날로 진찰예약을 잡았다. 요컨대, 2월 3일 주치의가 처방전을 써준 이래로 5월 11일 정기검진을 받을 예정이니 주치의부터 정기검진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3달이 걸린다는 뜻이다.


5월 11일 당일이 되었다. 집에서 83km 떨어져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편도 3시간, 왕복 6시간이 걸린다. 즉 병원에 한번 가기 위해 하루를 몽땅 바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실 물, 샌드위치, 처방전 등을 가지고 버스를 타러 아침 7시에 길을 나섰다. 걸어서 25분 정도 걸리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3년 전 어학원에 다닐 때는 집에서 5시에 출발했기 때문에 그 때에 비해서 7시에 출발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아서 몇 정거장을 지나 검은 아바야(abaya)를 입고 몸 전체를 가린 한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육중한 몸매의 소유자로 본인의 자리를 넘어서 나의 자리의 절반을 차지하며 앉았다. 그녀의 건장한 무게에 밀려서 나는 창문에 찌그러져 몽펠리에의 버스 종점 모쏭(Mosson)에 도착했다. 나는 드디어 버스에서 내려서 트람을 타고 종착지인 병원으로 향했다. 트람에서 내리자 등교하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들을 뚫고 병원에 도착했다. 9시 50분이다. 7시에 집 대문을 나선 이후로 걷고, 버스타고, 트람타고 내려서 또 걸어서 예상대로 병원에 도착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


병원 접수대로 가서 보니까 이제는 모든 절차가 자동화가 되어 있었다. 번호표를 뽑아서 접수원에게 처방전을 주었던 예전의 시대는 이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직접 본인이 접수대 앞에 놓여 있는 기계에 처방전을 올려 놓고 바코드를 스캔하여 버튼을 몇 개 누르고 나면 대기 접수표를 받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접수표를 받아서 나는 대기실에 자리를 잡고 대기번호가 뜨는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크 달린 바지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이제서야 꺼내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핸드폰을 보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는 순식간에 도난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으면 안된다. 남편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검사가 취소가 되었다는 전화를 병원측으로부터 오늘 아침 8시 정도에 전화를 받았다며 나에게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상황을 다시 설명해 보자면 3월에 예약을 한다는 전화를 걸었고 두 달 이후인 5월에 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서 5월 11일 10시 30분으로 검사 예약을 하고,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3시간이 걸려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검사 예약 당일 8시에 병원에서는 취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일방적인 취소를 당했으니 검사를 받지 못하고 다시 3시간 걸려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오늘의 검진을 위해 몇 달을 기다렸으며 오늘 하루를 모두 검진을 위해 대중교통으로 6시간을 바쳐야 하는데 오늘 검진을 받을 수 없으니 다른 날 또 전화해서 또 예약을 하고 또 하루를 날려버리라는 일방적인 병원의 통보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곧바로 접수처에 가서 접수원에게 말을 건넸다. 모든 일하는 시간이 초, 분 단위로 세어지고 있는 접수원은 내가 말을 건네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본인 담당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접수원을 잡고 늘어졌다. 취소 메시지를 사전에 받지 못했다는 것과 이 곳에 오기 위해 세 시간이 이미 걸렸다는 것…등을 말했다. 접수원은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1분 후에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검사원이 도착하여 내 이름을 호명했다. 오늘 의사가 휴가여서 검사 예약이 취소가 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예외적으로(exceptionnellement) 나의 검사를 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엑쎕씨오넬망(exceptionnellement)…라는 단어의 울림이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검사원은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검사 과정에 대한 간단히 설명과 함께 주의사항을 빠른 속도로 전달했다. 상의 탈의를 하고 오른쪽 가슴을 기계 위에 올려 놓았다. 기계가 위쪽에서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내 가슴은 납작하게 눌려서 호떡이 되었다. 나는 프랑스에 살고 있으니까 호떡 보다는 크레이프가 낫겠다. 그리고 왼쪽 가슴도 검사를 마쳤다. 결과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이후 옆 방으로 이동을 했다. 유방초음파(échographie) 검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의사는 나를 침대에 눕게 하고 가슴에 젤을 바르고 기계를 문질러 대며 이상 유무를 검사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아픔이나 이상, 불편함은 없냐는 질문이었다. 수술을 받았던 가슴쪽이 약간 따끔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 부분에 받은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들을 생각하면 약간의 불편한 느낌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불편함은 없다고 대답했다. 의사도 초음파를 통해 본 결과도 이상은 없다고 했다. 이번이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 이후 5번째 정기검사로 마지막이지만 이후에도 1년에 한번씩 검사 받는 것이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서 결과 진단서를 받기를 기다렸다. 직원이 내 이름을 호명하고 직원은 나에게 carte vitale 요구와 함께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응답을 하고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검사, 유방초음파(échographie)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병원 문을 나서며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검사 받았으니 이제 집에 가겠다고…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 기다려 봐야 소용없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논쟁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Il faut argumenter et convainc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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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의 유방암 치료 한 페이지 요약

유방암 발견부터 각종 검사와 치료 과정을 연대순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8/09/03 유방암 의심

2018/09/05 Radiographies (X선 촬영) 검사

2018/09/06 Mammographie (유방촬영술) 검사

2018/09/10 Ponction biopsie du sein 검사

2018/09/24 스캐너 및 IRM 검사

2018/10/02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

2018/11/06 Portacath 삽입

2018/11/07 심장 검사 (총 4회)

2018/11/13 항암치료 시작

2018/11/19 뼈 스캔 (SCINTIGRAPHIE OSSEUSE) 검사

2018/12/07 Oncogénétique (유전자) 검사

2019/04/02 항암치료 끝 (총 15회)

2019/04/29 방사선 치료 시작

2019/06/21 방사선 치료 끝 (총 34회)

2019/07/09 Port a cath (케모포트) 제거

2019/10/28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1차

2020/07/09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2차

2021/02/16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3차

2021/10/20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4차

2021/12/22 뼈 스캔 (SCINTIGRAPHIE OSSEUSE) 검사

2023/05/11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 5차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것을 종합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면, 나는 2018년에 유방암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이후 각종 많은 검사를 받은 이후 2018년 겨울부터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다. 탈모를 포함한 몸에 존재하는 모든 털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면역체계가 현격하게 저하되었으며 폐경이 왔고 이후 관절 약화를 비롯해서 신체적으로 노화가 급속하게 찾아왔다. 항암치료는 2019년 4월에 끝이 났으며 한 달 이후부터 34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모든 치료를 마친 이후 따로 약을 복용할 필요는 없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5년 이내에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유방암은 1년에 한번 정기검사가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피검사, 유방촬영술 (mammographie) 검사, 유방초음파(échographie) 검사가 필수적이었다. 2023년 마지막 5차 정기검진을 받았고 현재 2024년 1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유방암은 재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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