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사업노트]
명분 : 사업을 해야하는 이유?

일단 뭐든 명분이 있어야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것

by 오션


2014년 6월,

처음으로 직장이라는 곳에 소속되었다.

일단 인턴PD가 되었다. 대개의 회사가 그렇듯 수습기간을 거친 이후 정규직이 되는 과정이었다.


전공과 정말 1도 연관 없이 다가갔던 'PD'라는 직업세계.

낮밤 없이 일하는 과정에서, 직업의식은 커녕 즐거움도 못 느꼈다. 내게 안 맞단 생각을 했다.

인턴 과정에서 불합격했다.

계속 이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했다.


2014년 12월,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 금융회사에 가게 되었다.

신입사원 연수, 지점 근무를 거치며 사회인이 된 사실에 신기하고 또 우쭐했다.


지점 근무는 상당히 각박하고 힘들었다.

매일 쏟아지는 손님&손놈들, 그에 비례해 엄청나게 많은 할 일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게 도움이나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서비스&영업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들 속에서 이직을 결심했다.


2016년 7월,

학벌의 영향이었을까. 새로 생긴 비영리 사단법인인 금융협회로 이직했다.

(물론 원래 가려던 협회에 떨어져 PLAN B가 먹힌 것)


첫 공채의 메리트 같은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이미 각 조직에서 모자이크처럼 생긴 기관이었고 이미 카르텔이 완고했다.

이른바 '메인 스트림'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겠구나 싶었다.

아,, 그런 의미없는 시간 낭비 안하고 싶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이 없었다.

나를 가이드해줄 관리자의 역량도 너무나 낮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이기적이고 또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2022년 2월,

꽉 막힌 금융협회의 일이 지겨워서 다시 사기업으로 이직했다.

금융 + IT...로 대표되는 회사. 영어 이름도 쓰고, 전/그전 직장 대비 플렉서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답답하다.




직장이라는 곳을 다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그리고 나의 이 삶은 내가 크게 노력하지/실패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10년

더 길게는 20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직장을 10년 다녀보니 이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1. 회사의 매출이나 영업이익, 수익성 등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월급은 나온다. (망하지 않는 대기업만 다녔다)


2. 남들 쉴 때 쉴 수 있고, 조금 더 운이 좋으면 남들 일할 때도 쉴 수 있다.


3. 재택근무, 놀금 같은 혁신적인 근무여건을 누릴 수 있다.


4. 09-18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큰 기여 없이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도 된다. 업무적 퍼포먼스? 굳이..


5. 일하던 중간 중간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메신저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다.


6. 회사의 퀄리티에 따라 대출 한도, 대출이자 지원 등 금융적인 편의도 많다.


7. 건강검진을 내 돈 내지 않고, 배우자/가족들까지 합리적인 가격으로 받을 수 있다.


8. 5일/2일, 주중/주말이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다.


9.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되고, '시키지 않은 것'만 안해도 기본은 한다.


10. 나라는 사람의 능력을 100%, 110%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 즉, 크게 힘들지 않다.



거꾸로 이런 단점이 있는 것 같다.


1. 내가 내 삶을 컨트롤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회사에 일이 있으면 휴가 등 일정을 맞춰야하고, 아무리 프리하다고 해도 출/퇴근이 늘 내맘대로 아주 자유롭지는 않다.


2. 조금 노력이랍시고 했어도 크게 반대급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혹은 인정만 받는 것 같다. 자기 만족/약간의 칭찬+격려(금)로 끝? 진급? 팀장승진?


3. 급여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선 아주 큰 장점인데(소득 관리, 대출 운영 등), 어떤 면에선 아주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월급의 x10씩 받지는 못한다.


4. 주어진 것만 해버릇하다보니 나서서 찾고 끌어오고 만들어내는 능력이 퇴화하는 것 같다. 회사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잘 찾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결국 이 세상에 국한되고 있는 것 같다.


5. 엉뚱한 간접경험만 늘어간다. 진짜 내 돈을 쓰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에이 그거 안돼하는 식의,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기만 한다.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6. 같이 일하는 동료 혹은 관리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까칠하거나 무능력하거나 공격적인 사람들과 함께 있다보면 상처입는 나를 발견한다. '너나 잘할 것이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보다 조금 먼저 왔다고, 나이 혹은 직급이 높다고 함부로 말하는 자들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7. 결정적으로 확장성이 전혀 없는 것 같다. 팀장? 임원? 대표이사? 어느 시점엔 멈춰야할 것들이고, 그게 나의 가치라고 말하기엔 부끄럽다. 임원으로 퇴직했어요가 인생의 업적?


8.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이사라도 결국 '일'을 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야한다. 짧고 굵게 사업체를 만들고, 그 과정에 내 노동력과 시간을 빼더라도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는 만들 수 없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라는 책에 나오는 도식이다.


다소 좀 극단적인 분류로 보이지만,

'노동'의 투입여부로 ES/BI가 나뉜다는 점은 아주 크리티컬하게 느껴진다.






....


직장인들이 아주 쉽게 하는 착각이,

'회사 그만두고 내 일 잘하면 훨씬 좋을거야.

돈도 왕창 버는대로 가져가고, 더 즐기면서 살거야.'

일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무지성 창업하고, 모아 놓은 돈 털어넣고, 극단적으로 발악하다가

기존보다 못한 곳에 취업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겠지.


그러니 이런 고민을 미리 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업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뭔지, 나아가 이 사업이 나에게 줄 엄청난 고민과 걱정들을.


내가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 때에만 시작할 수 있겠다.


1. 매출(&영업이익) = 내 삶이 된다. 매출이 없으면? 그 순간 나는 - (마이너스) 삶이 되는 것이다.


2.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고, 생활비를 부담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회사에서 월급 받는 동안은 상상도 못한 일들이.


3. 직원이 있다면, 직원이 명령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기대치가 10이라면 2,3 정도 밖에 못하는 상황에 월급도 줘야하고 바라는 것들을 맞춰줘야 할 수 있다. 직원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 .


4. 임대료, 세금, 월급 등 제외하고 내게 남는 것이 없을 수 있다. 겉으로는 잘 되는데 남는 게 없는 것이 더 최악 아닐까.


5. 매 순간 나의 선택이 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잘못된 판단이 '폐업'에 이를 수 있다.


6. 믿었던 협력사, 파트너사, 동업자, 가족 등등.... 어느 순간 '돈' 앞에서 등에 칼이 꽂힐 수 있다.


7. 내 노력과 무관하게 산업 환경, 정치, 외교, 국제정세, 팬더믹 등 리스크가 산더미다. 늘 공부하고 알고 대비해야만 한다.


8. 은행에서 금융을 이용할 경우, 득이 되는 경우만큼 자칫 금융이자에 실이 많을 수 있다.


9. 또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것들이?




나는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또 믿을 수 있을런지?



@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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