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직장, 결혼, 애 낳고.. 진짜 내 삶은 언제?

이게 시지프스의 형벌과 뭐가 다르지?

by 오션

*그림 출처 : https://brunch.co.kr/@viviennegray/46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시지포스는 올림푸스 신들을 기만한 죄로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벌을 받게 된다. 바위는 정상에 오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올려야 하는 영원한 노동이다.



그날은 맞벌이하며 자식 교육에 크게 관심 없던 부모님 입에서 환한 미소를 처음 본 날이었다.

'성적'이라는 것이 의미 있어진 중학교 무렵, 우연히(?) 잘 받은 시험 성적 덕분에 나의 형벌은 시작되었다.



당시 넥슨에서 서비스하던 '바람의 나라', 블리자드의 '디아블로'에 빠져서 사실 초6부터 중2까지 게임만 하며 지냈던 내게, 중간고사 반 4등은 상당히 쇼킹한 결과물이었던 것 같다.


게임을 하건, 만화를 보건 일절 간섭 없던 부모의 입에서는 '공부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얻는 성취감(공부하니 성적이 잘 나오고, 등수가 올라가네?)과 주변의 선망의 눈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잘한 것도 아닌데, 중학교 2학년 2학기부터는 상당히 괄목할만한 점수 및 석차를 얻었다.


사람의 인식의 한계는 경험의 한계라고 하던가. 이제 전교권에서 노는 점수가 되니, 특목고나 외고, 자사고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중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부모의 지도편달(및 지원) 아래 꽤나 타이트하게 공부를 해왔던 것 같다. 이제 중학교 수학과 영어를 '알 만 했던' 나와는 달리, 그들은 벌써 고등학교 수학 및 영어 전체 과정을 1번 이상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기 싫었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종합학원에 가게 되었다. 입학시험 및 내신 점수로 꽤나 높은 레벨의 클래스에 배정받았다. 하지만 거기서 또 새로운 '형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선행학습 좀 했다는 친구들이, 이제야 가나다를 배우는 나에게 '조롱'을 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손 들고 질문을 하는 나에게 '야, 그것도 모르냐?'라며 비아냥거림이 계속되었다.


선행학습의 위엄이었을까. 처음 배우는 나와는 달리 대부분의 친구들은 곧잘 매주 진행하는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나는 늘 F 점수를 받아, 재시험을 봐야만 했다.



분했다.

그저 먼저 배웠을 뿐인데, 그것으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 화가 났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을 당장 앞지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특목고라는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고, 나에게는 그저 '성적 잘 받고 싶은' 욕심만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원하던 학교로 진학을 했다. 나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아무 생각 없던 그대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을 적으려면 밤을 새울 것 같으니, 간략히 요약하자면 나는 문과에서 톱클래스를 유지했다. 잘하는 친구들은 더 높은 곳에서 경쟁하고 있어서 그랬을까. 생각보다 우리 학교에는 성적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가 없었고, 그 덕분에 나는 좋은 등수와 점수를 유지했다. 반장도 이어서 했고, 학생회장까지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능력 이상의 대학에도 합격했다.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내가 과연 갈 수 있을까? 싶었던 학교에 입학한 그 기분을 아직 잊지 못한다. 해당 학교 소재 지역에서도 '좋은 학교 다니네.'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내가 있던 지방에서는 정말 '벌써 인생 성공'한 것 마냥 치하를 받았다.



좋았다.

남들보다 앞서간 기분이었다.


앞서 나에게 '그것도 모르냐.'며 비아냥 거린 친구들이 재수를 하거나 3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2번, 3번 도전했는데도 내가 다니는 학교보다 몇 단계 낮은 학교에 갔다는 얘기도 들렸다. 솔직히 고소했다. 내가 몇 배는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의미 없는 우월감에 매우 도취되었던 것 같다. 꽤 오랜 기간.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와는 달리 또 '차곡차곡' 준비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 국가고시에 합격한 친구들, 부모의 회사에서 경영자로서 사회에 뛰어든 친구들, 어린 나이에 빠르게 해외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친구들.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과 달랐다. 눈앞에 보이는 공동의 성적표가 아니라 '각자의 삶'이라 생각하니, 남일 같았다. 나도 뭐 잘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



일단,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운이 좋았다. 아마 많은 부분은 학교빨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시 공부를 하느라 다른 사람 대비 스펙적으로나 나이적으로나 메리트가 없었다. 그럼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직장에 합격했다. 마음이 놓였다. 주변에서 칭찬해 주는 사람,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회사 배지를 달고 신입사원 연수를 갈 때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동기들과 모여서 술 한 잔 마실 때는 이미 '성공한 사람의 축배' 같았다. 아 기분이 째졌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에 목숨 거는 사람, 자기 재테크에 충실한 사람, 자기 계발을 위해 주말에도 공부하는 사람 등등. 멋졌다.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월-금 5일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지치고 힘든데,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무언가 한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한 것은 없었다.


입사 동기 카톡방에서 결혼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누가 언제 결혼한다더라, 어디 결혼식장인데 거기 비용이 몇 천이라더라 등등. 아 나도 결혼을 잘해야겠다 싶었다. 좋은 사람 만나서 때가 되면 잘할 거라 믿었다. 근거 없이 나는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니, 괜찮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 믿기도 했다.



취직 후 처음 만난 사람과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남자 동기 1호 결혼이었다. 내 친구 중에서 사고 친 친구들 제외하고 가장 빠른 결혼이기도 했다. 결혼식날 정장을 입지 않고 청바지에 흰 운동화(으악)를 신고 온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아직 채 '사회인'이 되지도 못한 단계에서 덜컥 결혼을 했다.


결혼 스토리도 말하자면 길지만, 첫 연애 상대가 내 평생 배우자 상대로 딱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덕분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자꾸 결혼했으니 아이를 가져야 한단다. 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둥, 아직 어리니 한 둘은 충분하겠다는 둥, 재테크에 집중하고 딩크도 괜찮다는 둥 다양한 소리를 들었다.



나이 서른에 부모가 되었다.


아이에 대해선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편이라 결혼 후 1년 반 만에 2세를 만났다. 새로운 우주 같았다. 내 인생의 축이 180도 바뀐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간의 인생이 그냥 커피였다면, 아이와 함께한 삶은 TOP를 넘어 '커피'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아이'를 위해 기꺼이 포기했다. 근 3~4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어어어어 하다 보니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내 나이는 30대 중후반에 도착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딱 10년이 되었다.



나는 이제 또 어떤 것을 하면 되지?


남들이 마치 정해준 것만 같은 테크트리를 차곡차곡 잘 진행해 왔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가정.... 그런데 솔직히 뒤의 두 가지를 빼면 앞의 2가지는 '나한테 좋은지' 잘 모르겠다. 대학을 선택한 기준이나 전공을 선택한 결정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부모의 기대나 주변의 시선을 더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배움의 즐거움이 짜릿했던' 경험보다는 '이 노잼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 바랐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내가 아닌 타인의 잣대로 선택한 결정에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데, 나는 만족은커녕 불만이 더 차오른다. 진심으로.




16살 학업에 집중할 때부터 굴려온 나의 돌은,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고 있다.


내가 좋아서 굴리는 것인지, 남이 시켜서 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 몸과 마음을 바쳐 달리고 또 달렸다. 항상 그랬듯, 목적지라고 생각했던 곳 뒤에는 다시 돌이 떨어질 곳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시 또 오르막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오르막길을 올라왔다. 도대체 언제 평지가 나올까. 난 언제쯤 이 돌 끌기를 멈출 수 있을까.



유한한 삶이 주어진 인간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주어진 삶 안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든가 결국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대부분의 인간은 무기력하게 죽는 게 아닌 주어진 삶 안에서 무언가를 해내고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2025년이라는 새로운 관념의 시간 속에,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이제 좀 '내가 즐겁게, 선택해서' 돌을 굴리고 싶다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소진하거나, 주어진 것들을 때우는 대신 해서 말이다.



직장생활을 타파하는 것이 1번 과제인 것 같다.


한 달짜리 삶.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월급에 길들여져서, 야수 같은 성질은커녕 사파리 수준도 안 되는 생명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자칫 대출/육아(자녀)라는 쇠고랑을 발에 끼우게 되면, 문을 열어줘도 나갈 수 없는 '자유를 뺏긴' 짐승의 삶.



나의 2025년은 없어진 나의 야수성을 되살리는 한 해로 보내고자 한다.

1년 후 나에게 부끄럽지 않길 바라며,




@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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