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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리 Apr 23. 2024

만(萬)개의 꽃잎이  만(滿)개하던 날

봄날이 만개하다


어떤 시인이 그랬다. 꽃은 밤하늘의 별이 잠들어 있는 꿈이라고. 그래서일까? 봄날 지천인 꽃들은 낮에 뜬 별처럼 눈부시다. 그 별과 꽃 사이에서 봄이 오고, 그 봄을 따라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주에서 완주까지 4월을 건너는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올해 우리의 삶은 전주에서도 완주에서도 만개다.      


별꽃 배꽃 흐드러진 전주 원동마을


4월 하늘 아래 가장 맑고 희고 환한 곳. 전주 원동마을에서 만난 배꽃의 표정들이다. 비밀 이야기를 숨겨놓은 듯 배꽃은 무더기무더기 터널을 이루었다.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온통 흰 배꽃들이고, 배꽃들 너머로 봄날의 하늘이 푸르다. 원동마을 벽화에서 “쉬는 것도 일입니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배밭에서는 꽃 피는 것도 봄날의 일이라는 듯 분주하다. 일삼아 잘 쉬어보라고, 제대로 쉬어보라고 이 봄날이 사람들을 불렀나보다. 마을 앞 버스 정류장 의자 그네에 앉은 노부부의 발끝에서 4월이 가볍게 흔들린다. 걸음을 옮겨 배꽃 터널로 들어선다. 꽃 한 송이에 시선이 머문다. 꽃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간밤에 내려앉은 별 무더기다.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더니 화르르 별꽃이 떨어진다. 배꽃이 떨어진다. 나비처럼, 꽃잎이, 바람을 타고, 우르르 공중으로 솟구친다. 이 봄날이 꽃들로 화창해지는 순간이다.    

 

봄꽃의 향연, 4월의 수목원


원동마을에서 배꽃에 취한 걸음이 이내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에 닿는다.  1972년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훼손된 자연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목원은 1983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날부터 전주수목원은 다양한 식물 종과 만나는 자연학습장이 되었다. 수피에 이끼를 가득 안은 이팝나무가 줄지어 선 입구로 들어선다. 아까 배꽃 터널에서 만났던 바람도 서둘러 도착했다. 영춘화, 복수초, 노란 수선화 사이로 4월의 꽃들이 꽃대를 세운다. 꽃도 피는 순서가 있고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는데, 봄꽃은 순서가 없어도 마냥 아름답다. 이 무질서한 아름다움을 아는지 희고 노란 나비 몇 마리가 제멋대로 공중을 날아다닌다. 나들이객의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는 꽃들의 표정을 본다. 튤립이다. 어린아이의 미소가 튤립을 활짝 피어나게 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발길이 닿는 수목원의 4월. 그 사람들이 모두 4월의 향기를 한 줌씩 퍼가도 수목원의 향기는 조금도 줄지 않을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마음 가득 4월 향기를 채우고, 봄날의 향기로 한 해를 살아가겠지.    

  

봄날을 채비하는 완주 비비정


강을 건너도 수목원의 봄 향기는 흩어지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한 줌을 하리교에 풀어놓고 삼례교까지 걷는다. 서두를 것 없이 물살의 속도에 발길을 맞추면, 그 속도가 마치 봄이 오는 걸음걸이처럼 가볍다. 이르게 핀 벚꽃은 어느새 지고, 늦은 벚꽃은 또 한편에서 화들짝하게 피었다. 그 사잇길을 자전거를 탄 소년들이 지나간다. 이 봄볕 아래에서 소년들의 어깨는 단단하게 여물어갈 것이다. 시선을 강 쪽으로 돌리면 물오른 버드나무가 보인다. 만경강 강물은 버드나무 줄기를 타고 공중으로도 흐르는 것 같다. 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강물은 좀 더 성질 급하게 흘러가겠지만, 오늘만큼은 내 걸음에 맞춰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철길을 따라 고속열차는 세월의 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무심하고 무상하다. 그러나 4월의 봄날은 좀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 모양이다. 비비정에 희고 푸른 바람이 분다. 만경 8경 중 5경인 ‘비비낙안’ 비비정에서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시와 운문을 지었다는 선비들처럼 4월의 봄날이 좀 더 이곳에 머무르며 이 봄을 풀어놓고 갔으면 좋겠다. 그 바람이 끝나는 곳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만경강 강물에 비치는 소년들의 눈망울도 봄꽃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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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재미 100

이곳도 한번 들러보세요!

     

     

나들목 가족공원

오래된 정원이 사람을 부르는 곳. 흩날리는 꽃잎과 비눗방울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간. 꽃향기에 취하고 웃음소리에 다시 한번 취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전주시 덕진구 용정동 469-15

063-281-2259

     

2. 전주시립쪽구름도서관

별꽃과 봄꽃 사이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글꽃에 빠져도 좋을 곳. 올봄에는 리모델링으로 잠시 비어있는 시간이 아쉽지만, 새롭게 만날 설렘으로 기대에 차 있다.

휴관일 : 2023.6.1.~2024.8월 중(예정)

이용 시간 : 리모델링을 위한 휴관으로 미정

주소 : 덕진구 여암29

문의 : 063-281-6530

     

3. 동산역

박스형 역사 건물과 줄지어 늘어선 화물열차에 눈길이 머무는 곳. 전주와 삼례를 잇는 시간에 색색의 컨테이너 가득 전주의 봄을 실어 나른다.

주소 : 덕진구 고랑동 716-1

문의 : 063-249-7041

     

     

4. 삼례문화예술촌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 카페, 체험, 전시, 공연 예술 등 복합문화공간을 활용하는 시간. 삼례를 쏙쏙 다 들여다볼 수 있다.

휴일: 매주 월요일

이용 시간 : 10:00~18:00

주소 :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1-13

문의 : 063-290-3862

     

5. 쉬어가삼ː(삼례역)

쉬어가삼글귀에 저절로 발끝이 멈춰지는 곳. 잠시 안락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감고 지나온 봄을 떠올리며 숨고르기 하는 시간. 벽면에 빼곡히 쌓인 책에서 마음에 쏙 드는 글꽃을 찾아볼 수 있다.  

휴일 : 매주 월요일

이용 시간 : 10:00~18:00

주소 :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5-13 쉬어가삼[:]

문의 : 063-290-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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