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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리 Apr 24. 2024

버팀목

 버팀목 

         

 길이 안개에 갇혀있다. 안개 속에서 여자가 윤슬처럼 풀려나온다.

 새벽 6시. 살기 위해 어김없이 산책로로 나오는 여자. 한참을 앞만 보고 걷던 여자의 시선이 길옆 담장에 머문다. 무성한 풀잎 사이에 의지할 곳을 찾아 타고 오르는 보랏빛 꽃잎. 여자가 가만히 나팔꽃을 본다. 어린 시절 친정아버지가 돌담 장독대 옆으로 심어놓았던 나팔꽃. 노래 가사처럼 새끼줄을 따라 돌담을 타고 오르던 그 꽃. 이슬방울 머금은 나팔꽃잎이 나침반 바늘처럼 흔들린다. 초점을 잡지 못하는 꽃잎에서 방향을 잃고 헤맸던 여자의 삶을 본다.

 계획만 무성했던 시절이었다. 집안일과 바깥일에 세 아이를 키우며 막막한 일상을 살아냈던 30대 후반. 급하게 꽃 피우고 싶었던 여자의 운명이 시련 앞에 덜컥 놓였다.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암입니다.”

 유방암 3기. 의사는 이미 임파선 전이까지 되었다고 선고했다. 그 순간 여자는 제일 먼저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가 셋이다. 이제 막 열 살을 넘긴 큰아이, 매일 울면서 유치원에 가는 둘째, 그 밑으로 젖을 뗀 막내까지. 살고 싶었다. 아니 아이들을 위해 살아남아야 했다. 유방 종양 절제 수술과 여덟 번의 항암 치료. 서른여섯 번의 방사선 치료와 화학 치료까지. 항암 중 급성폐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여자는 1년 이상의 긴 과정을 거치면서 마흔을 맞았다. 

    

 나팔꽃잎이 다른 풀들을 돌돌 말아가며 타고 오른다. 여자 또한 작은 실타래라도 잡고 싶었다. 누군가 이 치료 방법으로 효과를 봤다 하면 쫓아다니며 따라 했다. 암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찾아보고 병의 원인을 찾고자 동동거렸다. 병을 떼어내고자 한방 치료, 양방 치료, 민간요법까지 닥치는 대로 따라 했다. ‘악’자가 들어가는 산을 더 악바리가 되어 오르고, 요가에 명상에 몸이 반응하는 것들을 담기 위해 수행의 시간을 가지며 오직 살기 위해 싸웠다.

 그런 여자를 힘들게 한 건 지나온 삶의 노력을 ‘암’이라는 이름으로 결정짓는 말들이었다.

 ‘네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 그래.’ 

 ‘작은 일도 툴툴 털어버리지 못하는 예민함 때문이야. 남편이나 애들을 편안하게 봐.’ 

 ‘좀 이기적으로 살지 그랬어?’ 

 ‘그러다 또 재발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동안 살아온 삶이 모두 잘 못 되었다는 주변의 말에 여자는 상처 입고 자책했다. 무거운 안개에 갇힌 듯 답답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의 원인을 찾으라고 다그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가만히 여자에게 어깨를 내어준 사람이 있다.     

 “네 몸에 암세포가 생긴 건 네 건 잘못이 아니야. 너 열심히 잘 살아왔잖아. 이제 너를 좀 아끼고 네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시간을 주는 거야. 힘이 들면 힘이 든다고 말해. 때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언젠가 너도 다른 이이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잖아. 기다리면 다 지나간다.” 

 나팔꽃을 심어 주었던 여자의 아버지. 여자에게 평생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아버지. 여자는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안개를 뚫고 나왔다. 진정한 위로가 되었다.  


 나팔꽃 줄기에 무수히 많은 잎과 꽃망울이 달여 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피어오르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이름 모를 풀꽃들은 그 여린 나팔꽃 줄기를 지지대 삼아 피어오르고 있다. 꽃잎은 나비와 벌들의 쉼터가 된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던 아버지. 주변에 남편과 아이들과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일깨워주던 아버지. 널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다른 사람의 어깨에 충분히 기대라고 말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젠 여자 곁에 없다. 아버지의 병명은 구강암이었다. 여자가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만이었다. 먹는 것과 말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아버지는 5남매인 자식 중에 유독 여자에게 자주 곁을 내어주셨다. 버팀목은 아니어도 실타래라도 되고 싶었던 여자의 마음을 다 읽고 계시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평생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아버지는 이듬해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나팔꽃이 유연하게 굴곡을 만들며 오르는 모습을 본다. 세상이 일상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는 요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안정적으로 자기 길을 걷는 사람들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자는 안다. 인생에 곧은길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뭔가에 부딪히면 한 번 쉬어가면 된다는 것을. 나팔꽃처럼 유연하게 돌아가면 된다고. 힘들면 서로 어깨를 내어주면 된다고. 기대며 의지하고 살면  된다고....

이제 여자도 어깨를 내어줄 준비가 되었다.  


 안개가 걷힌다. 무채색이었던 나팔꽃이 어둠을 이겨내고 영롱한 색을 띤다. 진정한 자기 색깔을 가지는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 앞에서는 잠시 꽃잎을 말아둔다. 내일의 희망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아침 이슬 머금은 만개한 나팔꽃이 힘차다. 꽃잎 속에서 반가운 팡파르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 여자가 가만히 꽃잎을 본다. 가장 가까이에서 여자에게 희망을 주는 가족이 보인다. 오늘은 아이들과 나팔꽃을 심으련다. 든든한 버팀목도 세워주련다. 여자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집으로 향하는 여자.

  내, 발걸음이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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