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떠나는 기술

미움 없이 사라지는 법

by 서연담




“이 글은 제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준 내면의 이야기입니다.
읽는 동안 조용히 당신의 마음도 들여다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다.
싸우지도 않고,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날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말을 줄이고, 마음을 접고, 인연을 정리한다.

그걸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 번도 나를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누군가가 나를 불렀을 때, 거절하는 법을 몰랐고
도움을 청하면 싫어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감정이 불안정한 어른들 사이에서 늘 눈치를 보고, 기분을 살피며 살았다.
내가 잘못해서 어른이 화내는 줄 알았고,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곁에 뒀다.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도움만 받고 사라지는 사람들.



-불쌍해서 시작된 의무감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불쌍해서 도왔다.
그다음엔 의무감으로 남았고, 마지막엔 내 감정이 사라졌다.

어느 날,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에게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질문은 나를 벗기듯 날카로웠고, 그 순간 모든 게 깨졌다.



-감정이 사라진 순간

나는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관계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말해야 상처받지 않을지, 어떻게 말해야 예의일지,
끝없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결국 조용히 사라진다.
문자를 줄이고, 답장을 늦추고, 만남을 미루고,
그러다 마침내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런 내 방식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나를 지키는 기술’이었다.
감정을 쏟아붓는 사람 곁에서, 나는 늘 마르고 있었으니까.



-떠남은 기술이다


사람을 떠나는 기술은 잔인함이 아니라 예의다.
그 사람이 뱉는 말들을 끝없이 받아내며 내가 무너지는 것보다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이 서로에게 남는 게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잘 못 떠난다.
익숙했던 말투가, 함께 갔던 장소가, 문득 생각나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리다.
하지만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의무감’도 아니다.
그건, 그저 익숙함이 남긴 환상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환상에 붙잡히지 않는다.
그 환상이, 내가 사라져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건 회피가 아니라 생존이고, 침묵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