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스스로를 '음침하다'라고 느꼈을까?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의 내면 정리법

by 서연담




-밝은 척, 괜찮은 척, 나만 아는 어두움


나는 나를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본다는 걸 알면서도,

내 안 어딘가는 늘 어둡고, 침잠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그걸 감췄다.

아니, 감췄다기보다는 덮었다.

화려하게 옷을 입고, 말투를 단정하게 만들고,

유쾌한 사람들 사이에서 적절히 웃을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켰다.


하지만 나만 안다.

그게 내가 아니라는 걸.



-눈치 빠른 사람의 그림자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

상대의 말과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감정 인식이 예민하며, 스스로를 조율할 줄 아는 사람들.

우리는 보통 “감정적으로 성숙하다”는 말을 듣지만,

사실 그건 지나치게 자주 자기를 들여다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왜 이 말을 했는지,


내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 감정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나’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 무거워진다.


그 무게가 오래되면,

밝은 말투와는 다르게 점점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음침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건 ‘숨긴 것’이 아니라 ‘정제한 것’


최근에야 알게 됐다.

이건 위선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그저 나를 조율한 것이었다.


감정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쓰고,

정리해서 글로 옮기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조심했던 그 모든 시간이

사실은 나 자신을 다루기 위한 고기능 정서 조절이었던 것이다.


어릴 땐,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혼자여야 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고,

말해도 전달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침묵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걸 글로 쓸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달할 수도 있다.



-내가 끌리는 사람은 결국, 내가 되고 싶은 나


나는 누군가를 보고 끌렸을 때,

그 사람이 가진 감정선이나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투사’였다.


내가 원했던 내 모습을,

타인의 행동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던 거다.

그들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잠시 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였고, 감정이 격해졌고, 때로는 실망도 했다.


그 실망은 사실 타인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스스로를 감추고 있던 나에 대한 자각이었다.



-나는 나와 함께 살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오랫동안 느껴온 이 침잠하는 기분은

나를 다룰 줄 알면서도, 정작 나와 제대로 함께 있어주지 못한 시간들에서

시작된 것 같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단순하다.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랑 같이 앉아 있는 법을 익히는 것.


생각이 많고, 감정이 깊고, 리듬이 빠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보다 느리고 둔감한 세상에 조율하느라 피곤하다.

그 와중에 자기를 잊는다.


이제는

나에게 속도를 맞추고,

나에게 말을 걸고,

내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그 어두움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단지, 너무 오랫동안 혼자 견딘 정상적인 감정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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