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 뻔한 내가 선택한 방향 — 도덕성과 자기애의 연결에 대하여
1. 상처받은 사람은 누구보다 날카롭다.
상처는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작은 눈빛에도,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반응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항상 방어적인 태세를 갖춘다.
이건 나도 그랬다.
나도 어떤 시절엔,
내 감정 하나 제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기분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의심했고, 멀리했고,
가끔은 조롱하고 싶은 충동까지 올라오곤 했다.
그건 악의가 아니라, 무너지는 나를 지탱하기 위한
아주 본능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2. 어느 시점에서, 나는 멈췄다.
나는 그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 훨씬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내 아래에 둔다고 느끼면,
그 순간만큼은 내 비참함이 덜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 길 끝에 나 자신이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비록 힘들더라도,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섰다.
타인을 조롱하기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3. 도덕성은 감정보다 깊은 차원의 선택이다.
도덕성은 어떤 도리를 외워서 실천하는 게 아니다.
그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기억이고,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의 결정이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은 채,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며 생존을 택한다.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누구나 약해질 수 있고,
누구나 어두운 방식으로 통제감을 느끼려 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내 감정이 나를 쓰러뜨리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타인을 증오하지 않겠다고,
나를 위해 선택했다.
4. 결국 도덕성은, 자기애의 한 형태다.
예전엔 몰랐다.
왜 어떤 사람은 상처받고도 더 단단해지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무기 삼아 타인을 찌르며 살아가는지.
지금은 안다.
그 차이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
즉 자기애의 유무에서 비롯된다는 걸.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선택하는 일이고,
그건 타인을 위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더 이상 함부로 쓰지 않기 위한 결심이다.
상처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상처 이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다.
나는 한때 무너질 뻔했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도
내가 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심이 나를 지탱했고,
지금까지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도덕성이라는 이름의 조용한 자기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