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의 생존전략은 왜 실패했는가?

나는 이제 8% 일 때 말한다.

by 서연담



때로 사람을 몹시 미워한다.

어릴 때 나는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아니, 길들여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다.

내 마음을 숨기고 참아내면 칭찬을 받거나,

적어도 평화는 유지됐다.


하지만 내 마음을 말하거나 “싫다”라고 거절하면,

벌이 주어졌다.

작게는 냉정한 침묵부터

크게는 거친 폭언과 비난까지.



-살기 위해 익힌 법칙


아이는 힘이 없다.

살아남으려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감정을 삼키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법을 익혀갔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을 가지고 이곳에 존재하는 사람인데,

내 마음도 내 것인데,

왜 나는 늘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는가?

삶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들은 나를,

상대방을 몹시 미워하게 만들었다.



-나도 사람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은 대체로 달랐다.

나는 겉으로는 상대방에게 맞췄지만

속으로는 점점 멀어졌다.


내가 미워하던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지나칠 정도로 상대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일은 아예 원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상대가 불편해할 것 같으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내 욕망은 스스로 해결했으며

능력이 안 되는 건 그냥 포기했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냈다.

인간은 어떻게든 결국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문제는, 내가 커버린 뒤였다


어른이 된 뒤

이 생존 방식이 되레 나를 더 고립시켰다.


나는 여전히 거절을 잘하지 못했고

거절을 하더라도 돌려 말하는 습관이 남아 있었다.


겉으로 보면 나는 정돈되고 매끈한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마치 입 안의 혀처럼 부드럽고 무해한 사람.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들은 내게 모여들었다.

내 옆에서는 거절당할 위험도, 경계를 침범당할 위험도 없어 보였을 테니까.


그들은 점점 나를

자기감정의 연장선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발


어느 순간,

그들의 요구는 내가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는 예전처럼 돌려서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 팔을 내가 떼어 간 것처럼 분노하고

감정을 폭발시켰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그들을 떠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그건 그냥,

살아남기 위해 익힌 습관이었다.


다른 방법은 허용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게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이제는 8% 일 때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방식으로는

나도, 타인도, 우리 관계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다르게 해보려 한다.


이제는 불편함이 80%가 될 때까지 참지 않고,

8% 일 때 표현하기로 했다.


“나는 그 이야기 불편해.”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는 못해줘.”


이건 거절이 아니라 경계 표시다.

이건 단절이 아니라 유지다.

그리고 이건

나도 살고, 상대도 살 수 있는 새로운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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