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눌러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구조에 대하여
1. 나는 원래 감각적인 사람이다
나는 늘 세상을 먼저 ‘느꼈다’.
눈빛의 결, 말투의 떨림, 공간의 공기.
아주 미세한 분위기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감각은 축복이기보다 부담이었다.
세상은 너무 날카로웠고, 사람들의 기류는 자주 위협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감각을 믿지 않기로 했다.
2. 대신, 생각으로 버티는 법을 배웠다.
느낌은 흔들렸고, 감정은 불안정했다.
나는 머리를 썼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게 진짜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걸까.
느낌보다 분석이 먼저였고, 감정보다 해석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나는 감각을 눌러가며 살아남았다.
3. 그 방식은 나를 지켜줬지만, 결국 소진시켰다.
몸은 위험을 경고했지만,
머리는 “아니야, 괜찮을 거야”라고 자꾸 눌렀다.
나는 늘 진실을 파악해야 했고,
사람의 말속 의도를 끝까지 따라가야만 안심이 됐다.
그 결과, 누구보다 빨리 눈치챘지만, 누구보다 늦게 도망쳤다.
4. 원래의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더 빨리 피했을 것이다.
불편함을 인정하고, 이유를 찾지 않고도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났을 것이다.
분석 없이도 반응할 수 있었다면,
덜 지치고, 덜 아팠을지 모른다.
5. 감각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나는 감각 기반의 인간이지만,
오랫동안 분석이라는 갑옷을 입고 살아왔다.
그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동시에 나를 피로하게 만든 구조였다.
이제는 그 갑옷을 천천히 벗고 있다.
느낌을 믿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며,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다.
그건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오랜 시간 억눌렀던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