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쓰는 사람 1

by 해오기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였다. 내가 여기에 왜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을 듣지 않고 외부로 나간다는 것에 마냥 들떠 있다. 등교하자마자 다시 가방을 메고 공원으로 향한다. 도착한 공원에는 각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공원은 지역 학생들의 백일장 현장이었다. 간단하게 개회식을 마친 후 주제가 공개됐다. 현충일을 앞둔 이날의 주제는 ‘통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분리되고, 가족이 흩어져 살고 있으니 순수하게 통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에 나와야 하는 글은 단 한 글자도 나오질 않고 주야장천 한숨만 나왔다. 애꿎은 잔디만 뽑아 댔다. 수업을 듣지 않고 야외로 나오게 되어 들떠 있던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쩌다 이 따뜻한 봄날 공원에 앉아 끙끙 앓고 있는 건지. 한 줄도 못 쓰고 앉아 있었던 두 시간은 열일곱 인생에서 겪는 최대의 고통이자 시련이었다.


‘우등생은 못 되더라도 모범생은 되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나에게 모범생의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숙제였다. 국어 시간에 숙제로 제출한 산문 한편으로 인해 학년을 대표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데, 다음 숙제를 제출하지 못 한 학생이 되고 말았다.


함께 대회에 나갔던 J선배는 주제를 듣자마자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부러운 눈으로 선배의 모습을 쳐다보다, 흘러가는 구름 무리에 눈길을 쏟다 보니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결국 작품은 제출하지 못하고 백일장은 끝이 났다. 막힘없이 글을 쓰던 선배는 백일장에서 1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글에 대한 로망을 품은 게 이때부터였을까. 글과 관련된 업종에 구직활동을 했고, 결국 지역신문사 취재기자가 됐다. 하지만, 백일장에서처럼 알량한 글쓰기 실력은 금방 바닥을 보였고, 마감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오타가 나거나 구독자의 항의 전화라도 받는 날이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한 번의 이직을 했고, 결혼을 핑계로 5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어린 시절 학업으로 인해 마음껏 해보지 못한 분야에 눈을 돌렸다. 다양한 공예 분야에 대해 배우다 접하게 된 캘리그라피. 이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트레스받지 않고 꾸준하게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쓰는 기자에서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피 작가가 된 것이다.

특출 난 재능도 없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로망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시민기자나 서포터스 활동을 하면서 뭐라도 쓰고 있었다. 진짜 글을 써야 할 때, 쉽게 물꼬를 틀 수 있게 만든 안전장치인 셈이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에서 배지영 작가는 부사를 멀리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몹시’라는 부사를 즐겨 쓴다고 한다. 나 또한 즐겨 쓰는 부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차피’. 사전적으로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이다. 난 무엇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 또는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면피용으로 많이 쓰고 있는 편이다.


캘리그라피 작가 활동을 하면서, 작품을 출품하는 일이 많다. 근데, 작품 공모 공고가 뜨자마자 바로 작업 후 작품을 보내는 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감보다 훨씬 앞서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차피 마감은 정해져 있고, 써야 되는 거면 빨리 쓰고 마는 게 좋잖아. 질질 끈다고 해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진 않아.”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해서 쓰면 좀 더 나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루다가 다른 일정에 밀리고, 아프기라도 하면 시도조차 못 할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해 놓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 크다. 어차피 작품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사 어차피. 로망과 현실은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이 쓰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쓰는 사람인 것이다. 한 글자 차이로 뜻은 달라지지만, 글을 쓰던 글씨를 쓰던 어차피 쓰는 사람이니 일단은 이것으로 됐다. 쓰는 사람이라는 연결고리 하나쯤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