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쓰기 교육 첫날.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강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이름 앞에 붙여 소개해 주면 외우기가 쉽다고 했다. 밀크티, 꿀떡, 봉골레파스타, 사과 등 평소에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씩 골라 소개를 시작했다.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이다. 냉장고에는 우리 집 어린이가 먹을 수 있는 짜장 떡볶이와 나를 위한 보통 떡볶이 밀키트가 채워져 있다. 허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삼겹살, 수육, 보쌈, 제육볶음 그리고 말하면 입 아픈 소고기까지. 바로 육식이 나의 사랑이다. 메뉴 하나를 고르기 어려워 나는 육식 파라 소개했다.
이처럼 살찌는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이어트는 도전하기조차 힘든 영역이다. 다이어트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양약과 한약의 힘을 빌려봤다. 조금의 효과가 있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손 떨림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반갑지 않은 요요는 너무 쉽게 찾아왔다. 두 번의 실패 후, 스트레스받으며 먹는 것 조절하다 요요를 맞이하느니 맛있는 음식 실컷 먹으며 사는 행복한 돼지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해 주는 허를 찌르는 말이 있다. 무엇을 물처럼 먹었는가? 가히 뜨끔하다.
다이어트를 시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쭉쭉 빠졌던 날도 있었다. 바로 아이를 가졌을 때다. 음식은 물론이고 물이라도 삼키면 그대로 구토를 해대는 날이 6개월간 이어졌다. 마무리 지어야 하는 강의도 몇 회 더 남아 있어 기운을 차리고자 수액을 맞았다. 숯불고기 냄새를 술술 풍기며 남편이 병원으로 마중 나왔다. 회식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자칭 육식파이지만, 이때만큼은 육식이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게워내더라도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아파트 앞 슈퍼에 들렀다. 인스턴트 죽과 천하장사 소시지 하나를 고르고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응, 난 없어.”
전후 사정을 모르던 슈퍼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입이 짧으니 이렇게 말랐지.”
그렇다. 몇 달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황임에도 남편과 함께 나가면 나 혼자 맛있는 거 다 먹는 줄 안다. ‘이왕 오해받는 거 제대로 먹어나 보고 오해받아야지’라며 빨리 입덧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행복한 돼지가 되어야 하니까.
지난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저장만 되어 있었지 따로 통화는 해 본 적이 없는 모 신문사 편집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민기자 일을 몇 년 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섞어 본 적은 없어서 간단하게 약속 시간만 잡고 짧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로 하지 않고 따로 만나 해야 될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함을 간직한 채 긴 하루를 보냈다.
미팅의 목적은 ‘함께 일해 보자’였다. 기관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를 총괄해서 맡아보라고 했다. 소식지는 두 달에 한번 발행되고, 전임자의 경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소식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였지만, 다른 직종에 비해 시간이 자유로운 나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해 보겠다며 일어났다.
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곳에 정착한 지 13년 차.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와서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며 남편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갑작스러운 제안은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우선, 시민기자가 아니라 전업기자로의 내 글에 대한 평가가 걱정이었다. 또 겸업을 하다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우선시할 수 없음이 우려되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걱정이었고, 신체적인 에너지가 부족했다. 결국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친구가 있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H는 “유선으로 일해도 되면 나한테 넘겨주면 안 되나? 니는 그 좋은 일을 안 한다 했노”라며 혀끝을 차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진에 오면서 처음 마음먹었던 다짐을 상기시켜 보았다.
‘스트레스 안 받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마음을 다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제의가 왔다. 캘리그라피 강사활동 계속해서 할 수 있게 인정해 줄 테니, 인턴기자로 함께 해 보자고 했다. 사전에 고민이 한차례 있었던 터라 단칼에 거절의사를 밝혔다. 지레 겁먹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하고 가끔 상상해 보곤 한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제의를 받아들였더라면 현재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테니.
행복한 돼지로 살기로 한 만큼 딱히 먹는 것을 가리진 않는다. 하지만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는 필히 가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굳게 먹고 섣부른 겁은 먹지 않기. 전업 기자의 일은 내 결정에 의해 포기했지만 덕분에 에세이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에세이를 쓰기를 다짐한 후로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은 굳게 먹고, 쫄보의 마음은 저만치 던져두었다. 글을 쓰다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섣부르게 겁은 꺼내 먹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