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남편은 초창기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을 모으고 있다. 중고 거래 앱 당근에 올라온 목록들을 보며 직접 구매자를 만나 거래를 하기도 하고, 택배로 받기도 한다. 특별히 카메라나 휴대폰에 전문지식이 있어서는 아니다. 본인의 능력으로 처음 구매했던 카메라와 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젊음이 느껴진단다. 모토로라 폴더폰을 열어 보이며 우리 집 어린이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기도 한다.
전여사는 모든 것을 아껴 쓰는 편이다. 나물을 다듬을 때 깨진 쟁반을 쓰고 있길래 “엄마, 멀쩡한 쟁반도 많은데, 이건 좀 내 삐리라”라고 하면 “멀쩡한 걸 와 버리노”라며 버럭 화를 내곤 했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 엄마 눈을 피해 몰래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몇 달 뒤 다시 가 본 친정 집, 구석구석 손때가 묻고 반쯤은 금이 간 황토색 쟁반은 또다시 엄마와 함께였다. 쓰레기통에 버려봤자 결국 엄마 소유물의 쓰레기통에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몇 년 전 레트로 열풍이 불었을 때, 30~40년 전 쓰던 옛날 소품이 비싸게 거래되었다. 방송이나 SNS에서 너도나도 레트로를 외쳐댔다.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친정집에 가면 저런 거 많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쓰지도 않는 것이지만 전여사는 버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번 뒤져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집 창고는 경운기나 트랙터가 들어가고 나가기 편하게 문 없이 지붕만 올려 사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움직여 본 적이 없는 경운기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20여 년 전, 집 고칠 때 내어 놓은 찬장이 예전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물론 찬장 안에는 갖가지 식기류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러 가지 물건들 중에서 가장 멀쩡하게 생긴 소주잔 3개를 골라 집으로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금복주 완전 자동 기계화 기념’ 소주잔이다. 깨끗이 닦아 두고는 검색에 돌입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소주잔은 2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팔아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겠지만 술손님 올 때 내어놓자고 결론 내렸다. 오래된 소주잔으로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글씨를 쓰다 보면 많은 문장들과 마주한다. 선조들의 글을 찾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감성글귀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래서 난 캘리그래퍼를 ‘문장 수집가’라고 말한다. 따뜻한 봄날에는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시작을 알리는 글귀를 찾는다. 활동이 많은 여름에는 생기 넘치는 문장을 담은 글씨를 선보인다. 캘리그래퍼들은 좋은 시나 노래가사에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뽑아낸다. 심지어는 뉴스 인터뷰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글귀를 찾아낸다. 글씨를 쓸 때, 써야 될 글과 쓰지 말아야 될 글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최대한 다양하게 찾아보아야 한다.
강의를 할 때면 학습자들에게 원하는 글귀를 하나씩 적어 주곤 한다. 집에 가서 따로 연습하라고 써 주는 체본인 것이다. 별도의 교재가 있고 샘플을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내가 수집한 문장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본인이 수집한 문장을 받아가는 것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은 편이다. 대학생 M 씨는 수업에 올 때마다 출석체크를 해야 한다며 체본집을 꺼낸다. 미리 수집한 문장과 함께 말이다. N 씨는 강의를 듣는다기보다 체본 한 장을 받기 위해 수업에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세 학기의 강좌를 연속해서 들으며 한 권의 체본집을 완성했다. 자기 전에 읽으면 심신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수강생이 수집한 문장을 수업에 이용하기도 한다. 가장 큰 반응을 얻은 문장은 딱 네 글자인 ‘그랬구나!’이다. 이 한마디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참 따뜻한 공감의 한마디다.
캘리그라피 작품에서는 멋들어지게 쓴 글씨도 중요하지만,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기에는 잘 수집한 문장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따뜻한 한 줄의 문장은 생이라는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방랑자의 마음을 위로한다. 문장 하나로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고, 힘을 불어넣기도 한다. 이번엔 어떤 문장으로 처진 어깨를 토닥여 볼까. 나는 오늘도 온라인 속을 떠도는 문장을 채집하고, 도서관 대출 기록을 채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