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나름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하나가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H는 초, 중, 고등학교 무려 12년간 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였다. 그녀는 활발한 성격 덕에 졸업 후에도 고향이나 그 인근에 살고 있는 친구 몇몇이 잘 어울려 지낸다고 했다. 큰 학교가 아니었기에 모두 다 아는 얼굴이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사회인으로 발을 내디딘 지 채 일 년도 안된 그 시절. 그들과 지낼 때면 항상 난 운전기사가 됐다. 당시 차가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 무리 중 한 명이 결혼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결혼식과 함께 피로연까지 함께 하게 됐다. 낯선 피로연 분위기에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결혼 후 그 친구는 모임에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어정쩡한 사이인데 피로연까지 가서 들러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밥벌이를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픈 곳이 많아졌다.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두통약과 소화제는 늘 들고 다녀야 하는 상비약이 됐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땅 아래에서 누가 팔다리를 잡아당기는 듯했다. 현실에서의 몸은 손가락 하나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밥벌이가 이렇게 힘든 것인데 부모님은 연골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6남매를 키우셨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픈 밤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은 없는데 몸은 항상 천근만근 무거웠다.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에서 여러 검사를 받아 봤지만 ‘정상’이었다.
‘나는 진짜 아픈데, 정상이라니...’
억울함을 삭이다 접하게 된 신문기사 하나. 류머티즘 내과에서는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섬유근육통은 만성적으로 전신의 근골격계 통증, 뻣뻣함, 감각 이상, 수면 장애, 피로감을 일으키고, 신체 곳곳에 압통점(누르면 아픈 부분)이 나타나는 통증 증후군이다. 겉으로는 드러나는 게 없어서 가족도 의심하게 만드는 꾀병과도 같은 병이다.
여동생은 장난치기 좋아하는 밝은 아이이다. 근데 그 장난이 몸싸움과 같다. 팔이나 옆구리를 툭툭 치기도 하고, 마사지를 해 준다며 어깨를 주무른다. 공짜로 해 준다고 해도 안 받는 마사지를 해 준다니. 기겁하고 피한다. 그러면 동생은 “이게 왜 아픈데”라며 더 나댄다.
하루는 몸에 기운이 다 빠져 엎드려 있었다. 동생이 시원하게 허리를 밟아준다며 접근했다. 싫다고 말해도 동생한테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결국 밟힘을 당했다. 아프기도 하고, 내 의견을 무시한 게 억울해서 울음이 나왔다. 다 큰 어른이 허리 마사지가 아프다고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 후로 동생은 사랑 가득한 장난을 접었다.
섬유근육통의 증상은 친구들을 만날 때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분명 집에서 나설 때는 멀쩡했는데, 친구들을 만나면 두통이 찾아왔다. 두통이 날 때면 어김없이 구토도 동반됐다. 주중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나타난 건지, 친구들을 만나는 게 스트레스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친구들과의 모임 약속은 어기지 않았다. 근데 그게 독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무리 중 또 한 명의 친구가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그래, 친하진 않지만, 동창이니까 결혼식은 가야겠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결혼 전 남편 될 사람을 소개해 준단다. ‘남자친구까지 소개받아서 뭐 해’라는 생각에 나가지 않겠다고 전했다. 모든 연락은 H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H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날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누워 있던 날이었다.
“왜 안 나온다는 거야?”
“걔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남자친구까지 소개받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우리 다 친구잖아, 그냥 나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다음에 얘기하면 안 될까?”
“친구들 만나는 게 싫은 거야? 넌 우리 만날 때마다 지금처럼 아프다고 하더라.”
반박할 틈도 없이 통화는 이어졌고, 결국 나가지 않겠다는 의사만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고 자기 할 얘기만 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전혀 없었다. 말로는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이대로 뒀다간 더 큰 오해만 살 것 같아 편지를 쓰기로 했다. 남자친구 소개 자리에 나가지 않는 이유와 매번 아팠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결론을 어떻게 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지를 전달한 이후로 일곱 명의 친구 중 연락이 온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무 단호하게 썼나 보다. 그들이 생각한 나의 존재 가치는 데리고 다니기에 부끄럽지 않고 이용하기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초. 중. 고 동창을 한꺼번에 잃은 이 글은 내가 써 봤던 편지 중 가장 고민하고 정성 들여 썼던 편지가 아니었을까. 연애편지보다 더 말이다. 요점만 정리된 한 페이지. 편지 한 장으로 친구를 잃었다. 아니 버렸다. 깔끔하게 인간관계를 정리해 버렸다.
보통 글은 말보다 소통의 힘이 부족하기에 오해를 낳기도 한다. 직접 대면해서 오감을 동원한 대화를 했다면, 아직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뱉으면 수정이 불가능한 말보다 여러 번을 고쳐 요점이 잘 정리된 글은 말보다 의사 전달이 더 잘될 때가 있다. 효과적인 절교의 수단이 되었다. 마음속으론 이미 절교를 생각하고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필력이 하필이면 이럴 때 발휘되다니. 참으로 애통하다. 아니,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