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빛나는 인생

by 해오기

“전 딸 부잣집 넷째 딸 이에요. 부모님은 돌림자를 이용해 이름을 지으셨어요. 큰언니는 일례, 둘째는 이례. 셋째는 삼례예요. 넷째로 태어난 제 이름은 무엇일까요?”


이름과 관련된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갑자기 나온 퀴즈에 딸 부잣집 넷째 딸의 이름을 ‘사례’라 유추해 본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사연이 선정되어 방송에 나올리는 없다. 역시나 예상치 못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삼례 뒤에 딸이 또 나와서 제 이름은 ‘또삼례’가 되었어요.”


지인 중에 운세를 바꿔야 한다며 10년마다 개명을 하는 이가 있다. 요즘은 그만큼 개명이 쉽다는 얘기다. 또삼례 씨는 개명을 했을까. 궁금해지는 날이다.


나 역시 딸 부잣집 넷째 딸이다. 다행히 내 이름 앞에는 ‘또’ 자가 붙지는 않았다. 바로 위 언니와는 5살 차이가 난다. 줄줄이 딸 셋을 낳다 보니 자녀계획을 포기했다가 다시 시도하신 것이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을 때 태어난 종갓집 넷째 딸. 다행히 개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옥’ 자가 이름에 들어가 있어 촌스럽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옥’이라는 글자 때문에 학창 시절 별명은 ‘옥반장’, ‘옥이모’였다. 촌스럽지만 부모님의 고민과 사랑이 담긴 이름임을 알기에 공방 상호로 쓸 만큼 아낀다.


남아선호 사상이 만연하던 시대, 원치 않는 딸이 태어나면 이름을 막 짓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의 이름은 ‘쌍년’이었다. ‘설마, 진짜야?’를 연발하며 출석부를 들쳐 봤다. 오타가 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 없었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진짜였다. 워낙 조용한 성격 탓에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상연이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불렀다.


캘리그라피 수업 중, 어느 정도 단어 쓰기를 익히고 난 다음에는 각자의 이름을 디자인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본인의 이름을 쓰는 것이니 더욱 집중해서 임한다. 이름을 디자인할 때 본인의 이름에 대해 백 퍼센트 만족하는 이는 드물다. 촌스럽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글꼴을 쓸 수 있게 개명해야겠다며 공수표를 날리기도 한다. 이름에 획이 많으면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하다. 현실에선 은행을 친구 삼아 살지만, 이름에 획이 많아 획부자가 됐다며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뭐라도 부자면 좋다.

캘리그라피 행사를 나갈 때도 가장 인기 있는 건, 이름을 예쁘게 써 줄 때다. 평생 함께 하는 이름이, 한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이니 정성을 들여 쓰곤 한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름을 받아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이름을 쓰는 건 아니지만 슈퍼스타가 되어서 꼭 사인회를 하는 기분이다.


이름은 나를 상징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나의 전부는 아니다. 꼭 마음에 드는 이름을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이름이 수시로 바뀌니 그때마다 개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이 좋다고 해서 꼭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우리는 이름과 상관없이 모두 각자의 일상 속에서 쓰일 곳에 잘 쓰이고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해옥이는 적당한 열정과 큰 만족감으로 히죽히죽 살아간다. 은회는 새로운 곳을 여행하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혜현이는 새로운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베풀며 살아간다. 원희, 지혜, 미희, 영미, 윤희, 현주, 문정, 현정, 숙현, 진영, 규동이도 마찬가지다. 폭죽처럼 크고 밝게 터지지 않을 뿐 일상 속에서 충분히 빛나고 있다. 이름이 좀 촌스러우면 어떠랴. 내가 만족한 인생이면 그만이다. 잔잔한 물결 속에서도 윤슬이 빛나듯 보통의 사람도 모두 빛나는 인생인 것을.


덧, 모두가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중학교 친구 쌍년이 에게는 차마 원래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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