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삽교천에서 공방 수강생들과 야외수업을 하고, 또 하루는 도서관 수업 쫑파티 겸 수덕사 나들이를 다녀왔다. 요즘은 강의 두 달 전부터 스케줄을 조정하며 수업 의뢰하는 이들도 많다. 일하는 게 재미있고, 나를 찾아 주는 이들이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재미나게 지내고 있을 즈음,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경적 소리가 무기인 양 달려드는 덤프트럭이 즐비한 회전교차로에서, 옆에서 달리는 차를 보지 못하고 들이받았다. 승용차와 부딪혔으니 망정이지 화물차랑 사고가 났다면 아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뻔했다. 상대방도 나도, 다친 곳이 없어서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꽤나 충격이 컸었나 보다. 회전교차로를 돌아야 나갈 수 있는데, 다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하고 강의 장소로 향했다. 한 시간이나 늦긴 했지만, 수강생들은 나의 안위를 걱정하며 자율 수업을 하고 있었다. 강의 장소가 도서관이니만큼 평소 일상을 잊지 않았다. 강의 후 지난주에 대출했던 책을 반납하고, 주말에 읽을 에세이를 대출해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이를 등교시킨 후 나만의 독서 지정석에 앉아 아침 독서를 시작했다. 별다른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눈물이 맺혀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을 출판하고 친인척과 고향 어르신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이야기와 엄마의 농사일을 도와주는 허리 굽은 이웃 할머니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제 일어난 교통사고 여파가 이렇게 다가오나 싶을 즈음, 또 다른 슬픈 생각이 몰려왔다.
결혼 후 한 아파트에서 십 년을 넘게 살았다. 모든 아파트 살이가 그렇겠지만, 긴 시간 생활하면서도 이웃집에 대한 관심은 늘 미약하다. 오지랖이 넓지 않음을 탓해야 하나. 내가 살던 곳 옆집에는 중년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자녀가 없나? 왜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뿐이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궁금증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아파트 산책길에 만난 아주머니는 생기 없는 얼굴로 스르륵 다가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우리 집 어린이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다.
“많이 컸다”
이야기를 이어갈 만큼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이였다. 근데 그 아주머니가 이 우울의 끝에 갑자기 생각난 것은 지금과 같은 계절, 여름이 시작될 즈음 그분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 늦잠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TV를 시청하던 때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갔다. 연락 없이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전도사들과 기름때가 잘 빠지는 마법 세제를 파는 이들뿐이라 항상 집에 없는 척을 하곤 했지만, 이날은 꼭 나가 봐야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문을 열고 마주한 이들은 다름 아닌 경찰이었다.
“새벽에 이상한 소리 못 들었어요?”
경찰의 방문은 공용 계단에서 옆집 아주머니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주변 탐문의 첫 시작이 옆집인 우리였던 게다. 질병이나 노환으로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이들 외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하긴 처음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말이다. 주방에서는 공용 계단이 살짝 보인다. 호기심에 내다봤는데 그때 살짝 들춰놓은 가림막 사이로 피 흘린 아주머니의 다리를 보게 됐다. 혹시나 살인일까 싶어 몰려오는 두려움도 잠시, 초여름 더위에 창문을 열고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에 괜한 아파트 구조를 탓했다. 주말 아침 울린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우리 옆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오는 소리인지도 모른 채 주말의 느긋함을 즐기고 있었음을 원망했다. TV에서 나오는 인공소음으로 생활소음을 덮어버리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옆집 아저씨는 그 일이 있은 후 일 년도 안 돼서 이사를 갔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주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했는데, 음독을 시도한 것이다. 산책길에 만난 아주머니는 상담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는 걸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아침 댓바람부터 에세이를 읽고 우울감이 몰려온 건, 농촌에서보다 도시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지금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시골 마을에서나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우리 부모님 역시 다 출가한 자녀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웃들과 함께 보내고 계시니 말이다. 혹시나 연로한 부모님이 갑작스레 사고라도 당한다면 고향 이웃들을 통해 들을 것임이 분명했다.
느닷없이 시작된 우울로 인해 그날 아침에 일어난 일들과, 아주머니의 상황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미안한 감정이 마음 한편에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쓸모없는 이웃사촌이었구나.’
현대인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나이지만, 부모님 곁에는 제대로 된 이웃사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이 넘쳐나는 날이다. 일에 집중하면서도, 잊었다고 생각했던 아주머니의 얼굴과 차가운 바닥에 누워 계시던 마지막 모습이 또다시 나타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역시도 마음속으로 읊조려 보는 한마디 기도뿐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나의 우울감이 얼른 떨어져 나가기를.
덧, 갑자기 찾아온 이 우울감은 아직 한참 남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갱년기의 증상인가 글쓰기에 빠져 있는 요즘 느끼게 된 작가적 감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