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는 마음

by 해오기

세상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 중 이번 강좌에서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듣게 될까. 한 학기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수업에만 열중하다 가는 사람도 있고, 짝꿍과 속닥속닥 재미난 이야기를 풀고 가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실력은 어떤지 시찰 다니는 사람, 요즘 짓고 있는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단어 몇 마디 쓰고 자아도취에 빠지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강좌를 통해 만났지만 끝날 때는 서로 친구가 되어 마무리되기도 한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 이런 사람은 꼭 있다.


“선생님, 전 캘리에 재능이 없나 봐요.”


본인의 재능을 탓하면서도 출석은 매일같이 하는 수강생의 푸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한다. “처음부터 잘하면 저는 뭐 먹고 사나요. 우리 계속 만나야죠~”라고 달래곤 한다. 나름 고민해서 내어놓은 대답이지만 그분께 가 닿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면서 아직 답을 얻지 못했기에.


누구나 재능에 대해 고민한다. 고등학생 때, 백일장에서 뛰어난 글쓰기 재능을 선보여 나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J선배는 현재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선배는 글쓰기보다 사진에 더 재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저러지?’라는 의문이 항상 생길 정도로 워낙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선배였으니까.


애매한 재능으로 밥벌이를 하다 결국에는 부캐로 근근이 글쓰기를 이어온 나는 에세이 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공감 가는 문장을 어디서 이렇게 쏙쏙 뽑아내는 것인지, 마지막장을 덮으며 ‘제발 비법 좀 알려 주세요’라고 물을 뻔한 글들이 더러 있었다. 아마 그 작가들도 선보이지 않은 습작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작품을 내기 위해 들인 그간의 시간과 노력은 책에 들어 있지 않을 테니 타고난 재능이라 쉽게 말할지도 모른다. J선배가 글을 잘 썼던 이유도 어릴 적 수 천권의 책을 읽고, 쓰기에 도전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


지금도 그렇지만 캘리그라피를 시작했을 때, 나의 재능에 대해 더욱 많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2012년 가을이었다. 노랗게 물든 예당평야를 달린다. 평소 같으면 창문을 열어 바람과 풍경을 느끼며 달렸을 길이지만 인사는 어떻게 할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릿속에 말풍선만 가득 채운 채 앞만 보고 달린다.


이날은 예산으로 캘리그라피 첫 강의를 가던 날이다. 요즘 같으면 첫 수업이라고 해서 긴장하는 일은 드물겠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그러하듯 열심히 준비한 것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근데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취득하고 처음 하는 단체 수업의 학습자들이 하필이면 미술학원 선생님들이다. 비전공자가 미술의 한 부류에 속하는 캘리그라피를 배워서 미술 전공자에게 강의를 하다니. 내 실력이 금방 들통날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12회 차의 강의가 끝난 후 그분들은 나에 대한 평가를 어찌했으려나. 호기롭게 강의를 시작했지만, 자신감은 금세 바닥을 기어 다녔다. 달리고 싶어 하는 학습자들인데, 난 걸음마도 못 뗀 상태로 강의를 진행한 무능한 강사라는 생각에 휩싸이다 결국은 ‘난 재능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는데, 재능이 없으니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재능은 없지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니 계속해야 할 것인가. 취업을 앞둔 20대 때의 나였다면 현실에 맞는 직업을 찾아 금세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예산에서의 강의를 끝으로 더 이상 강의를 이어갈 수 없었다. 출산을 몇 달 남겨 두지 않은 만삭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출산은 경력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기다. 하지만 이때의 나에게는 더 없는 기회였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2주간 주어진 나만의 시간. 바로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기초부터 다시 다지고자 캘리그라피 재료를 싸들고 입소했다. 유능한 작가들 도서를 구입해 천천히 읽어가며 교수법을 익히고, 서체를 다시 잡았다.

물론 2주 만에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건 당연히 어려웠지만, 바닥을 기던 자신감이 점차 일어서기 시작했다. 조리원 퇴소 후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지만, 능력을 조금 더 채워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어선 자신감과 좀 더 키운 능력으로 이후의 강의는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을 보면서 ‘난 재능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아직도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몇 년 전에는 아이패드로 작업하는 디지털 캘리그라피라는 분야가 새로 생겼다. 패드로 어플 하나 구입하는 것도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생전 보지도 않던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기능을 하나하나 익혀야만 했다.


미술과 디자인, 서예를 전공한 이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캘리그라피 영역에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아주 협소하다. 그래도 계속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오늘도 애쓰고 있다.


글씨도 잘 쓰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어 하루하루 애쓰는 마음이 쌓이던 4월의 어느 주말, 백수린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하게 됐다. 그때 수집한 짧은 문장은 재능을 핑계 삼아 도망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쓰고 싶은 마음이 재능이다.”


쓰고 싶은 마음으로 애쓴 그간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기를, 그 마음 하나로 꾸준히 이어갈 일들이 많아지기를, 결국에는 재능으로 나타나기를, 글을 쓰고 글씨를 쓰기 위해 애쓰는 모두에게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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