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사람은 알아서 온다

by 해오기

결혼 후 방 세 개 중 두 개를 나의 작업공간으로 사용해 왔다. 어차피 아이도 어렸었으니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일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긴 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잠자리 독립을 고려할 때 이사를 하게 됐다. 아이의 방도 마련해야 하고, 새로 정착하는 곳에서는 온전히 쉴 수 있는 집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했다.


근데 하필이면 그때가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이었다. 남편은 코로나라도 끝나면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작업실 오픈을 미룰 것을 권유했다. 난 일이 없을 때 공간을 알아보고 준비하는 게 오히려 좋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솔직히 코로나가 사스나 메르스 때처럼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에 얽매여 생활하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한 달에 부담할 수 있는 월세의 금액을 정하고 조금이나마 주차가 편한 자리를 알아봤다.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아파트 단지 앞이나 많은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 시내권은 어마어마한 월세에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결국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별도의 인테리어 없이 집에 쌓아두었던 재료들을 옮기고, 시트지로 간판을 대신했다. 강사 활동 십여 년 만에 나만의 작업공간이자 수강생들을 받을 수 있는 작은 공방을 마련했다. 공방 오픈 후에도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버스도 잘 안 다니는 곳인데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집 바로 앞에 있어도 관심 없는 사람은 안 와. 우리 아파트에 헬스장이 있고 집 근처에 필라테스, 요가, 골프 등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가는 거 봤어? 내가 서울까지 가서 캘리그라피 배워 온 것처럼 관심이 있으면 어떻게든 찾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자신만만하게 말은 했지만, 그놈의 코로나는 많은 이들의 발을 묶어 버렸다. 아이들의 등교는 잠정 중단되었고, 강의로 수익을 창출하던 나 또한 기약 없이 쉬어야만 했다. 숨만 쉬어도 월세와 공과금은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국가에서 주는 소상공인 지원금이 없었다면, 쓰지도 않는 공간의 월세를 내느라 속을 박박 긁어댔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끝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수강생이 없다고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나만의 작업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하다.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즐거움을 안고 가는 곳이면 된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과 연을 이어가면 된다. 회사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 동료가 있었다. 결혼으로 인해 둘 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했고, 난 당진으로 왔다.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매번 먼저 연락했었다. 그때마다 그 친구는 아기가 어려서 데리고 나가기 힘들다는 말로 만남을 피했다. 후에 내가 아이를 기르다 보니 아이가 있다고 해서 친구조차 만나기 힘든 건 아니었다.


거리상으로 멀어졌으니 마음도 멀어졌거나, 혹시 내가 모르는 산후 우울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을 같이할 때, 그 친구와 나의 다정함의 거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회사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억지로 유지시켜야 할 관계는 아니었던 거다. 결국 거리만큼 마음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봄 가뭄으로 여기저기 산불이 일어나던 날, 반가운 봄비가 내렸다. 봄비에 칼국수가 먼저 생각나는 건 행복한 돼지의 숙명일까.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는 작업실 근처의 칼국수 전문점을 찾았다. 역시나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석이었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칼국수 한 젓가락을 떴다. 식사를 끝내고 나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가게를 나가던 중 한 손님이 문이 안 닫히는지 낑낑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고 쳐다보고 있는데, 같이 간 일행이 한마디 했다.

“그거 자동문이에요.”


문에서 손을 떼고 한걸음 떨어져 서니 자연스럽게 문이 닫혔다. 식당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힘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던 손님은 머쓱한 표정으로 식당을 나갔다.


자동문처럼 올 사람은 알아서 온다. 억지로 당겼다간 도리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물론 인간관계나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나의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필요이상의 열정과 거짓 노력은 오히려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큰 수익을 바라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은 자연스레 쌓일 테고,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전 여사의 지갑에는 나의 증명사진이 들어 있다. 십수 년 전 오가다 만난 관상가가 내 사진을 보고는 “쉰 살에 대성할 관상”이라고 했단다. 관상가의 예언이 맞을는지 한 걸음 한 걸음 쉰 살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본다.